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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드러지게, 심드렁하게

by 글담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온다고 해서 가방을 뒤적였습니다.

아, 우산을 들고 오지 않았더군요.

뜻하지 않게 비를 맞으며 겨울의 운치를 즐겨야겠습니다.

그러나 그 운치는 때마침 부는 바람의 재촉으로 이내 사라집니다.

얼른 비를 피하고 몸을 녹일 곳을 찾습니다.


주택을 개조한 카페에 들어서니 따끈한 빵 때문인지 아늑합니다.

비가 와도 창가에는 햇살이 비치는데,

창틀 한구석에 아무렇지 않듯 자리 잡은 꽃이 눈에 들어옵니다.

메마른 꽃은 한껏 흐드러져 고혹의 미를 드러냅니다.

생의 기운이 다해간다고 해서 숨을 이유는 없다는 듯.


구름이 땅과 조우하려는 듯 낮게 깔린 도시의 광경은 웃음기 하나 없습니다.

웃을 일도 없는 마당에 날씨마저 사람의 마음을 굳게 만듭니다.

어째 책도 쉽게 읽히지 않습니다.

먼 길을 떠날 때 챙겨온 책은 가방 속에 고이 잠들었습니다.

이도저도 아닌 시간은 자꾸만 흘러갑니다.

사람 구경한다는 것도 심드렁합니다.

아, 꽃의 기운이 와닿았나 봅니다.

흐드러지게,

심드렁하게.

복잡한 세상일은 눈앞에서 흘러갑니다.

추운 겨울이 한 번씩 가져다주는 무관심의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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