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력적인너란 녀석
그러니까 녀석의 존재를 알았던 것은 언제였냐, 나는 늦게 알았다. 늦덕이었다. 몇 년 전 동기들과 경주에 놀러 갔을 때 후식으로 나왔다. 호박식혜
"엥 이런 게 있었어?"
"몰랐어? 이거 진짜 맛있어"
나만 몰랐다 호박식혜
다들 왜 이렇게 맛있는 게 있다는 걸 안 알려준 거야?
호박식혜는 아주 가아끔. 카페에 가면 맛볼 수 있었다. 인터넷으로 주문해서 마셔야 하나 싶기도 했지만, 카페에서 마셔본 바로는 1) 가게마다 맛의 차이가 심한 편이고 2) 가격도 만만치 않고 3) 배송도 마음에 걸렸다. 주변에 떡집이나 전통차를 파는 집을 지나가면 호박식혜를 판매하나 유심히 살펴보았지만, 이 녀석은 좀처럼 나타나질 않았다.
원래 가질 수 없다고 느낄수록 더욱 갈망하게 되지 않는가? 호박식혜 호박식혜 노래를 부르고, 기억 속의 맛은 미화되어 이 맛있는걸 왜 다들 안 팔지라고 생각할 때! 그러니까 며칠 전! 극적으로 근처 떡집을 지나다가 호박식혜로 보이는 노란 페트병을 발견했다. 옆에는 일반 식혜로 보이는 하얀 병도 있었다. 혹시나 싶어 물었는데 그것은 바로 호박식혜였다. 호. 박. 식. 혜
내가 찾고 찾던 녀석이 집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팔고 있었다(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단 한 병만이 있었지만, 호박식혜라는 글자도 없이 마냥 얼음박스에 넣어 놓고 팔고 있었지만, 호박식혜만을 열심히 찾고 다니던 나는 녀석을 알아 보고야 만 것이다.
한 병에 8000원이라는 적지 않은 가격에 잠시 멈칫했지만, 언제 또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바로 지갑을 열었다.
호박식혜를 안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얼마나 행복하던지. 반은 얼어 있어 당장 먹을 수도 없었지만 뭐랄까, 든든함과 함께 차오르는 만족감. 집에 오자마자 형제자매들에게 자랑을 하고 얼른 녹으라고 밖에다가 내놓았다.
당일은 마실수 없었고, 하루 지나고 다 녹은 다음에 냉장고에 넣어두고 나서야 맛을 봤다. 와 근데 이것은 뭐냐. 이게 식혜냐! 거의 그냥 차가운 호박죽인데? 감동. 매우 진했다. 역시 시장 떡집이라는 선택은 틀리지 않는구나. 8000원이라는 가격이 전혀 아깝지가 않구나.
1:1 비율로 물을 부어 마셔도 카페보다 진한 맛이 날 것 같은 그런 묵직함! 호박에서 나오는 달달함! 쌀의 적절한 비율! 아이스 호박죽! 얼음을 넣어 마시니 약간 투명해지면서 벌컥벌컥 들이켜기가 좋은 것이 아주 일품이었다.
오래, 그리고 간절히 기다리고 기대한 만큼 실망이 클 법도 한데 이건 한잔 한잔이 아까울 정도다. 하루에 한잔만 마셔야지 하고 마셨는데 벌써 반이나 비워서 슬프다.
이걸 다 마시고 또 살 수 있을까. 사도 이 맛이 날까?
너무 아껴 먹다가 결국 1/3은 상해서 버렸다고 한다.....
아끼면 똥 된다 진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