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바다로

by 글담



머나먼 나라의 바다에 왔습니다.

이곳은 고요한 풍경과 달리 격렬한 전투가 벌어진 비극의 바닷가입니다.

곳곳에 패인 웅덩이,

아직도 버티고 있는 콘크리트 잔해만이 그때의 아수라장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뭉근 나의 아픔과 격렬한 역사의 아픔이 함께하는 바닷가는 고요합니다.

어딜 가도 바다는 말이 없습니다.

그저 묵묵히 인간의 시간을 바라보는 바다를 또 다시 찾고 싶네요.


어릴 적,

겨울만 되면 홀로 바다를 찾아갔습니다.

버스를 타고 내리고 걷고 바람을 맞고 바닷가에 다다릅니다.

물기 머금은 공기를 들이마시며 바다 내음도 맡습니다.

터벅터벅 바다를 따라 길게 이어진 길을 걸어갑니다.

외롭다는 생각도,

풍경이 좋다는 감상도,

잠깐의 여행이라는 설렘도 없습니다.

표정 없는 얼굴로 마주한 성난 얼굴의 바다를 바라볼 뿐입니다.


아무리 성을 내도 파도가 미치는 그 선까지만 넘보는 바다.

신발 속에 모래가 들어갈까 봐 사부작 사부작.

한적한 마을과 구불구불 좁은 해안도로,

작은 모래사장에 여기저기 널린 온갖 쓰레기.

소박한 바닷가 마을의 정경을 눈에 담고 고통은 내려놓습니다.


시간이 한참 지나 찾아간 그 바닷가.

마을이라 부르기에도 민망할 만큼 빛과 소리의 공해가 바다를 가립니다.

선을 넘지 않는 바다와 달리 인간은 이리도 선을 넘습니다.


고요한 적막을 뚫고 들려오는 바람과 파도가 우는 소리가 그립습니다.

다시 바다로 가고 싶네요.

이 추운 날 겨울바다를 가고 싶은 이유는 단순합니다.

그저 바다라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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