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장난 나랑 해?

쫓아낸 지 5개월 만에 다시 오라고?

by 아말

도하에서 도착한 10개의 박스를 푸는데 몇 날 며칠이 걸렸다. 옷, 신발, 가방, 밥솥 등을 하나씩 꺼내며 각 물건에 스며든 추억들까지 꺼내 보았다. 규정상 주방에 있던 있던 물건들은 챙기지 않는다고 해서 밥솥은 특별히 부탁했었다. 아쉽게도 매일 사용했던 모카포트는 챙기지 못했다. 그렇게 텅 비었던 커다란 붙박이장과 다용도실은 캐리어를 마지막으로 꽉꽉 들어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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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리어에 붙은 택을 보니 마지막 레이오버는 역시 ICN 인천이었다. 신천지 때 인천 레이오버로 인해 나는 그렇게 도하에서 격리소로 끌려갔었다. 전 세계를 나와 함께 누볐던 꼬질꼬질한 슈트케이스 택에 이제는 더 이상 목적지를 기입할 수 없게 되었다.


짐 정리를 마치고 나의 작은 방은 조금 더 집다워졌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따뜻한 봄이 지나고 뜨거운 여름이 성큼 다가왔다. 거리두기 규제도 조금씩 완화되면서 정말 바쁘게 레슨을 했다. 7월의 어느 날 잠시 쉬는 시간에 집에 와 빨래를 개고 있었다. 그런데 카타르에서 메일이 왔다. 리조이닝(재입사) 관련의 내용이었다. 보자마자 육성으로 욕이 나왔다. 그동안 고생했던 지난 1년이 스쳐 지나갔다. 말 그대로 '장난 지금 나랑 해?' 상황이었다.


곧바로 똑같은 상황에 한국에 머물고 있던 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내가 도하에서 자가 격리를 더 해야 해 한국으로 가지 못하고 있을 때 그녀는 먼저 한국에 들어간다며 미안해했다. 그리고 가기 직전 건강 챙기라며 스페인에서 사 온 딸기를 선물했다. 물론 그녀 역시 결말이 이렇게 될 줄은 전혀 몰랐다. 한국에 와서 직접 만나지는 못했지만 그녀와 나는 늘 고민을 함께 나누었다.


전화를 받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통화시간은 몇 분에서 몇 시간으로 이어졌다. 주된 내용은 '가냐, 마냐'였다. 통화의 결론은 '우리 하루라도 바람 쐬고 오자.'였다. 긴 통화를 마치고 눈물이 났다. 흐르는 눈물방울을 느끼다 보니 1년 간 단 한 번도 큰 소리로 엉엉 울어본 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동안 부모님과 함께 있었고, 늘 남의 집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온전히 내 공간 안에 나 혼자뿐이다. 찔끔 흐르던 눈물은 멈추지 않았고 이윽고 큰 소리를 내며 쏟아져 내렸다. 한참을 꺼억꺼억 힘들게 눈물을 뿜고 나니 속이 다 시원했다. 그렇게 나대지 말라고 억누르던 서러움이 드디어 터뜨려줘서 고맙다고 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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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놀러 가기로 한 날이 왔다. 그녀는 흔쾌히 나를 집 앞으로 데리러 왔다. 동생의 얼굴을 보자마자 말 못 할 정도로 기분이 좋아졌다. 같은 처지의 동료 외에는 나의 마음을 알 사람이 없었다. 말 안 해도 서로의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과 함께라는 안도와 기쁨이었다. 강화도로 가기로 한 우리는 밀리는 주말 도로에서도 즐거웠다. 감정을 숨기거나 괜찮은 척하지 않아도 되는 1박 2일이 너무나도 행복했다. 각자 한국에 와서 어떻게 보냈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떤 마음이었는지 밤이 새도록 이야기 꽃을 피웠다. 그리고 정말 오랜만에 편안하고 따뜻한 잠을 잘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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