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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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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밖 가로등 불빛이 어슴푸레 들어찬 방에서 재이는 유난히 죽음을 떠올렸다. 얼마 전 병아리를 500원에 키울 수 있던 시절부터 함께한 친구와 타로를 보러 갔는데, ‘죽음’ 카드만 세 차례 나왔더란 거다. 가을 갈대처럼 커다란 낫을 든 그림자가 끝을 속삭이던. 시작과 끝의 꼬리는 서로를 물고 늘어진다. 죽고 못살던 사람과 뼈아픈 마침표를 찍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새로운 시작을 갈망한다. 시작이란 습관과도 같았다. 끝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음악을 틀자 익숙한 멜로디에 심장이 차가워지는 듯했다. 재이는 49번째 죽음을 맞이했다.


언젠가부터 9시면 잠에 들고 새벽을 수차례 헤매고 나서야 아침을 맞이했다. 점심으로 국밥을 시키면 버릇처럼 밥을 반 덜어 주인 없는 앞접시에 두었다. 이제는 대사까지 외워버린 영화를 의미 없이 틀어놓는다. 그러다 어둠이 찾아오면 굳어버린 밥을 치웠다. 사람은 어찌하여 그럼에도 살아가는가. 나는 어떤 숨을 쉬고 있나. 재이는 살아있는 숨을 쉬었던 날을 떠올려보았다. 언제더라. 별을 보러 가자는 그의 말에 따주지 않을 거면 보여주지도 말라며 괜한 심술을 부렸다. 젠칭은 여주인공한테 별도 따다 주고 바다에서 진주도 캐준다던데 너는 왜 못하냐며. 그는 잔잔히 웃더니 별도 진주도 가까이서 보면 돌조각일 뿐이라고. 배를 갈라 들여다보아도 빛이 나는 것을 주겠다 약속했었다. 덧없는 약속. 덧없는 사랑. 덧없는…


곧 죽어도 이름을 불렀어야 했다. 사랑을 잔뜩 버무린 애칭 따위 붙이지 말걸. 차가운 밥 덩이처럼 딱딱한 이름만을 불렀어야 했다. 돌이켜보면 모든 웃음에 의미를 담았다. 뱉은 숨이 콧잔등에 닿으면 멍청하게 세상을 잊었다. 아니 세상이 바뀌었다. 그가 세상이었다. 뇌가 부풀어 오른 것 같아. 재이가 머리를 거세게 흔들수록 안에 살던 기억의 파편이 여기저기 부딪히며 상처를 냈다. 햇빛이 너무 밝아 눈이 시렸다. 시린 눈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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