잿빛 휘장이 걷히더니 군데군데 파란 하늘이 드러납니다.
모처럼 구름과 하늘과 햇살이 어우러진 풍경에 눈을 떼지 못합니다.
떼지어 무리 짓는 구름이 흘러가고,
고운 살 드러내는 하늘,
곳곳에 뿌려진 햇살.
언제나 자연은 인간의 예측을 이리도 비웃는,
아니 그저 무심히 바라보며 시간의 강을 타고 유유자적합니다.
“버려야 해. 그리고 바라보면 시가 보일 거야.”
글쟁이에게 한 시인이 찾아와 한마디 툭 던집니다.
나에게 시를 쓰라고 한 건 아니죠.
내가 시를 어떻게 읽고 곱씹어야 하느냐고 묻지도 않았죠.
그 시인은 그저 내 삶을 보라고 한 것일 테죠.
한낮 소주와 맥주가 영글어낸 넋두리일 수도 있겠죠.
술 한 방울 입에 대지도 않은 나에게 다가온 묵직한 의미였지만.
담벼락에 흙을 덮어 씨앗을 심어 놓았나 봅니다.
저 씨줄과 날줄 사이로 꽃은 기어이 피고야 말았습니다.
무엇을 버리고, 또 어디를 바라봤기에 사철채송화는 생을 피웠을까요.
하늘을 바라봐야 할 꽃은 거리를 바라봅니다.
흔히 지나치는 인간을 바라보며 생을, 사시사철을 채송화는 그저 자기 삶을 사는 게죠.
아마도 시인이 한 말은 저 채송화가 건넨 말일지도 모르겠네요.
문득 채송화를 한참이나 바라보니 시가 생각납니다.
한 구절 떠올리며 써볼까 하다가 관둡니다.
채송화를 묘사하는 게 아니라,
삶을 깊게 들여다보고 되뇌고 그려봐야 할 듯해서요.
그저
하루의,
일상의,
찰나의,
한순간 단상으로 머물 뿐입니다.
다만,
채송화가 건넨 말을 곱씹으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