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곳에 가면 길 잃을까 봐 걱정하면서도,
은근한 설렘에 주위를 두리번거립니다.
기차에서 내려 버스를 타면서도 가고자 하는 곳을 묻습니다.
혹시라도 반대 방향을 탔을까 봐 살짝 긴장한 채로.
지도 앱에서도 꼭 가는 방향을 확인하라고 했으니 어쩔 수 없습니다.
버스 기사님은 고개를 끄덕이고,
재빨리 올라탄 뒤에 명당자리를 찾습니다.
어느 자리에 앉아도 낯선 풍경을 즐기며 갈 텐데.
낯선 풍경은 익숙한 곳에서도 가끔 보곤 합니다.
몇 년 동안 한 번씩 찾던 카페를 오랜만에 갔는데,
카페 외벽의 타일과 조명이 눈에 확 들어오더군요.
그 벽은 늘 그대로였고,
그 불빛도 바뀐 게 없는데 말이죠.
촘촘하게 박혀 있는 타일과 초록 갓의 불빛은 금세 과거를 불러냅니다.
오래된 영화에서나 볼 법한 벽을 바라보며,
익숙한 일상과 장소에서 맞닥뜨린 낯선 풍경으로 마음이 몽글몽글해집니다.
가끔, 아니 사실은 자주 투덜댑니다.
너무나 뻔하고 반복되는 일상 때문에 생각하는 것과 글쓰기가 잘 안된다고요.
그렇다고 철학자처럼 골방에 파묻혀 골똘히 생각하는 것도 아니고요.
니체처럼 산책하면서 사유를 펼치기에는 깜냥이 안 되니 기대할 수도 없고요.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사람을 보고 만나야 하는데,
타고난 게으름과 소시민의 좁고 얕은 세상살이에서 무얼 바랄까요.
익숙함에서 낯선 것을 찾아야겠습니다.
익숙하다는 이유로 볼 수 없고 찾지 못했던 그 무언가를 더듬어봐야겠습니다.
생각과 쓰기의 소재는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낯선 곳과 일을 겪어야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익숙함과의 결별.
낯섦과의 조우.
무릇 글쓰기와 사유는 익숙함에서 낯선 것을 찾아내는 과정일 겁니다.
벽의 의미가 가로막힌 것을 뜻하는 게 아니라,
벽 너머 세계를 상상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느끼듯 말입니다.
고요한 벽의 소리를 듣습니다.
오늘 하루는 익숙함의 낯섦으로 설레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