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큼
땅콩 할아버지가 콩 잡으시고
아니
단군 할아버지가 터 잡으시고
아~
당근 할아버지가 코 잡으시고
아는 만큼 들린다.
아는 만큼 보인다.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은 내가 어렸을 때도 즐겨 불렀던 노래다.
익숙한 음에 가사를 더해 아이들의 목소리로 듣는 기분은 어딘가 어색하면서도 반갑다.
첫째를 지나 둘째, 셋째를 거쳐 넷째의 입에서도 흘러나오는 음악은 나로 하여금 고개를 끄덕이게 하고, 같이 흥얼거리게 한다.
넷째는 또박또박 가사를 넣어 나에게 불러준다.
“땅콩 할아버지가 콩 잡으시고”
“어? 왜 땅콩 할아버지가 콩을 잡으시지?”
“엄마, 땅콩 할아버지!! 땅콩 할아버지 몰라? 땅콩 할아버지니까 콩을 잡지”
되는 대로 말하는 건가? 믿음이 갈 정도로 저 당당함은 뭐지?
“아, 땅콩 할아버지가 콩 잡으시구나, 근데 빛이야!
땅콩 할아버지가 콩 잡으시고 아니고~
단군 할아버지가 터 잡으시고 이렇게 불러야 해”
“아~~ 알았어 엄마!
당근 할아버지가 코 잡으시고”
아........ ^______________^
어쩜 이런 모습 나 아닌가?
옳은 걸 말해줘도 내가 듣고 싶은 대로 듣고,
좋은 걸 보여줘도 내가 보고 싶은 대로 보는 모습말이다.
그럼에도 그게 진짜인양, 그게 맞다는 양
그렇게 살아가고 있진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