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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향인 Jun 05. 2023

2023년 완도여행 3일차, 그리고 정리

나의 여행_24

집에 돌아왔다. 신흥사에서 택시로 완도 버스터미널까지 이동->완도에서 버스로 광주 유스퀘어까지 이동->광주 유스퀘어에서 택시로 광주송정역까지 이동->광주송정역에서 ktx로 용산역까지 이동->용산역에서 1호선을 타고 창동역에서 4호선으로 갈아탄 후 귀가 라는 과정을 거쳤다. 이렇게 써놓으니 참 멀기도 멀다. 그런데 아직도 나는 완도가 멀게 느껴지지 않는다. 오롯이 나 혼자만의 의지로 선택한 여행지여서 그런가보다.


간밤에는 깊은 잠을 자지 못했다. 20키로를 걷고 피곤해서 완전 곯아떨어질 줄 알았는데 이상하게도 잠이 잘 오지 않고 묘한 흥분상태가 계속되었다. 아드레날린 과다 분비인가 생각도 해 보았다. 아무튼 그렇게 자다 깨다를 하다가 6시 반에 아침공양을 하러 갔다. 가는 날이니 뽕(?)을 뽑고 가야겠다는 생각에.


3일차의 완도는 흐리고 비가 조금씩 내렸다. 걷기에는 오늘같은 날이 더 나은데, 생각하였다. 아침공양을 하고 방 앞 툇마루에 앉아 이제 당분간 보기 어려울 완도 바다를 마저 눈에 넣고 있는데 주지스님이 다가왔다. 나에게 개(사고뭉치 사랑이) 산책을 맡긴 그 스님이다.

흐린 날의 절도 운치있다

스님과 직장 이야기며 완도 이야기, 절 이야기 등을 소소히 나누는데 전화벨소리가 들린다. 스님 전화였다. 그런데 벨소리가 그룹 '장미여관'의 '봉숙이'가 아닌가. 그 느물느물하고 끈적하며 의뭉한 노래가 다른 사람도 아닌 절 주지스님의 벨소리라니. 나는 속으로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그리고 아직 법명을 모르는 이 주지스님을 앞으로는 '봉숙 스님'이라고 부르리라, 생각했다.

스님의 이미지는 이들과는 영 다르지만, 그래도 나에게는 어쩔 수 없이 봉숙 스님이다

봉숙 스님은 전화통화를 하러 가 버리고 나는 바다를 마저 보다가 방으로 들어갔다. 누워서 조금 더 졸다가 씻고 방 정리를 마쳤다. 내가 떠난 뒤 바로 사람을 받아도 무리가 없겠군, 나는 내 청소상태에 스스로 만족하며 절을 뒤로 하고 택시에 올랐다.


그 뒤로 집에 도착할 때까지는 이동 이동 또 이동이다. 물론 그 사이사이에 회사에서 연락이 자꾸 와서 산통이 좀 깨지기는 했다.(그정도 알려줬으면 혼자서 처리해도 되련만 어쩜 그리 하나하나 시시콜콜 물어보고 보고를 하는지) 마지막에 전철에서는 퇴근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과장님이 내가 만들어 놓은 자료를 '지금 당장' 찾는다고 해서 식겁하기도 했고.(이래서 내가 인사과를 떠나려는 거다)


하지만 짜증은 잠시, 정말 잠시였다. 다른때 같으면 그 짜증의 여파가 꽤나 오래 갔을텐데 이번에는 그러지 않았다. 어제 무리를 해서인지 머리도 좀 아프고 땡볕에 익어버린 팔이 화끈거렸지만 다 괜찮았다. 나의 마음은 이상하리만치 금방 평화를 찾았다. 절에서 얻은 평온함일까, 아니면 20키로를 홀로 걸으면서 다진 굳건함일까. 아무튼 나는 나의 이런 변화가 퍽 만족스러웠다. 얼마나 지속될지는 모르겠지만.


집에 도착하여 엄마와 애들과 반가이 인사를 나누고 짐을 풀고 나서 저녁을 먹고 빨래정리를 한 후 안방에 조용히 앉으니 다시 돌아왔다는 실감이 났다. 내일 하루 몸을 추스르며 쉬고 나면 다시금 서울에서의, 시청에서의 일상이 나를 기다리고(혹은 벼르고) 있겠지. 하지만 나는 언제건 또 떠날 것이다. 그런 다짐이 나를 편안히 숨쉴 수 있게 해 준다. 이다음 여정이 봉숙 스님을 또 보러 오는 것이 될지, 그건 아직 모르지만.

어제 절에서 나와 완도해조류센터까지 가는 길에 본 완도군청. 공무원이라고 이런 게 예사로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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