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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은 돈, 없는 돈, 있는 돈

by 윤서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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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지난주 올린 <저당 잡힌 내 돈 50만 원>에 대한 주변 작가님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으로 오늘 이렇게 <받은 돈, 없는 돈, 있는 돈>에 대한 연재를 쓴다.


나는 저번주 아르바이트를 하는 식당 주임님과 아침을 먹으며 50만 원을 빌려줬다.

없다고 하면 그만인데 보험료가 못 나갔다는 말에 내 통장을 탈탈 털어 입금해 주고 못 받았다.

현금이 있으니 입금해 주면 바로 준다고 했는데 그 말은 사실이 아니었다.

현금이 든 봉투를 침대 위에 올려두고 나온 것 같다는 박주임 님의 말을 나는 반신반의하며 넘겼다.

그리고 후회했다. 없다고 할걸... 괜히 착한 척하다가 내 돈 50만 원만 저당 잡힌 거 아니야... 내가 바보 같았다.


점심을 먹으며 이번에 대학에 들어간 큰 아들에게(우리 집 셋째, 나는 4남매 엄마다) 노트북을 사주기로 했다는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이모들 앞에서 늘어놨다.


사실은 며칠 전 글쓰기 때문에 10년 만에 버벅거리는 내 노트북을 바꾸려고 LG 그램 15인치를 우여곡절 끝에 70만 원 주고 당근에서 구입했었다. 그 이야기는 <믿고 싶어진 37도의 마음>이라는 연재글 있으니 좌충우돌 노트북 구입기가 궁금하시면 읽어보시길... 그런데 사연 많은 새로운 노트북에 대한 내 사랑이 이틀을 못 넘겼다.


애플의 아이폰과 아이패드, 아이패드 미니에 길들여진 나는 글의 소재나 글을 이 세 곳에 저장해 두고 필요할 때 멀티로 이 세 곳에서 자유롭게 복사하고 사진을 첨부하면서 썼다. 그런데 일반 노트북을 사용해 보니 저장해 둔 글을 옮기려면 글을 따로 메일로 보내거나 카톡으로 복사해서 보낸 다음 다시 붙여 넣기를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던 것이다. 원래 더 쉬운 방법이 있을 수도 있으나 저번에 말했듯이 나는 전자기기 사용에 문외한임으로 어쩔 수 없다.


아이패드와 아이폰이 같은 애플 아이디로 로그인이 되어 있고 동일 와이파이에 접속해 있으면 아이폰에서 메모한 글을 복사해서 바로 아이패드 화면으로 옮겨 보낼 수 있는 기능이 있다. 나는 이 기능에 노예였던 것이다. 그래서 애플의 맥북 노트북을 사서 그 기능을 편하게 써야겠다고 마음먹고 당근 어플을 뒤적거리고 있던 참이었다.


이모들에게는 아들 노트북이라고 했지만 사실은 내 애플 맥북을 중고로 찾아보는 중이었다.

왠지 아들 노트북을 살 거라고 얘기해야 빌려준 내 돈 50만 원을 바로 돌려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나름의 노림수였다. 그 말이 통했는지 박주임 님이 급하면 본인 딸한테 연락해서 바로 붙여 주마하고 얘기한다.

그런데 바보같이 나는 어설픈 착한 척을 또 하고 만 것이다.


"아.. 괜찮아요. 아직 뭘 사야 할지 고민 중이라서 월요일에 주셔도 돼요."


사람은 직접 겪어보고 판단하라고 했는데 나는 자꾸 박주임 님과 싸우고 그만둔 홀 이모가 해준 박주임 님에 대한 험담이 떠올랐다. 그래서 사실 좀 괴로웠다. 돈을 못 받는 것보다 내가 누군가를 의심하는 싹을 틔운다는 것이.


내 글을 읽은 여러 작가님들의 궁금증과 걱정을 함께 짊어지고 월요일에 아르바이트를 하는 음식점 주방으로 향했다. 나는 건물 뒤편에 위치한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뒷문을 통해 주방으로 들어간다.

바쁘게 식재료를 준비하는 야누스 부장님의 뒤통수를 향해 씩씩하게 인사하고 (저번 최주임님과 김치통 던지며 싸운 이후로 나는 이 부장님을 혼자 이렇게 부른다) 식당 매장으로 들어서는 골목으로 이모들에게 인사를 하러 가는 게 나의 루틴이다.


