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내가 어떤 마음일지 모르니 그냥 오늘 하는 거야
사람일은 어찌 될지 모르는 법.
하루에도 몇 번씩 오락가락하는 나는 오늘, 내일, 그리고 몇 달 후의 내가 어떤 생각을 하게 될지 가늠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지금 당장은 갈 마음이 없더라도 일단 리조이닝(재입사)을 하겠다고 메일에 회신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와 줌미팅이 잡혔다. 면접의 개념보다는 퇴사 이후로 변화된 것이 있는지를 확인하는 정도였다.
면접관들은 '결혼은 했냐, 백신은 맞았냐, 아픈 데는 없냐' 등등의 질문을 했다.
그래서 나는 답했다.
'나이 말고는 변한 게 없어.'
그러나 마지막 단계에서 나는 언제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확답을 미뤘다.
그 사이 8~9월 즈음 나를 제외한 동기들은 모두 카타르행 비행기에 올랐다. 함께 여행을 다녀온 동생도 카타르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동기들이 떠나는 날, 공항에서 영상통화를 걸어왔다. 그중에는 한국에 와서 공항공사에 합격하여 일하다가 어렵게 입사한 직장을 뒤로하고 다시 유니폼을 입기로 한 친구도 있었다. 나는 그들의 건강과 안전을 기원하며 휴대폰 화면으로나마 작별 인사를 건넸다. 영상통화를 끊고 생각에 잠겼다.
'나는 과연 그럴 수 있을까?'
'과연 지금 생활이 다시 비행을 하지 않아도 될 만큼 괜찮은가?'
사실 잘 모르겠다.
모두가 떠난 한국에 남아 나는 열심히 필라테스 레슨을 했다. 그러나 프리랜서의 들쭉날쭉한 수업과 수입이 늘 불안했다. 그리고 몸을 써야 하는 이 직업을 과연 내가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이게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기 시작했다. 그러는 와중에 다시 비행을 시작한 동료들의 사진이 SNS에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돌아가는 대신 한국에서 또 한 번 새로운 해를 맞이했다.
2022년, 다시 한번 리조이닝 채용이 대대적으로 이뤄졌다. 2022년 카타르 도하 월드컵을 앞두고 리조이너(경력직 승무원)가 매우 필요한 상태였다. 기존 크루들을 다 잘라버린 탓에 신입 승무원의 비율만 높은 탓이었다. '월드컵만이라도 보고 올까?'라는 생각도 잠시 했지만 내가 리조이닝을 망설였던 가장 큰 이유가 있었다. 바로 '다시 한국에 돌아왔을 때'가 두려웠기 때문이다. 카타르에서 평생 일할 게 아니라면 내가 지난 1년 간 한국에서의 경험을 언젠가 돌아왔을 때 또다시 겪어야 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때의 퇴사는 구조조정이 아닌 나의 결정일 것이고 추후의 계획도 있을 테지만. 지난번에 확답을 미룬 탓에 이번에 또 연락이 왔고 이번에도 제대로 확답을 하지 못했다. 이때까지도 나는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지 몰랐기 때문이다. 마음 한편에는 '내가 떠나면 동생이 혼자 힘들어하진 않을까?'라는 멍청한 오지랖도 있었다. 그리고 지금 이 프리랜서 생활이 불안해 다시 카타르에 간다면 그것은 '도피'가 될 것이고 그렇다면 가서도 만족을 못할 거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때 즈음 친한 친구가 동대문 도매시장에서 의류브랜드를 론칭했다. 그리고는 나에게 용돈 벌이를 할 겸 자신의 상품을 소매로 팔아보라고 가볍게 제안했다. '프리랜서의 장점이 무엇이겠냐, 얽매이지 않고 하는 만큼 버는 것 아니겠냐.' 싶어 마음먹으면 바로 저질러 버리는 나는 그렇게 덜컥 사업자를 냈다. 필요한 절차를 다 밟고 스마트 스토어를 오픈해 친구의 옷을 조금씩 팔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노력하는 만큼 매출이 나오는 것에 흥미와 의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그렇게 낮에는 수업, 퇴근 후에는 밤늦게 동대문을 가는 것이 생활이 되었다. 몸은 더 피곤해졌지만 그제야서야 내가 무엇인가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힘들기만 한 한국살이를 청산하고 다시 카타르로 돌아가 남들이 선망하는 유니폼을 입고 다시 전 세계를 누비고 싶은 마음도 굴뚝같았다. 하지만 이렇게 오게 된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살아보기로, 그렇게 객기를 부리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