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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들 Mar 14. 2018

네번째 요가이야기

비라사나




찾아와 머무르다가 떠나간다.

나를 찾아왔다가, 잠시 머무르다가, 나를 떠나간다. 호흡도, 몸의 느낌들도, 때로는 어떤 통증들도, 대부분의 것들이 그렇다. 매트 위에서 만나는 시간이 그러하고, 살아가는 동안 마주하게 되는 관계와 순간들도 그러하다. 그렇게 이런 저런 일들이 나를 지나간다. 어떤 날에는 매우 행복하다고 생각하고, 어떤 날에는 무릎에 힘이 빠지기도 한다. 그러나 상황은 그저 상황이 되어 나를 지나간다. 매트 위에서의 몸과 마음의 흔적들처럼.

과거의 나는 슬픔에 빠져있는 시간이 꽤 긴 인간이었는데, 그 슬픔은 대부분 과거에 뱉어낸 말이거나 나에게 담겼던 일상의 표정들에서 연유했었다. 그 순간, 그러니까 슬프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 순간에서 출발한 슬픔보다 더 많은, 과거에서 출발한 슬픔이었다. 슬픔에 집중하며 온통 그 독 안에 빠져있었던 과거의 나는 감정이 어디에서 출발했는지 같은 것은 중요하지 않았었다. 마주하는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 상황과 싸우려고만 했었기 때문에 그토록 긴 시간을, 그 상황에서 빠져나오는 일이 어렵다고 생각만 하며 웅크리고 하루를 보낸 것이겠지, 독을 부수고 나서야 마음이 다음 마음에게 바톤을 넘겨 주었다.

비라사나로 긴 시간을 앉아서 어깨를 열어내고, 눕기도 하다 보면 나를 찾아오는 통증에만 온 마음을 주게 된다. 허벅지 근육이 길게 늘어나서 무릎을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게 돕고, 발목에도 공간을 만들어서 결국에는 몸을 편안하게 한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막상 오래 이 자세로 앉아 있다 보면 나는 자꾸만 불편하고 힘든 느낌에만 집중하면서 '다치지는 않을까? 원래 이렇게 힘든건가? 조금만 쉬었다 하면 안되나?' 같은 생각을 한다. 그러니까 자꾸만 통증이나 힘든 마음과 힘겨루기를 하는 것이다.

순간이 지나가고 또 다른 순간이 찾아올 때마다 몸의 느낌은 조금씩 달라진다. 불과 열 호흡이 지났을 뿐인데 처음과는 다른 곳이 느껴지기도 한다. 오늘 나는 그냥 몸의 느낌을 따라간다. 매 순간의 느낌이 출발하는 지점을 바라보는 것이다. 알게된다. 몸의 느낌들이 나에게 왔다가 내 생각보다 훨씬 서둘러 나를 떠나간다. 내가 붙잡지만 않는다면. 하루를 보내면서 올라오는 감정 역시 나를 찾아왔다가 결국에는 떠나간다. 감정의 독에 갇혀서 괴로워할지 지나갈 것을 알고 지나보낼지를 결정하는 것은 결국에는 나 자신이다.

겨울의 한복판에서는 겨울이 영원할 것 같지만, 우리들은 벌써 봄을 만났다. 변한다는 것은 때로 마음을 서늘하게 하지만 변하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이 이토록 아름답다.




글/ 예슬 (brunch.co.kr/@yogajourney)
그림/ 민지 (brunch.co.kr/@am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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