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작은 소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난나의취향과 윤글 Apr 06. 2016

아아, 봄인가 보다

추락하는 분홍이 어둠보다 눈물겨운 계절


 당최 어디에도 말할 수 없었다. 나는 아직 춥다고, 아직 봄을 맞이할 수 없다고. 이미 입춘 지나 경칩도 넘어섰지만 주위로 느껴지던 한겨울의 기운을 내 힘으론 도저히 떨칠 수가 없었다고. 아니, 사실 떨쳐내기 싫었다고. 여태 그렇게 나를 뒤덮었던 오한을 벗어내지 않고 한동안 감기 비슷한 것들을 많이도 앓았다. 앓았었다.


 와아, 탄성이 절로 나온다. 감이 잡히지 않던 계절이 코끝을 스친다. 봄이, 여기저기서 돋아나는 새순의 푸릇함이 손끝에서 돋아난다. 몸 속 어딘가 아득한 곳에 잠겨있는 찰랑거리는 슬픔에게까지 봄기운이 살며시 끼친다.


 이제야 진정한 환절이 시작되는 걸까. 이제 내가 두터운 당신의 온기를 벗어서 진작 넣어둔 겨울옷들 사이에 파묻어둘 수 있을까. 당신 없이는 계절 하나 제대로 가늠치 못하던 이 몸뚱이가 드디어 봄을 느끼고 있는 걸까. 내가 당신이란 겨울, 그 싸늘하고도 아늑했던, 따뜻하지만 그늘진 계절에서 벗어나고 있는 걸까. 드디어, 내가 드디어.


아아, 봄인가 보다.


 여태 그리워했던 게 당신인지 봄인지 모를 정도로 반가운, 싱그럽기 그지없는 꽃분홍을 뒤집어 쓴 세상과 맞닥뜨렸다. 조만간 내릴 것 같은 봄비의 기운이 내 몸을 살풋 감싸 안는 것을 느꼈다. 아아, 안 되는데. 나는 투명하고 가벼운 빗방울을 이기지 못한 채 다음 봄을 기약하며 한껏 아래로 떨어져버릴 여리디 여린 분홍들을 감히 가여워하며 처연한 발걸음으로 봄의 가운데를 말없이 걸었다. 그러는 동안 늦저녁 바람은 그새 겨울을 다시 품었고, 당신은 다시금 홀연 나타나 내 옆에서 걷고 있었다. 겨울 같은 저녁이, 어두운 그늘이, 눈앞에 아른거리던 봄을 기어이 다시 거둬갔다.


 꽃샘추위는 당신보다 상냥했지만, 당신 같던 그 겨울을 기억하는 몸은 그때와 같이 벌벌 떨렸다. 으슬으슬 추웠다. 당신 온기가 다시 필요해졌다. 다시 겨울옷장을 뒤적여 당신 온기를 찾고 싶어졌다.


 하얀 입김 같이 얕은 바람에도 팔랑이는 꽃잎이, 잡힐 듯 잡히지 않으며 그렇게 하나 둘 추락하는 조금 이른 봄의 낙화가, 맨눈으로 마주한 꽃의 줄초상이, 당신을 잃은 내 모습 같다고 잠시 생각했다. 다음 계절엔 당신을 생각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가 내리 추위에 떨었던 내가, 드디어 마주한 봄에 당신 잃은 나를 죽은 꽃잎과 비교하는 처지라니.


 다신 마주칠 일 없을 당신 표정을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더 따라 해보았다. 아직은 자연스레 당신이 묻어나는 이 영정 같은 얼굴을 마지막으로 조금만 더 사랑했다. 그러다 문득, 벚나무 가지에 다닥다닥 붙어 아직 터지지도 않은 꽃봉오리들이 괜히 부러워졌다. 아직 시작되지 않은 것들이 그렇게 부러웠다. 끝을 모르는 것들의 용기가 부러웠다. 추락하는 분홍이 어둠보다 눈물겨운 계절.


 호오-. 입김이 허공에서 스러진다. 당신 같은 겨울을, 그 혹한의 조각을 데려온 꽃샘추위는 아침이 데려가고, 눈앞은 다시 환한 분홍으로 개어 있겠지.


아아, 정말 봄인가 보다.








윤글,

Instagram.com/amoremio_yoon

매거진의 이전글 사랑해요, 사랑해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