[읽고 쓰는 삶 276일 차] 헤르만 헤세 [구름 낀 하늘]
마음이 무겁고 힘들 때 도움이 되는 좋은 방법이 있다.
노래 부르기, 신실하게 생활하기, 포도주 마시기, 음악 하기, 시 짓기, 산책하기. 은둔자가 기도서에서 삶의 양분을 얻듯 나는 이렇게 살아갈 힘을 얻는다
_헤르만 헤세, <구름 낀 하늘>
마음이 먹구름처럼 가라앉을 때 나를 다시 삶으로 떠오르게 하는 것들이 있다.
그것들은 나에게 살아갈 힘과 마음, 즉 살아갈 심을 채워준다.
가장 손쉬운 방법은 입을 즐겁게 해주는 것이다. 따뜻한 레몬차, 심심한 참크래커, 쓰디쓴 스트라파짜토, 상큼한 자몽에이드, 담백한 올리브 치아바타 같은 것들. 이런 것들로 급하게 바닥난 에너지와 삶의 허기를 채운다.
입을 채우면 다음은 귀다. 온몸에 힘이 쫙 빠질 것 같이 가슴을 일렁이는 음악이나 흐늘흐늘 녹아내리는 멜로디. 노래라기보다 숨 쉬듯 뱉어내는 호흡에 가까운 목소리들, 어쩌면 나에게 그들의 호흡은 삶의 산소호흡기일지도 모른다. 잘 소화되게 곱게 갈아놓은 미음처럼 부드러운 노래가사들을 한 입씩 받아먹으며 퍽퍽해진 내 머리와 심장에 감성을 수유하는 시간.
나는 살아갈 힘을 얻고 싶을 때, 노래 하나를 무한리필해서 내 몸 가득 먹이고 먹인다. 귀가 하품을 할 때까지. 입이 스스로 호흡을 뱉을 때까지. 그때야 비로소 쇠해진 나의 영혼은 영양실조에서 겨우 벗어나 알 수 없는 흥얼거림을 노래한다. 고단하지만 아름다운 또 다른 새로운 삶의 노래.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것은 눈이다. 눈은 성급하지 않다. 책에 숨은 명약들을 정성스럽게 달이고 졸여서 뇌와 가슴에 한 숟가락씩 떠먹인다. 입맛이 없다며 앙다문 뇌와 가슴은 눈이 힘겹게 떠다 나른 문장들을 찔끔거리며 겨우겨우 삼킨다. 그러다 간혹 쓰다고 뱉는다. 먹기 싫다고 도리질한다.
몸과 마음에 약이 되는 문장들은 어른이 된 지금도 너무 쓰기에 어떻게든 삼키기 싫어 앙 다물고 있는 나 자신이 어이없어 피식 웃음이 나온다. 삶의 에너지는 이런 작은 웃음들의 집합체일까. 포기를 모르는 눈은 어서 삼켜 기운을 차리라고, 용기를 내보라고 말한다.
책 속에서 응원의 문장들을 찾아내 오늘도 내 증상에 맞는 처방전을 써 내려가는 눈. 나는 그 마음이 고마워서 두 눈을 감는다. 그리고 깊은 휴식을 준다. 달달한 늦은 오후의 낮잠.
힘뻑 젖은 등 뒤의 땀에 놀라 어느덧 잠에서 깨면, 어둑해진 방안은 아침인지 저녁인지 모르는 시간 속에서 스르르 기지개를 켜며 중얼거린다.
‘살아갈 힘이 생겨서 다행이야,
살아갈 심(心)이 생겨서 기특해…’
나는 잘 먹고 잘 자는 아기처럼 칭찬받는다.
나를 잘 키우기로 한 , 나 스스로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