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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동이맘 Jul 18. 2024

산부인과는 어디?

그 많던 산부인과는 산부인과가 아니었다.

 임신을 하기 전까지 '산부인과'가 많은 줄 알았다. 집 주변에 근근이 있었고 버스를 타고 조금만 가면 흔히 있는 병원이었으니 진료를 보고 병원을 다니고 아이를 낳는 것이 힘들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내가 있는 곳은 '영흥도'였으며 이곳엔 병원이 없다.

 동네병원이 하나 있지만, 그곳도 나름 입원실을 갖춘 병원이지만 '산부인과'는 없었다.

 임신테스트기로 두 줄을 확인한 후 급히 인터넷으로 '산부인과'를 찾았다. 여러 병원이 떴지만 어디로 가야 하는지 괜찮은 곳인지 아무런 정보를 알아낼 수 없었다. 더군다나 아는 사람이라고는 하나 없는 곳에 조언을 구할 사람도 전무했다. 결국 열심히 웹서핑으로 몇 군데의 병원을 추려낸 후 신랑에게 전화를 걸었다.

 우리는 시화에 있는 한 군데 병원을 픽 한 다음 진료를 받았는데, 나중에 알아보니 그곳은 사람들이 잘 안 가는 병원이란다. 그 이유는 남자의사만 있고 자연분만을 하게끔 유도하고 수술을 잘 안 해주는 곳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여자의사가 있는 곳을 선호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할 수도 있다. 생각보다 임산부가 진료를 보는 모습은 굴욕적이고 처음 겪는 당혹감이 상당히 많이 있었다. 질초음파 검사도 부끄럽고 힘든데 신랑과 함께 보는 것이 여간 껄끄럽고 불편하고 부끄러웠다. 뱃속의 아이가 잘 자라고 있는지 확인을 하는 자리지만, 이 광경이 충격적이고 도망치고 싶었다.

 

 처음만 그랬을 뿐이고 그 이후엔 아무렇지도 않았지만 처음이 굉장히 힘들었다.


 당연히 가릴 건 가리고 신랑 앞에서 질초음파를 하지 않았고 남자선생님이라서 조심스럽고 도리어 차분하면서도 빠르게 휙휙 보셨지만 그 광경자체가 충격이었다. 그래서 여자선생님을 선호하는 것이 아닐까? 진료 보는 그 자체만으로 부끄럽고 수치스럽고 불편한데 남자선생님이라면 심적으로 안정적이기보단 더 불편함을 느끼는 것이 아닐까? 싶다. 산부인과진료는 의사 선생님의 성별을 떠나서 힘들고 불편한 과정이 많다 보니 더욱 성별을 고려하는 것이 아닐까?

 병원을 옮길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도리어 남자선생님이 진료하는 이 병원이 나는 더 안심할 수 있었고 간호사선생님들이 친절하게 도와주시는 것이 좋았으며 세세하고 자세하게 설명해 주는 의사 선생님도 마음에 들었다. 진료과정은 무엇이 되었든 불편하고 껄끄러웠지만 그건 여자의사 선생님이나 남자선생님이나 매한가지 일 것이다.


 신랑은 다른 병원에 가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권유했지만, 일차적으로 병원 옮기는 것이 힘들었고 대기시간만 1시간 30분이라~ 병원 대기실에서 무료하게 앉아있기 싫었다. 거기다 입덧이 심했기에 한 동안 병원에 가면 으레 링거를 맞아야만 했다. 1시간 30분 대기해서 진료보고 1시간 조금 넘게 링거 맞고 병원을 나서는데 다른 병원으로 옮길 여력이 있었을까?

 그래도 이곳에선 링거를 병실에서 편하게 맞게 해 주었는데 모든 병실이 1인실이고 크진 않지만 아늑했으며 방도 온돌이라 뜨끈뜨끈했다. 아이 출산이 한겨울이라 뜨끈한 온돌방이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과잉진료나 불필요한 검사를 요구하지도 않았고 산후조리원도 같이 있어서 병원을 옮기지 않고 계속 다녔다.

 물론 의사 선생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연분만 할 수 있다며 응원을 해주셨는데 그래서 산모들이 이 병원을 꺼려한 것이 아닐까? 싶었다. 굳이 왜 계속 자연분만 할 수 있다고 응원해 주시는 걸까?


 다행히도 별 탈 없이 아이는 잘 자라주었다.


 입덧이 심해서 아무것도 먹지 못해 링거와 우유만 먹던 차라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는데 의사 선생님은 위로인지 아니면 의학적 지식을 말씀해 주시는 건지


 "아이는 기존의 있던 엄마의 영양분을 쪽쪽 빨아먹으며 성장하기 때문에 초기에 못 먹어도 괜찮아~ 문제없어~ 괜찮아~ 엄마가 너무 힘들어해서 큰일이네 아이는 신경 쓰지 말고 입덧약줄까? 임상에서도 아무 문제없다고 나온 건데~"


하셨는데 그 당시에는 어버버 하며 황당하기만 했었다. 산모라는 호칭보다는 '엄마', 아이는 신경 쓰지 말라고 말하는 선생님이 툭툭 내뱉는 말 한마디 한 마디에서 뱃속의 아이보다 '나'를 신경 써주고 보살펴주는 것 같아 고맙고 감사했다. 또 진료받을 때마다 자연분만할 수 있어! 자연분만 해야지 엄마가 좋아! 걱정 말고 그냥 자연분만해! 농담인지 진담인지 구분할 수 없는 출산방법을 계속 말씀하셨는데 그것도 웃기고 재미있었다.


   그러다 아이를 낳았다.

 

 마지막으로 진료받고 의사 선생님이 언제라도 나와도 괜찮으니 출산준비하고 있고 가진통이 아닌 진통이 오기 시작하면 병원에 연락하란 이야기를 듣고 집으로 온 지 딱 3일 만에 병원으로 달려갔다. 38주 5일만 아이를 낳았다. 2.98로 태어난 우리 아들은 생각보다 작고 연약했으며 울음소리는 우렁찼다.

 밤 10시에 병원에 도착해서 새벽 4시 30분에 낳았는데 아주 앓던 이가 빠진 것처럼 시원하고 상쾌할 수가 없었다. 그 고생을 하며 품고 낳은 내 아들인데...


 낳고 보니 신랑을 낳았다.


 분명 신생아에 방금 태어나 쭈글쭈글해서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도 않을 터인데, 누가 봐도 신랑얼굴이었다. 진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씨도둑은 못한 다더니...'


 내 얼굴이 하나도 없는 아들을 낳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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