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은 내 것이 아니야
여자가 없어지고 '임산부'만 남았다.
지금도 신랑과 얘기를 나누다 보면 자연스레 나오는 말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내가'원해서 아이를 가졌다는 말이다. 맞는 말이지만, 왠지 나에게만 책임을 전가하는 것 같아 도무지 짜증 나지 않을 수가 없다. 분명 우리는 가족계획을 같이 세웠고, 엽산도 같이 먹었으며, 같은 곳을 바라본 것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임신'은 오로지 나만의 일이었으며 그 누구도 도와줄 수도 내 고통을 나눌 수도 없었다.
임신을 경험한 9개월 동안 내 몸이지만 내 몸이 아니었고, 통제가 되지 않았으며 누군가 나를 조종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질 정도로 줄에 매달린 인형극 모습이었다.
입덧이 심해서 막달까지 변기통이랑 하이파이브를 했으며 모닝 인사로 화장실로 직행하던 나에게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주어지지 않았다. 바로 침대에 누워 하루가 지나가기를 바라는 것!
그때만큼 무기력에 빠져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임신은 축복 이랬는데 그때부터 나에게 '엄마'라는 자리가 굉장히 부담스럽고 도망가고 싶은 마음만 들게 하는 자리였다. 하지만 신랑은 '아빠'가 된다는 것에 행복해하고 기뻐했지만 튼살크림을 발라주거나 태담을 하거나 내 부은 다리를 주물러주거나 하는 다정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임신기간 동안 행복했었냐고 묻는다면 주저 없이 "NO"를 외칠 것이다.
그 축복 같은 기간 동안 내가 한 일이라고는... 그저 인내하고 무기력하게 시간이 지나가기 만을 기다린 것이 전부였다. 그만큼 입덧이 너무 힘들었고 괴로웠다. 진짜 내 피와 살을 갈아 넣어 낳은 아들을 보면, 그 고생을 하며 낳은 것이 뿌듯하고 행복하고 가슴이 벅차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둘째 얘기만 나오면 난 '하악질'을 해대고 정색을 하며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라고 말하고 싶다.
아이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예쁘고 사랑스럽지만, 임신을 하고 싶지는 않다.
8개월쯤 지하철을 탄 적이 있었다. 좀 오래가야 하는 거리라 바로 임산부배려석을 찾았다. 다리는 퉁퉁 붓고 배는 나와서 다른 사람과 부딪힐 때마다 여간 신경이 쓰이고 허리는 끊어질 듯이 아파 자리에 앉아서 가고 싶었다. 신랑도 빈자석을 찾아보았지만 없어서 하는 수 없이 임산부배려석 앞에 서 있었다. 그곳엔 웬 아주머니가 앉아 있었는데 우리를 보자마자 자는 척을 했다. 우리 앞의 사람들도 마치 약속이라도 하듯 잠을 자거나 핸드폰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절대 우리와 눈을 마주치지 않겠다는 무언의 의지가 보일 정도였다.
그 이후 지하철을 탈 때면 으레 주변을 둘러보게 된다. 혹시라도 임산부가 있는지 갓난아이를 데리고 들어오는 아기 엄마가 있는지 보기 위해서 말이다. 그리고 꼭 자리를 양보해 주었다. 모든 임산부가 나처럼 힘들지 않을 테지만 내가 양보한 그 시간, 그 순간만큼은
'임신하길 잘했다! 세상은 아직 살 만하구나!'
느끼고 편안히 목적지까지 갔으면 하는 염원을 담아 별일 아닌 친절을 베푼다.
임신이 벼슬이냐고?
아니다! 임신은 결코 벼슬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임신은 그저 임신이라 생각할 뿐이다. 하지만 적어도 내 앞에 있는 임산부가 찰나일 뿐이지만 행복했으면 좋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