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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동이맘 Jul 25. 2024

시련의 끝에 꽃은 필까?

조리원에 들어가게 해 주세요


 병원에서 아이를 새벽에 낳은 후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세상에 감기가 유행이란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출산하기 바로 얼마 전에 병원에서 신생아 감기가 나왔다고 한다. 때문에 산후조리원은 폐쇄가 되었고, 응급산모가 있을 수 있으니 병원은 운영하고 있었지만 어디 갈 곳이 없었다. 의사 선생님은 병원비는 받지 않을 테니 급하게 산후도우미를 알아보라 권하셨지만, 집이 영흥도라 산후도우미가 없었다. 이곳까지 들어오겠다는 분은 없었고 어느 곳에서도 나와 아이를 받아주는 곳이 없었다.


 아이를 낳자마자 그 새벽에 나는 눈물을 쏟아냈다.

 

이런 젠장

 

 태평하게 신랑은 자기만 믿으라며 집으로 가서 신생아를 볼 테니 나는 조리만 하면 된다며 근거 없는 자신감을 내세우며 큰소리 빵빵 쳤는데, 아무것도 집에 없어요.

 당연히 산후조리원에 들어갈 것이라 생각해서 분유도, 젖병도, 신생아 케어의 아무것도 없어요.

 사전에 문의했을 때에도 병원에서 퇴원하고 바로 산후조리원에 입소할 예정이라 아이에 관한 용품은 따로 들고 오지 않아도 된다고 해서 내 물건만 있는데, 이대로 신생아를 데리고 집으로 가라니!

 무엇보다 난 신생아를 본적도 안아보지도 않았고 밥도 줘 본 적이 없단 말이다.

 또한 아이를 낳고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해서 아이와 만남도 극도로 조심하게 만났다. 태어나서 딱 한번 봤을 뿐이다. 그렇게 병원에 외부인 출입금지라고 말을 했음에도 다른 방(같은 시기에 아이를 낳은 산모들)에 외부인(양가 부모님들)이 몰래 들어왔는데 간호사님에게 걸려서 우리 또한 아이와 만날 수 없게 되었다. 갓 태어난 아이에게 또다시 바이러스가 옮으면 안 되었으니까!

 

 그렇게 아이를 낳고 이틀 만에 모자동실로 한 시간 동안 아이를 볼 수 있게 되었는데, 그렇게 자신만만하던 신랑이 처음 아이를 안아보고는 여기저기 전화를 돌리며 갑자기 산후조리원을 이곳저곳 알아보고 다녔다. 어찌나 분주하게 움직이던지 넋을 놓고 허둥지둥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노라니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신랑의 간절함에도 우리를 받아 줄 산후조리원은 나타나지 않았고, 하는 수 없이 신생아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집에 오니 정말 막막했다. 차에서 올 때 잘 자던 아이가 집에 도착하자마자 울고 난리가 났다. 배고픈 것인데 집에는 분유도 젖병도 없었다. 급히 분유와 젖병을 사러 신랑이 차를 끌고 동네마트에 갔는데 분유와 젖병이 없단다. 우린 그때 처음 알았다. 시기별로 먹는 분유와 젖병이 따로 있다는 것을...

 신랑은 하는 수 없이 더 큰 마트를 찾아 대부도로 떠났다. 집에 신생아와 나만 놔두고

 젖이 아직 돌지 않아 아이에게 젖을 물릴 수도 분유도 없고 아이는 배고파서 자지러지게 울고, 하도 울어서 얼굴이 새빨개졌는데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급한 대로 보리차를 끓여 한 입 먹였는데 몇 번 받아먹고는 피곤했는지 잠이 들었다.

 때마침 신랑이 분유를 갖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젖병이 없단다.

 그때 나는 윗옷을 홀라당 벗어던지고 아직 들어가지 않은 배에 아이를 놓고 어찌 물려야 하는지도 모를 젖을 아이 입에 갖다 대고 있었다. 신랑이 없던 한 시간 사이에 나는 머리는 산발에 땀으로 온몸이 덕지덕지 흥건했고 아이얼굴은 새빨개져서 쌕쌕 거리며 잠을 자고 있는데 그 모습을 보는데 참 안쓰럽고 황당하고 눈앞이 캄캄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아무것도 할 수도 없었다.


