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날씨가 포근하네요.
오후에 산책겸 운동을 나가는데,
두툼하게 입은 옷이 민망했습니다.
사람들도 저마다 두꺼운 외투를 손에 걸치고 산책을 즐깁니다.
그러나 마스크는 벗지 못하네요.
하늘은 맑은데
나무는 메말라갑니다.
얼마 남지 않은 나뭇잎이 나뭇가지에 매달려 하늘거립니다.
오늘은 저렇게 달려 있지만,
내일은 땅 위에서 조우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시간은 이미 저만치 가고 있습니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산책길은 찬란한 풍경이었습니다.
눈부시게 샛노란 은행잎이 무성하게 달려 감탄을 자아냈죠.
불과 이틀 만에 그 많던 노란 은행잎이 우수수 떨어졌습니다.
은행나무는 앙상한 몸을 드러낸 채 흘러간 시간을 말없이 보여줍니다.
여기저기 흩어진 낙엽을 보다가,
공원의 테이블 위에 살포시 내려 앉은 나뭇잎이 눈에 들어옵니다.
살짝 휜 모양새가 책을 떠올리게 합니다.
나뭇잎 하나가 책일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일년의 생애를 지내며 오가는 사람들의 인생을 엿보고,
세월의 흔적을 담아낸 나뭇잎이 책입니다.
나뭇잎에 새겨진 가느다란 선과 짙고 연한 색의 변주가 담은 시간을 상상합니다.
그 상상이 책의 줄거리가 될 수 있겠죠.
날씨의 변덕에 일희일비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냅니다.
그래봤자 곧 적응을 할 테지만,
그렇게라도 투덜거릴 핑계가 필요한가 봅니다.
답답한 마음 쏟아낼 데가 마땅하지 않아서일까요.
하루가 다르게 삭막해지는 풍경입니다.
그 풍경에서 또 다른 아름다움과 상상의 실마리를 찾으려 합니다.
저만치 가는 시간을 붙잡을 수 없다는 자각을 새삼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