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빈 집과 꽉 찬 박스들

새로운 곳에서 마주하는 나의 과거와 미래

by 아말

동생의 필라테스 센터가 있는 합정은 집 값이 어마무시했다. 나는 부동산에 연락해 딱 두 개의 집을 봤다. 하나는 배우 차태현 님 소유의 건물이었는데 조금 더 넓고 내부도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센터와 멀었고 주변에 자동차 공업소들이 많아서 내키지 않았다. 다른 집은 평수는 더 작았지만 건물이 깨끗했고 주거지 안에 있어 조용했다. 짐도 거의 없는 나는 그거면 충분했다. 바로 계약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임대인분은 내가 한국에 들어와서 만난 첫 귀인이었다.


급한 대로 침대 등 필요한 것들만 최소로 주문했다. 한국에 있을 때는 부모님이 다 해주셨던 것들, 마닐라나 도하에 있을 때는 원래 집에 다 있던 것들이었다. 서른네 살이 되어 처음으로 내 공간을 채우는 순간이었다. 그동안 강원도-서울, 에어비앤비를 전전하며 끌고 다니던 캐리어를 덩그러니 풀어놓았다. 초라한 짐을 정리하고 침대도 도착했다. 새 침대에 앉아 한참 생각에 잠겼다. 모든 것이 사라져 버린 듯 서글펐다. 하지만 채우는 것보다 비우는 것이 더 힘들지 않은가? 한편으로는 이 강제적 제로베이스가 짜릿했다. 앞으로 어떻게 채워나갈지 궁금해졌다.


이제 필라테스 강사로서 레슨을 잘하기만 하면 됐다. 당시에 해고당하거나 퇴사한 승무원들 중 상당수가 필라테스 강사로 전향했다. 오죽하면 "'승무원 출신 필라테스 강사'는 걸러라."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나는 그런 프레임이 싫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 동생의 필라테스에 대한 철학, 그리고 전문성을 지키고 싶었다. 그래서 계속 공부하고 움직이고 회원들을 만났다. 그러는 동안 조금씩 기운이 났다. 그러나 레슨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계속되는 코로나 확진자 증가로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은 더욱 강화되었고 결국 운동시설의 영업이 중단되었다. 나는 다시 백수가 되었다.


그리고 한국에서 33번째 생일을 맞았다. 오랜 친구들과 함께 그토록 웃었던 게 언제인지 모를 정도로 즐거웠다. '만약 코로나로 인한 정리해고가 아니었다면 이런 시간을, 이런 평범한 일상(코로나 녀석 때문에 아주 평범하진 못했지만)을 보낼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화나거나, 슬프거나, 우울했던 시간의 반증 같은 생각이었다. 어쩌면 '오히려 잘 됐어.'라는 생각으로 나를 살려야 했다. 그리고 강원도에서의 산책은 한강에서도 계속 이어졌다. 서울 한강은 정말 예뻤다. '이러려고 그렇게 된 건가?'라는 질문에 예쁜 한강은 '맞아.'라고 답해주는 듯했다. 그렇게 송두리째 사라진 2020년이 가고 새로운 해가 왔다.



그동안 카타르항공과 계속 메일을 했다. 해고가 확정되고 도하에 직접 와서 짐을 챙겨갈지, 짐 싸는 걸 감독해 줄 대리인을 지정해 택배로 받을지 결정했어야 했는데 나는 후자를 선택했다. 그리고 함께 살던 러시아 국적의 동기인 율리야에게 부탁했다. 드디어 짐 싸는 날이 되었고 율리야는 업체들이 내 방에서 짐을 싸는 동영상을 찍어 보냈다. 얼마 만에 보는 내 방인지 너무 반가웠고 이내 조금 슬퍼졌다. 슬펐다기보다는 아쉬웠다. 이제 내 짐들이 무사히 한국으로 도착하기만 기다리면 정말 모든 게 끝이었다.



다행히 운동시설의 영업시간을 단축하는 조건으로 우리 필라테스 센터의 운영도 재개되었다. 처음보다 레슨도 제법 많아졌다. 어느 날, 동료 강사들과 스터디를 하고 있는데 곧 짐이 도착한다는 연락이 왔다. 나는 곧장 집으로 달려갔다. 드디어 10개의 박스에 담긴 나의 즐거운 추억, 소중한 경험들을 마주했다.



그 안에는 내가 사랑했고 증오했던 시간들이 담겨있었다. 박스를 바라보는 눈에서 무언가 흐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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