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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향인 Nov 28. 2023

혼밥

나의 시_124

짐승이 상처를 입으면 아무도 없는 곳에 숨어들어서

상처가 아물 때까지 꼼짝하지 않는대요


짐승의 상처에 대해 잘 아는 이가 있다면

그를 찾아가 만나고 싶다

어딘가에 한 명쯤은 있을 것이다

운이 좋으면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디에서 먹을지 정하지도 않고서

혼자 밥 먹겠다고 도망쳐 나온 후

만나지도 않은  사람과

언어 없는 대화를 하면서


나는 혼자 먹는 밥을 좋아해요

혼자 마시는 커피가 가장 맛있죠

산책은 무조건 혼자 해야 해요

라고 말하며

그의 눈빛을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공허할 수도

아니면 연민에 반짝일 수도 있는

사람의 것인지 짐승의 것인지 알 수 없는


짐승의 상처는 잘 알면서

사람에 대해서는 모르시나 봐요

사람보다는 짐승에 가까운 쪽이시군요

일갈하며 발톱을 세워 마음을 부욱 북 긁으면

그제야 화들짝 놀라 분노에 타오를

눈빛이 필요하다


우리 밥이나 먹으러 갈까요?

대신, 식당에서는 반드시 따로 앉아야 해요

밥을 다 먹거든 나에게 말해 주세요

나는 혼자 먹는 밥을 좋아해요, 라고

그리고 말을 마치고 나면

꼭 내 눈빛을 보아 주세요

꼭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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