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번 심장은 구겨지고

by 글담

들꽃은 바람에 흔들리면서 하늘을 마주합니다.

흔들리더라도 하늘을 향한 마음은 굽히지 않겠다는 듯.

그저 한 송이의 꽃이 아니라 어떤 의미가 되겠다는 듯.

산 정상에 피어 있는 들꽃은 소리없이 외칩니다.

그 외침이 내 마음에 와 닿아서 심장은 구겨지고요.


오랜만에 오른 산에는 여기저기 울긋불긋 단풍 세상입니다.

도심에서는 미처 몰랐는데,

가을은 이미 저만치 가고 있네요.

가쁜 숨을 몰아쉬다가 잠시 발걸음을 멈춥니다.

내가 멈추면 지나가는 가을도 멈출 것처럼.


단풍을 보며 감탄하는 건,

사의 찬미가 아닐까요.

단풍은 시들고 메말라 죽기 전의 나뭇잎입니다.

단풍이 좋다는 말은 죽음 직전의 상태를 찬미하는 것입니다.

죽음 직전에 드러내는 화려한 색을 찬미하는 것이죠.


단풍을 보며 미소짓는 건,

단지 죽음만을 칭송하는 것도 아닙니다.

마지막 찬란한 생을 찬미하는 것이기도 하겠죠.

단풍이 그리 좋은 건,

죽음과 삶을 동시에 찬미할 수 있어서일까요.


고운 햇살 가루가 흩뿌려질 때,

심장은 또 한 번 구겨지고, 눈가는 촉촉해집니다.

입술은 메말라 선뜻 그 이름도 부르기가 힘듭니다.

누군가의 이름을 부를 때 쓰라린 상처를 더듬는 것 같아서요.


가을이 서둘러 지나가기 때문일까요.

가을이라 떠오르는 지난 시간 때문일까요.

가을의 흔적을 눈과 심장에 담습니다.

아쉬운 발걸음을 천천히 옮깁니다.

이제 산에서 내려갈 때가 됐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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