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라이 비친 모습에 눈과 마음을 빼앗겼습니다.
이곳에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않는 듯 서 있는 것에.
어쩌면 그들과 닮은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않는 삶을 사는 그들.
유리에 비친 것처럼 한 공간에 있으면서도 가로막힌 존재.
그들은 개인의 삶과 가족의 행복을 위해 이곳에 왔습니다.
부푼 꿈을 안고 온 이 땅에서 그들이 대한 것은 꿈의 실현만은 아니었습니다.
혐오와 차별.
평생 그들의 그림자가 되어 괴롭히죠.
딱 달라붙어 따라다니는 꼬리표들은 이곳에 있는 동안 그들을 갉아먹습니다.
그들이라고 우리와 다를 게 있을까요.
웃고 울고 분노하고 사랑하는 게 무엇이 다를까요.
마음이 맞지 않아 싸우기도 하고,
유혹에 넘어가 선을 넘는 행동도 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우리’가 될 수 있는 게 아닐까요.
우리와 다를 게 없으니 말이죠.
그들은 좀 더 좋은 것을 찾아,
좀 더 인간적인 대우를 받으려 머무르라고 정한 곳을 벗어났습니다.
그 순간부터 그들은 등록되지 않은 인간이 되었습니다.
있어도 없는 존재가 되고 말았죠.
그때부터 그들은 아파도 병원에 쉽게 갈 수 없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하니 어마어마한 병원비를 다 내야 하니까요.
웃고 수다를 떨어도 한순간 바람이 불면 순식간에 사라지고 마는 존재입니다.
그들을 위해 만든 건강 검진 자리에 슬쩍 끼어들었습니다.
의료인이 아닌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혈압계 앞에서 숫자를 기록하는 것이죠.
제대로 혈압 측정할 수 있도록 해주고,
다른 검사를 받을 수 있도록 안내해 주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들은 수줍은,
고마운 표정으로 눈도 제대로 못 마주치고 차례를 기다립니다.
그들은 현존하는 인간입니다.
말을 나누고,
함께 웃고,
같이 걱정하는.
그들과 함께 살아야 할 이유의 전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