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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들 Oct 10. 2018

서른세번째 요가이야기

파리브르타 트리코나아사나




수다쟁이 몸과 보내는 시간

학창시절을 돌아보면 하루종일 함께 있었던 친구와의 대화는 쉽게 끝나지 않았었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한참을 전화로 이야기하다가 끊을 때가 되어서는 말한다. “내일 만나서 자세히 이야기해줄게!” 수다쟁이였던 우리들. 그렇게 내내 붙어 있었는데 또 무슨 할말이 그렇게 많았을까. 아니 어쩌면 내내 함께 있었기 때문에 할말이 그렇게까지 많아졌던 것 아니었을까. 분명한 것은 그런 시간을 보내면서 우리들은 서로를 조금은 더 이해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더 응원할 수 있게 되었고 더 기대하게 되었고 그 기대 탓에 때로 실망해도 다시 한번 마음에 다리를 놓고 오고갈 수 있게 되었다. 견고하게 쌓아올렸던 관계들은 시간이 흘러 이제는 자주 왕래가 없어도 그대로 거기에 있다. 튼튼한 다리 덕분에 언제든 서로에게 건너갈 수 있다.

누군가와 시간을 공유하며 축적되는 이야기도 소중하지만 나에게는 혼자 보내는 시간이 아주 중요한데 그 이유는 그 시간이 내가, 나와 함께 있는 시간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온전히 나와 보내는 시간이 필요하다. 나를 외롭게 만들지 않기 위해서, 나를 건강하게 지키기 위해서. 나와 함께 있기 위해 매트 위에서 몸을 이리저리 비틀어 보는 일과 책들을 꺼내어 보며 마음을 비틀어 보는 일은 가장 사랑하는 일이다. 그걸 하지 못하면 어느 지점에서인가 균형감각이 희미해지고 계절이 지나가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걸음은 더 바빠진다. 그런 나에 대해 알게 되었고, 그래서 노력하고 있다. 언젠가 읽었던 마스다미리의 산문집에서 힌트를 얻어 나 역시 다이어리에 나와 함께 있을 날을 표시해두고 그 날 만큼은 혼자 있는다. 누군가가 “그 날 뭐해?” 물어보면 “음, 그 날은 약속이 있어.” 라고 대답한다. 내가, 나와 한 약속은 아주 중요하니까.

처음에는 잘 들리지 않는다. 함께 시간을 보내야 한다. 서먹함을 덜어내고 이야기를 들어주다보면 그제서야 나는 나에게 진심을 털어 놓는다. 처음에는 서먹해서 자주 울었다. 혼자 아이스크림을 퍼먹다가, 공원을 걷다가, 영화관에서 걸어나오면서도 울었다. 첫 내 진심은 눈물이었다. 하고 싶은 말들을 스스로에게 큰 소리로 하고, 점점 몸집을 부풀리는 기대를 버겁게 끌어안은채 인생을 살다가 "그래, 이제 너의 이야기를 들려줘. 너는 어떠니? 괜찮니? 아픈 곳은 없니?" 질문하자 대답도 못하고 자꾸만 울었다. 그러나 눈물은 멈췄고, 울면서 떨던 어깨의 흔들림도 잦아들었다. 대부분의 일에 괜찮은 표정을 짓고, 감정을 무턱대고 삼키는 사람으로 살았지만, 그러나 괜찮지 않았다. 사랑받고 싶었고, 실컷 사랑해도 나를 등지지 않았으면 하고 바랐다. 사람에 대해서도, 해오던 공부나 잘 해내고 싶었던 일들, 즐겁게 보내고 싶었던 청춘에 대해서도 그러해서 그 마음에 눈물도 감정도 매번 목구멍 뒤로 넘겨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무거운 걸음으로 겨우 나를 쫒아오던 마음의 무게를 덜어야해서 그렇게 한참 울었던 것이다. 덜어내고 나니 가장 나를 사랑해줄 사람도, 나에게 등지지 말아야할 사람도 모두 나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제는 오랜 친구처럼 스스로의 이야기를 듣지만 처음은 그러했다.

몸을 트위스트하는 동작들은 잠깐 머물 때와 지켜보며 몸의 이야기를 들을 때 아주 다른 동작이 된다. 처음에는 곁을 내주지 않던 호흡이 한참 머무르며 살펴보면 그제서야 소리를 들려준다. 서먹하게 스쳐 지날 때와는 다른, 더 결이 곱고 깊은 곳까지 오르내리는 숨을 만나게 된다. 비로소 나에게 말을 건넨다. 어디를 잡아두어야만 하고 어디를 비틀어야 하는지 덕분에 알게된다. 멈춰서 기다리고, 함께 머무르다 보면 몸도 어린시절 단짝친구처럼 수다쟁이가 된다. 골반을 견고하고 부드럽게 잡아주면 몸의 옆선을 더 기분좋게 펼쳐낼 수 있고 그러면 가슴쪽에서 자유로운 움직임이 시작된다. 호흡은 내 몸과 나를 연결하는 다리가 된다. 이야기를 전달해주고, 관계를 안전하게 한다. 조금 더 민첩하게 살펴볼 수 있게 하고 조금 더 진심을 알아차릴 수 있게 도와준다.

몸이 하는 이야기가 멀어질 때면 대화가 쉽게 끝나지 않았던 그 시절을 기억한다. 오래 함께하고, 동작안에서도 서두름 없이 기다린다. 몸을 비틀어보고 마음도 비틀어본다. 그 순간, 몸은 다시 수다쟁이가 된다.





글/ 예슬 (brunch.co.kr/@yogajourney)
그림/ 민지 (brunch.co.kr/@am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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