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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soh Jul 04. 2019

눈만 봐도 다 알아_박찬세 시집

사춘기 그 쓸쓸함이 대하여

사춘기 혼돈의 시간을 보냈던 박찬세 시인의 청소년 시절 얘기가 이 시집 한 권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 같아요. 책을 처음 펼쳤을 때 피식피식 나던 웃음이 책장을 넘길수록 나의 청소년기와 맞물려 서글픔으로 밀려옵니다. 이 책은 ‘청소년 시선’으로 분류되지만 어른을 위한 시집으로도 전혀 손색이 없어 보여요. 도서관에 반납하려니 아까운 마음이 들어 알라딘으로 가서 도서 검색을 해보았는데 품절이 되었다고 하네요. 그냥 아쉬워하고 말아야 하나? 하다가 ‘재입고 알림’ 신청을 해봅니다. 그러다가 행여나 재입고가 안되면 어쩌나 싶어서 품절 도서센터 문의를 해보기로 했습니다. 도서 수급이 가능한지 확인하는데 3일이 걸린다고 하네요. 새책으로 결제를 해놓고 설레는 마음으로 3일을 기다려보기로 합니다.


도서관에서 빌려 읽으면 되지 뭘 품절센터까지 의뢰를 하냐? 하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많은 분들이 이 시집을 읽으면 좋을 것 같아서 책을 더 찍어내라는 행위를 하고 싶었나 봅니다. 내가 읽고 좋았던 책은 다른 사람들도 읽어봤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언젠가 제 아이도 사춘기에 접어들 테고, 그맘때 누구나 하는 고민을 하게 되면 잔소리 대신에 슬쩍 이 시집을 내밀어볼까 싶더라고요. 만들어진지 얼마 안 된 시점에서 의뢰를 하고 미리 받아놓는 게 빠를 것 같았어요. 몇 년이 지난 후에 신청하면 받기가 더 어려울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거든요. 이 책을 몸만 자란 어른들과,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 그리고 방황하는 사춘기의 청소년들이 많이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가져봅니다.

이 시집은 전반적으로 해학적인 글로 엮여 있지만 글 아래로 슬픔이 서려 있는 것 같아요.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알게 되는 것들이 있잖아요. 그 마음이 녹아 있어서 그런 게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선생님은 눈만 봐도 다 알아?

선생님은 맨날 말씀하셨다
- 선생님은 너희들 눈만 봐도 알아
    얼굴에 다 쓰여 있어
    선생님 속일 생각 하지 마
오늘 선생님이 묻는다
- 너 왜 말 안 했어?
   일 년 동안 왕따를 당했으면 말을 해야지
   니가 말을 안 하면 내가 어떻게 아니?
선생님은 아무것도 모른다
나는 일 년 동안 매일매일 말했는데
눈으로......(P.59)



친구도 없이 그 긴 시간 동안 얼마나 힘들고 외로웠을까요. 감히 짐작할 수도 없을 것 같아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선생님이나 부모가 알아차렸더라면 외롭고 힘든 시간을 줄일 수 있었을까요? 선생님께 매일매일 신호를 보냈는데도 알아주지 못하니 선생님이 얼마나 야속했을까요. 학년이 끝날 때쯤 알아차린다 한들 그때는 이미 늦었겠죠. 학년이 바뀌면 새로운 담임을 만날 테고, 새로운 담임이 알아차리는데 또 1년의 시간이 흐를 테니까요. 이 외로운 시간을 혼자 고스란히 견뎌내며 책을 읽고,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며 보냈다고 합니다. 책을 읽을 수 있고, 시를 쓸 수 있고, 그림도 그릴 수 있어 혼자여도 괜찮다고. 왕따여도 괜찮다고 하는데 그 글을 보는 제가 괜찮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저는 정말 모르는 게 많은 것 같습니다.
아이의 마음을 다 읽을 수 있다는 착각을 하며 아이가 보내는 마음의 소리가 아닌 내 방식대로 아이 마음을 해석하고 있던 건 아닌지 제 자신을 꾸짖어 봅니다.
“엄마는 정말 아무것도 몰라.”
“엄마가 몰라서 미안해. 엄마가 네 마음을 알 수 있게 네 마음을 말해 줄래?”
“됐어! 늦었어.”
정말 더 늦어 버리기 전에 자주자주 들여다봐야겠다고 다짐해봅니다.



고양이

어른들은 만나면 맨날 묻는다
- 넌 하고 싶은 게 뭐야?
- 꿈이 뭐야?
나는 공부를 못하고
얼굴도 잘생기지 않았고
집도 잘살지 못한다
나는 내가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냥 가만히 있고 싶고
그냥 놀고만 싶다
나도 나를 잘 모르겠다
그냥 이렇게 살다가
그냥 이렇게 죽고 싶다
내 꿈은 그냥 그냥 고양이다.( P.89)


언젠가 한끼줍쇼라는 프로그램에 이효리가 나온 적이 있는데요.  지나가는 어린이를 보며 강호동이 묻습니다.  “우리 친구는 나중에 커서 뭐가 되고 싶어요?” 그때 옆에 있던 이효리가 버럭 하며 “되긴 뭘 돼?!” 하더라고요. 당황하는 강호동이 “훌륭한 사람으로 크세요.” 했더니 “뭘 훌륭한 사람이 돼?! 그냥 아무나 돼.”라고 하던 모습이 잊히지가 않습니다.

저는 자랄 때 부모님이 제게 거는 기대가 없었어요. 그냥 빨리 취직하고 돈 벌어서 밑으로 있는 남동생들 뒷바라지해줬으면 하셨거든요. 중학교 3학년 진학 상담할 때 ‘공부시켜서 선생 시켜라.’ 하는 담임 선생님 말씀에 ‘얘는 동생들이 많아서 빨리 취직해야 돼요.’ 하던 엄마 말씀이 잊히지가 않아요. 저는 말 잘 듣는 딸이었기 때문에 부모님이 바라는 대로 일찌감치 취직해서 남동생 둘 뒷바라지하며 살았습니다. 당연히 그래야 하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나중에 세월이 흐르고 나이가 들면서 ‘그때 나는 왜 그랬을까?’ 하며 곱씹어보던 때가 있었어요. '엄마 말을 거역하면 버림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깔려 있지 않았나'하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아이를 낳아 보니 아이에게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이다음에 커서 엄마가 이루지 못한 꿈을 대신 이뤄주었으면 하는 못땐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거예요. 그래서 공부 잘했으면 좋겠고, 명망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더라고요. 아이한테 욕심을 부리면 안 돼 안돼 하면서 저를 또 꾸짖고 아이는 그냥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바꿔놔 봅니다. 그러다가 그 마음을 잊어버리고 ‘나중에 커서 뭐 될 거야?’ 하고 물어봅니다. 이 시를 읽고 나서 이젠 정말 정말 그러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해보며 그저 건강하게만 자라라!라는 마음으로 못 박아 놓아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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