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에 가을이 짙게 깔릴 때,
나무는 앙상한 몸을 제법 드러냅니다.
화려한 겉옷을 벗겨내면,
모두가 똑같은 인간일 뿐인 것처럼 형형색색의 나무는 겨울만을 말합니다.
땅에 떨어진 알록달록한 낙엽만을 보느라 눈이 바쁩니다.
그러는 동안 앙상해진 나뭇가지의 비루함은 애써 외면합니다.
정작 자신은 지리멸렬한 시간을 감당하지 못해 피곤해 하면서 말이죠.
운동을 열심히 해도,
음식을 잘 먹어도,
잠을 오랫동안 잤어도 오늘 하루는, 삶은 그저 비루할 뿐입니다.
타인과의 어그러지는 관계,
뜻대로 풀리지 않는 일,
암담한 세상 이야기.
우리 삶이 찬란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새삼 깨닫습니다.
이럴 때는 잠시 쉬어가는 것도 좋겠죠.
그렇지만 미래를 위해 지금의 삶을 감내하자는 말은 왠지 거슬립니다.
온통 장밋빛으로 물든 미래를 이야기하지만,
그 미래가 내 것이 될지,
혹은 그 미래가 정녕 올지 알 수 없습니다.
사실 지금 세상이 말하는 찬란한 미래는 몇몇의 소유물이 될지도 모릅니다.
지금 사는 세상이 이대로 가면서 맞이할 미래라면 말이죠.
현재의 내 삶을 유예시킬 수는 없습니다.
지금의 삶을 팽개치지 않아야 합니다.
그러나 개인의 고군분투와 각자도생이 아니어야 합니다.
이 세상이 각자의 삶에 충실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합니다.
또 그 개인들이 서로 어깨를 걸고 손을 맞잡을 수 있어야 합니다.
나무가 몸을 드러내고
햇살이 가늘어지며
바람이 몰아칠 때
겨울로 가는 문턱이 낮아지고 있다는 것을 새삼 떠올립니다.
낙엽이 지고
햇살이 비추고
바람이 멈출 때
함께 밥 먹을 이 찾아가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