 부랴부랴 한 군데 산후조리원에 전화를 걸었더니 당장 오란다. 울먹거리면서 진짜 가도 되냐고 몇 번을 되물었는지 모른다. 원장님은 걱정하지 말고 조심히 오라고 다정하게 말해주셨다.

 얼른 아이에게 분유를 타서 (젖병이 없어서 대접에 분유 타서 숟가락으로 떠 먹여줬다.) 어찌어찌 트림도 시키고 출산가방을 그대로 다시 들고 차에 올라탔다. 신랑은 차에 타면서도 연신 가도 된데? 괜찮데? 연신 물어보는데 눈물이 나서 제대로 대답도 하지 못하고 핏덩어리를 안고 그저 끄덕거리기만 했더란다.


 한 시간을 달려 산후조리원에 도착하니 간호사님이 안고 있던 아이를 데리고 가 옷을 갈아입히고 누이는데 어찌나 안심이 되고 우리를 받아주어서 너무 고맙고 감사했다. 원장님은 받아주면 다른 산모님들이 걱정을 해서 안 받으려 했는데 내 목소리가 안되어서 오라고 했다고 하셨다. 대신 다른 산모들에겐 출산한 병원에 대해 함구하라며 주의를 주셨을 뿐 친정엄마처럼 보듬어주시고 여러모로 신경을 많이 써주셨다.

 호실을 배정받고 옷을 갈아입었는데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살았다!


 배가 고파서 악을 쓰고 우는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었고, 안는 방법도 몰라 어정쩡하게 아이를 들었으니 얼마나 힘들고 불편했을까~

 우리 아들은 도움도 되지 않는 초보엄마 곁에서 떨어져 프로이신 간호사님에게 케어받으니 한결 표정이 부드러워졌다.


 고작 3일 만에 벌어진 일이었지만, 나에겐 하루가 억 겹의 세월만큼 느껴질 정도로 막막하고 힘들었으며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답답하기만 했었는데 신랑은 과정이야 어쨌든 결과적으로 잘 해결돼서 기쁘다고 했다. 무엇보다 출산비용이 안 들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병원에서는 병원비를 받지 않고 편안히 있다가 가라고 했는데 자연분만이어서 입원비만 내면 되었는데 그 돈을 받지 않겠다고 한 것이다. 거기다 인천시랑 옹진군에서 출산비용을 받을 수 있었는데 그 돈으로 산후조리원 비용을 댈 수 있었다. 그래서 우린 출산비용이 크게 들지 않았다.

 신랑은 그 사실이 굉장히 뿌듯하고 걱정을 많이 했었는데 의외로 잘 풀려서 다행이라고 말했는데,

 2년 전에 낳은 조카는 출산할 때 병원비랑 산후조리원 비용만 천만원가량 지출을 했다고 들었다. 그래서 금액이 많이 나오면 어쩌지 걱정을 하고 있었는데 걱정이 무색하게 무지출로 출산을 해서 신랑은 흡족해한 것이다.


 그러면서 나만 두고 신랑은 시댁으로 가버렸다.


 우리가 아이를 낳았을 때 감기바이러스가 돌고 있어서 외부인 출입금지고 이 근방의 모든 산후조리원과 산부인과에 계속 보건소직원이 돌아다니면서 검사(?)를 하고 다녀서 첫 손주를 보지 못하셨기에 시어머님이 서운해하셔서 신랑이 시댁으로 달려간 것이다.

 아이는 내가 낳았고 맘고생도 내가 하고 있는데 그런 나를 두고 자기 어머니 서운하다고 달려가는 신랑을 보면서 서운하고 눈치도 없는 놈이라고 속으로 욕을 했다.

 아직 들어가지 않은 배를 보면서 말이다.


 이제 산후조리원에 들어왔으니 푹 쉬면서 산후조리만 하면 되겠지!


 태평하게 침대에 누웠는데 누가 알았을까? 훝배앓이와 젖몸살이란 녀석이 바로 찾아올 것이란 것을...

 냉탕과 온탕을 수시로 들락거리는 만신창이가 된 내 몸은 더워서 땀을 비 오듯 쏟다가 오한이 와서 바들바들 떨다가 허리가 아파서 움직이지도 못하다가 훝배앓이로 고개를 숙이지도 못해 고개를 꼿꼿이 들어 겨우겨우 밥 한술 떠먹을 줄...


 이런 나를 두고 시댁으로 가버린 신랑과 신생아실에서 밥 달라고 우는 우리 아들 울음소리를 들으며 첫날의 조리원에서의 하루가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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