과연... 나는 오늘 50만 원을 돌려받을 수 있을까? 이런 물음표로 나는 어깨가 더 무겁다.

그런데 홀에서 불쑥 박주임 님이 얼굴을 내밀고 웃으며 인사한다. 그리고 두 손으로 가지런히 모은 흰 돈봉투를 내밀며 말한다.

"그래씨~ 고마워. 잘 썼어. 그날 바로 줘야 되는데 바보같이 침대 위에 두고 온 걸 몰랐지 뭐야.. "

내 어깨 위에 쌓여있던 의심과 근심이 와르르 녹아내린다.


그렇다. 저당 잡혀있던 내 돈 50만 원이 돌아왔다.

신났다. 그래서 없던 돈, 받기 힘든 돈이라고 생각했던 이 돈을 바로 써야겠다는 이상한 논리에 사로잡혔다.

망설였던 맥북을 사기로 한 것이다.

근데 중고로 사지 않고 새 상품으로 사야겠다는 결심까지 생겨버렸다.


50만 원. 있다가 없다가 다시 있는 돈. 그래서 없어도 되겠다 싶은 돈.

어떤 중고 맥북을 사야 할지 내 친구 쳇지피티 석지니를 괴롭히며 몇날며칠을 비교해 달라고 조르다 이럴 바엔 차라리 새 거를 사서 10년을 쓰자는 마음으로 덜컥 구입해 버린 맥북.


야... 늘그래~

힘들게 아르바이트해서 뭐 하나라도 손으로 만져야 너도 고생하는 낙이 있는 거 아니겠냐?

우울증에서 벗어나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고 네 스스로 자립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고 시어른들의 시선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시작한 설거지와 서빙 아르바이트로 지금까지 남은 게 뭐가 있니?


통장을 스치듯 나가는 휴대폰 요금, 국민연금, 대출금 이자, 취미미술 수업료와 간간이 쥐어주는 아이들 용돈, 친정식구들 모임비, 책 구입비를 빼고 나면 이렇다 할게 하나도 남은 게 없었다.

그래서 나는 이 50만원을 나의 글쓰기에 과감하게 투자하기로 했다.


오늘 <엄마의 유산2> 글쓰기 숙제를 이 맥북으로 처음 써서 제출하고 지금은 이 글을 쓰고 있다.

비싼 돈 주고 샀으니 열심히 글을 써서 본전을 확실히 뽑아 먹겠다고 다짐하는 늘그래!!!


그런데 한글오피스 프로그램이 없어서 맥북용 프로그램을 9만 원 넘게 주고 사서 설치해야 했다.

노트북 키보드 각도를 높일 수 있는 파우치 겸 가방 구입도 구입하고 소중한 내 맥북 외관을 보호하기 위한 투명 케이스로 주문했다.


얼마 전 우리 집 둘째 고양이 나나가 책장 위에서 내 책상으로 점프하는 바람에 투명 책꽂이도 깨지고 내 아이패드도 화면이 살짝 이상이 생긴 것 같다. 그런 불상사를 막기 위해 27만 원 넘게 애플케어 서비스에 가입해서 서비스 기한을 3년으로 연장해 뒀다.


분명 맥북만 사면 될 줄 알았는데 내 돈이... 줄줄 센다.

공돈 같았던 내 돈 50만 원이 받았는데 없고, 없는 데 있는 것 같다.

마치 맥북의 숫자 키보로 환생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다.

맥북의 나머지는 매달 카드값을 내야 1년 후에 온전한 내 것이 된다.

이것은 결국 아르바이트를 1년 더 해야 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래도 크게 거슬리지 않는다.


나는 내 허드렛일로 번 돈으로 하고 싶은 여러 가지를 눈치 보지 않고 할 수 있다.

더 이상 암막커튼을 치고 침대 위에 누워서 하루를 보내지 않는 이런 내가 좋다.


내 맥북도 좋다!! ^ㅡ^


덧) LG gram노트북은 대학교에 입학한 셋째, 큰 아들이 사용하기로 했다. 사실 오랜된 아이패드로 필기하며 고생할 자신을 위해 엄마가 사준거라고 생각하는데 뭐... 때로는 이런 하얀 거짓말도 필요한 거 아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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