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이름을 가르쳐 달라고 떼를 씁니다

by 글담



유월의 어느 날,

한적한 시골길을 걷다가 발견한 하얀꽃은 이름도 몰라 미안했습니다.

이름을 불러줘야 비로소 ‘하나의 몸짓’에서 존재를 가진 꽃이 될 텐데 말이죠.

꽃이나 나무 이름을 잘 몰라 글 쓸 때도 애를 먹습니다.

소소하고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려면,

소소하고 구체적인 존재를 알아야 하니까요.


“이 꽃 이름이 뭘까요?”

“그 선배한테 물어봐라. 꽃박사잖아.”

웬만한 꽃과 나무 이름을 알고 있다는 선배에게 사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전화를 했더니,

“그런 건 포털에 사진 올려서 검색해봐.”

귀찮은 기색은 아니었습니다.

빨리 알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준다는 배려였죠.

그런데 왠지 아쉽습니다.

손 쉽게 검색해서 알아보는 거야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그것을 알기 위해 노력했던 이의 시간을 함께하고 싶었을 뿐인데.

그 시간이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듯해서 떼를 씁니다.

꽃 이름을 가르쳐 달라고.


이름을 불러줘야 비로소 꽃이 되듯,

시간을 알아줘야 비로소 그의 가치가 살아납니다.

누군가는 오랜 시간을 공들였을 그 노력을 가벼이 여겨서는 안 되겠죠.

그래서 장인匠人이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철 지난 아날로그의 사고와 가치를 좋아한다고 해도 어쩔 수 없습니다.

가볍게 바뀌는 세상일수록 어쩌면 숙성된 장인의 가치가 빛날 수도 있을 테니까요.

통찰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한곳을 오래 파고 들여다 본 이가 아니라면 어렵지요.

가벼이 스치듯 본 사람이 보지 못하는 것을 찾을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물론 우물 안의 개구리가 될 수도 있겠지만,

장인이라면 늘 새로운 배움과 깨달음에 문을 열어놓고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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