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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전 열한시 May 28. 2021

나는 커피를 올려 마신다.

스테인리스 모카포트 이야기

모카포트를 처음 알려준 건 남편이었다. 작은 주전자처럼 생긴 모카포트를 백화점 주방용품 코너에서 봤을 때 남편은 이탈리아 사람들이 가지고 다니는 것을 본 적이 있다고 알려 주었다.

나는 그때까지 가장 친환경적으로 커피를 마실 수 있는 방법은 스테인리스 커피 드리퍼로 내린 드립 커피뿐이라고 생각했었다.

모카포트는 내게 신(新) 문물이었다. 하지만 모카포트는 1933년부터 역사를 이어온 완벽한 구(舊) 문물이다.


모카포트는 일종의 작은 커피 머신으로 하단부에 물이 끓으면서 발생한 순간 압력 수증기로 상단에서 커피가 추출된다.

내려마시는 방식이 아닌 올려 마신다는 얘기다.

이탈리아 가정집마다 하나 이상 꼭 있으며 개인용 모카포트를 여행 시에 가지고 다닐 만큼 그들의 모카포트 사랑은 지극하다고 한다.


모카포트는 1933년, 이탈리아의 비알레띠(Alfonso Bialetti)에 의해 탄생했다. 에스프레소를 가정에서도 손쉽게 즐길 수 있도록 고안된 것으로 이전에는 일반 카페에서만 에스프레소를 즐길 수 있었다고 한다.

모카포트는 에스프레소의 대중화를 가져온 혁신적인 발명품인 것이다. 에스프레소(espresso)를 이름처럼 빠르게 만들어 낸다.


드라마 ‘빈센조’에서 송중기는 "이탈리아에서는 아메리카노는 구정물"이라고 한다고 말하는 대목이 있다. 이에 전여빈은 굴하지 않고 카페 직원에게 “저는 아이스 구정물 한 잔요.”라고 받아친다.

커피 원조 국가의 자부심이 어느 정도인 짐작케 하는 대사였다. 나는 물론 아메리카노가 구정물이라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한여름의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충분히 매력적이다.

아메리카노의 유래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커피에 물을 타서 마시는 미군 병사를 보고 이탈리아 사람들이 '미국인들이 마시는 커피'라는 뜻에서 아메리카노라고 불렀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이탈리아 사람들이 생각하는 커피는 에스프레소뿐인 것이다. 그러니 모카포트에 담은 애정과 자부심은 말할 것이 없다.


집에 있는 전자동 커피머신이 6년 만에 고장이 나자 남편과 나는 망설임 없이 모카포트를 주문했다.

전자동 커피머신은 세척과 관리가 쉽지 않았다. 또한 공간 역시 많이 차지한다.


미니멀한 살림을 좋아하는 나는 단번에 모카포트에 끌렸다.

모카포트는 알루미늄 재질이 더 흔하지만 스테인리스 제품을 선택했다. 스테인리스 제품은 인덕션에도 가능하고 유해물질이 발생하지 않아 알루미늄에 비해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다.

가장 작은 사이즈인 2컵용은 인덕션에 인식되지 않아 4컵용을 선택했다.

곱게 간 원두와 정수된 물을 포트에 채운 다음 인덕션 위에 올리면 물이 끓으면서 발생한 수증기가 원두를 통과하면서 에스프레소 원액이 추출된다. 수증기가 오일 성분까지 씻어 내리기 때문에 드립 커피와는 다른 지용성 향이 나온다.


에스프레소를 좋아하는 남편과 카페라테(caffè latte)를 좋아하는 나에게 더없이 좋은 방식이다. 핸드드립으로는 맛있는 라테가 어렵다. 얼음과 물을 더하면 완벽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역시 가능하다.

설거지 또한 물로만 가볍게 씻으면 되니 관리의 부담이 없다. 세제는 커피 향을 죽일 수 있어 사용하지 않는다.


처음엔 작고 간편한 캡슐커피도 고려했었지만 일회용이 주는 부담감 때문에 제외시켰다.

지구에서 한 해 동안 버려지는 커피 캡슐의 양은 최소 8000t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커피 캡슐은 플라스틱과 알루미늄 등이 결합돼 있어 일일이 분해, 세척하여 재활용이 되는 비율 또한 낮다.

또한 무엇보다 유해성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다.

캡슐커피는 고온·고압의 물로 커피가 추출된다. 이 과정에서 여러 가지 유해성분이 용출될 가능성이 있다. 매우 소량이라 할지라도 꾸준히 여러 잔의 커피를 마시는 사람에게는 유해할 수 있는 것이다.


아이러니한 일은 커피 캡슐을 만든 개발자가 자신은 캡슐커피 기계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고백했다는 것이다. 자신의 개발품이 환경에 끼친 부담 때문에 태양열 패널을 만드는 회사를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모카포트는 캡슐커피에 비해 조금 더 번거로울지 모르지만 더 건강하고 많이 친환경적인 일인 것이다.


스테인리스 모카포트 첫 사용법

처음 구입한 스테인리스 모카포트는 오일과 키친타월을 이용해 꼼꼼하게 연마제를 닦아준다. 검은 연마제가 묻어 나오지 않을 때까지 닦아준다. 식초를 희석한 물로 끓여준다.

그다음 여러 번 커피를 추출해 준다. 추출한 두세 번의 커피는 버린다.


원두 분쇄

매일 마시는 사람이라면 모카포트용 분쇄 원두가 간편하다. 하지만 집에서 먹을 만큼만 직접 분쇄하면 좀 더 신선한 커피를 마실 수 있어 좋다.

원하는 원두를 구입해 구입처에 분쇄를 부탁하는 것도 좋은 방법

이때 한 번에 하기보다는 반 정도 나누어서 분쇄하면 더욱 신선한 맛을 즐길 수 있다.


모카포트로 만드는 커피는 일종의 요리다.

불 조절과 시간에 따라 각기 조금씩 다른 맛을 낸다. 내 입맛에 맞는 나만의 레시피를 찾는 것이 꽤 흥미롭다.

커피를 갈고 커피를 올려마시는 이 과정 모두가 커피를 즐기는 시간이 된다.

모카포트의 증기 소리에 맞춰 커피 향이 온 집안에  은은하게 퍼져나간다.

이 시간이 에스프레소만큼 밀도 있게 느껴진다.


@a.m_11_00

인스타그램에 매일의 살림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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