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마다 생각한 대로 곱씹습니다

by 글담

“이겼으면 됐습니다. 신부님.”

싸움을 하고 피칠갑을 한 채 성당으로 들어온 녀석.

싸움에서 이겼다는 승리감에,

싸움을 걱정하는 어른들을 안심시키려는 마음에,

머쓱함까지 섞인 호기로운 말에 다들 입만 웃습니다.

목사님은 구급상자를 갖고 와 여기저기 살피고,

신부님은 걱정 가득한 마음 애써 누르며 바라봅니다.

봉사자들은 어리둥절하면서도 안쓰러움을 감추지 못합니다.


한바탕 회오리가 휩쓸고 간 공간은 멋쩍은 웃음만이 남았습니다.

그 동네 이야기와 부모의 존재와 역할,

이런저런 유추와 걱정이 스산한 가을바람처럼 공간을 맴돕니다.

이제 곧 성인이 될 아이의 미래,

그리 멀지 않은 미래는 잔뜩 어둡기만 합니다.

그 미래에 촛불 하나 비추어 주지 못하는 마음이 못내 아쉬울 따름이고요.


책임이라든가,

혹은 동정 따위는 들지 않습니다.

그 아이의 인생은 그 누구도 조종할 수 없으니까요.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고,

단지 찾아올 때 반겨주는 것밖에는.

신부님과 목사님, 그리고 봉사자들은 그런 거리감으로 아이들을 대하는 듯합니다.

그 거리가 오히려 사랑을 확인할 수 있는 거리입니다.


잠깐의 소란을 뒤로 하고 위층으로 올라갔습니다.

따뜻한 빛이 존 바에즈의 앨범을 비춥니다.

굳이 그의 앨범을 눈에 띄게 둔 이유가 있을 테죠.

저마다 보는,

아니 저마다 살아오고 생각한 대로 앨범의 의미를 곱씹습니다.

나는 무엇을 떠올렸을까요?

무엇을 떠올려야 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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