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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구름 Mar 03. 2022

33_ 노후를 실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목차__ 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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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대의 삶이 이렇다는 걸 알았을 때 이걸 미리 알면 노후 준비 안 할 수가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질병에 걸려본 이들이 보험을 절실히 찾는 것처럼 문제를 겪으면 필요성을 단번에 알게 되는 법이니까. 하지만 싱글이거나 가정을 꾸린 A(그 또는 그녀)는 매일 일만 하고 밥만 먹으며 사는 부모님을 뻔히 보면서도 자신의 노후를 세심히 신경 쓰지 않는다. 그저 매달 혼자 또는 아이들과 함께 이 카페, 저 식당, 계절마다 이 바다, 저 제주도로 여행을 떠나며 현재에만 집중한다. A에게 노후는 너무도 먼일이기 때문이다.  


A는 노쇠해 본 적이 없고, 예순 살이 돼서 멸시를 받은 적도 없다. 그리고 좋은 일자리만 없을 뿐 일거리 자체가 없어서 환장한 적도 없다. 무슨 일이 닥친다 한들 눈만 낮추면 일할 곳이 어디든 있는 지금 당장 먹고살기 빠듯한 것에 급급해하느라 먼 미래까지 살펴볼 겨를이 없다. 감사하게도 아직 피부도 반반하고, 여행은 체력이 아니라 돈이 없어 못 가는 것이며, 어떤 부모든 사랑한다고만 하는 어린 자식들과 보들보들한 살을 비비면서 그래도 하루에 가끔 정도는 행복에 젖어 산다. 그러니 굳이 답답한 미래를 떠올리며 기분을 잡치고 싶지 않다.


그래서 노후는 지금과 사뭇 다른 환경을 사는 것이고 지금보다 더 일하기 힘든 여건에 처한다고 얘기를 해줘도 듣지를 않는다. 옆에서 내 부모나 조부모를 통해 그 상황을 보면서도 그건 남의 일인 듯 무심하다. 전교 1등이 꼴찌의 삶을 제대로 알리 없고, 10대 때는 30대의 고민을 공감할 수 없으며, 아이를 낳기 전에는 아이를 낳은 후의 달라지는 인생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젊은 사람이 노후를 실감하기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그러니 당장 먹고살기 힘들고, 소비를 줄이기는  어렵고, 현재의 즐거움을 포기할 수 없고, 미래에는 뭐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등 수만 가지의 이유를 들 수 있는 거다. 그것보다 더 무서운 노후를 단 한 번도 경험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귀여운 이유들을 갖다 대며 노후 준비를 외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걸 알게 하기 위해 10대에게 30대의 삶을 살게 하고, 아이가 없는 사람에게 육아를 하게 하고, 건강한 젊은이가 건강을 잃어 쇠약해지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대신 재테크 책, 기사, 재무설계 강연 등에서 늘 노후 준비를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 시기에 대해 잘 모르는 만큼 그 충고에 반응하지 않는다. 그리고 대비하지 않은 만큼 위험에 노출되고 결국은 어려운 사정이라는 결과물을 내어놓는다. 그때서야 과거를 후회한다. 이미 한국은 지금 노후 빈곤율은 40%를 넘네마네 하는 중이다.


나도 건강을 잃기 전까지 노쇠해지는 부모님을 보면서도 내게는 저런 시절이 오지 않을 줄 알았다. 24살 매끄럽고 분홍분홍 하기만 한 내 발바닥을 보고는 나도 예전에는 그랬지 씁쓸해하시며 갈라지고 찢어진 자신의 발뒤꿈치를 어루만지던 늙은 어머니를 보며 나는 늙어도 저렇게 되지 않을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 내 발뒤꿈치는 어머니를 똑 닮았다. 사포처럼 거친 것이 겨울만 되면 찢어지는 바람에 셰어버터 밤(고보습 효과가 있는 제품) 없이는 땅에 발뒤꿈치를 디딜 수가 없다.


10년 전만 떠올려봐도 그때와 지금의 나는 참 다른 사람이다.

주변 환경도, 하는 일도, 체력도 지금과 완전히 다르다. 그러니 10년 후에는 그런 것들이 더 하락선을 그릴 거라 예상하기는 어렵지 않다. 지금 그 미래를 대비하지 않으면 오늘보다 더 나은 삶을 살기 쉽지 않다는 것도.


매일 집에서 글이나 쓰며 부모님을 통해 보는 노후에 쓴맛은 지금 커피 한 잔 사 먹지 못하는 여유 없는 인생보다 더 지독한 맛이다. 도저히 목구멍으로 넘길 수 없는 역한 맛인데 가난한 사정이 그걸 꾹꾹 눌러버린다. 누구든 그 맛을 조금이라도 안다면 아무리 힘들어도 노후 준비만큼은 살피고 또 살펴볼 텐데 안타깝다.


오늘도 A는 만 원짜리 점심을 사 먹고, 가까우니 부담 없다며 쉬이 비행기를 타고 여행을 떠난다. 나는 그들을 볼 때마다 불안감을 느낀다. 내가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쓸데없이 그러지 말라고 하시지만, 나는 A를 보면 자꾸 불안하다.


나도 가끔은 그 수많은 A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중요한 건 그것이기 때문이다.

글을 읽는 내가 A인지 아닌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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