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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담 May 14. 2024

보이지 않아도 사라지지 않아 덜 외롭지 않을까

가끔은 소리로 여행을 합니다.

눈을 감고 듣는 기차의 덜컹거리는 소리.

과거로의 여행입니다.

덜컹거리는 기차 소리는 어느새 리듬이 되어 마음을 진정시킵니다.

명상이라고까지 할 수는 없겠지만,

조용히 눈을 감아 소리를 가슴에 담습니다.

당장 눈앞에 보이지 않아도 사라지지 않는 그 무엇을 떠올리면서.


땅에 떨어진 꽃송이 한둘 모아 바구니에 담습니다.

그저 버리기에 아깝기도 하지만,

봄을 그대로 떠나보내기가 싫어서 담았나 봅니다.

바구니 안의 꽃송이들은 며칠 지난 뒤에 가보니 없더군요.

봄과 함께 떠났나요.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일까.

문득 잔상으로 남은 존재를 떠올립니다.


얼마 전 의료봉사를 도우려고 한 시골 마을을 찾았습니다.

진료받기 전에 의료 환경과 관련한 설문조사를 하는데,

한 할아버지께 자녀와 관련하여 여쭈었습니다.

“첫째는 죽었고, 2남 3녀.”

“아…… 네.”

“근데 이런 거 와 하노? 쓰잘데기없이!”

할아버지는 짜증을 내시면서 마뜩잖은 표정으로 바라봅니다.

하필이면 떠올리기 싫은 기억을 불러내서일까요?

아니면 지금의 곤궁한 처지를 말하는 게 싫어서일까요.


살살 달래어 봅니다.

굳이 아픈 사연을 들으려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할아버지는 뚱한 표정이지만 이런저런 물음에 툭툭 답을 던지십니다.

그러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와 과거를 떠올리는 듯합니다.

눈앞에 있지 않는다고 해서 사라진 게 아닙니다.

이리 엮이고 저리 설키며 자신의 일부가 됐습니다.


할아버지는 여러 진료를 마치고 삼계탕을 먹을 때까지 여전히 굳은 얼굴입니다.

차츰 시간이 지나고 진료소 분위기가 여유로워지자 그제야 우리를 보고 웃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만나고 떠나면서 눈에 보이지 않겠지요.

저를 기억하지는 못하더라도 상관없습니다.

그저 함께하는 삶을 고민하는 이들,

보이지 않아도 존재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아신다면 좋겠습니다.

좀 덜 외롭지 않을까 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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