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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것은 끝까지 해내고 싶었다

바디프로필 촬영 후기 첫 번째

by 이원희

내가 중학교 때 전교생이 체육시간에 핸드볼을 했었다. 수업을 하면서 1학기 동안 반별로 토너먼트 경기를 진행하고, 운동회 때 결승전을 했다. 반대표로 10명 정도 선수를 선출했는데 나도 그중 한 명이었다. 2-3달 정도 수업을 받으면서 진지하게 경기에 임했고, 우리 반은 준우승을 할 수 있었다. 그 이후 나는 ‘나~ 핸드볼 했었어~’ 라며 운동신경이 좋은 사람이라고 잘난척하며 착각 속에서 살았다.


하지만 나는 실제로 운동신경이 전혀 없는 사람이다. 운동이라고 숨 쉬는 운동이 전부였고 일명 뻐덕이 몸치다. 엄마 말씀으로는 어릴 적 늦잠을 자서 지각을 할 것 같은 날에도 헐레벌떡 학교로 뛰어가는 법이 없었다고 한다. 생각해 보니 핸드볼을 어떻게 했을까 싶을 정도로 그때 말고는 뛰어본 기억이 없다. 과하게 움직이거나 숨이 차는 것을 싫어하고 힘든 것, 아픈 것을 싫어해서 과격하게 움직이는 것조차 싫어했다. 그래서 평생을 운동이라는 것을 담쌓고 살았다.

랬던 내가, 어느 날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러서 바디프로필을 찍겠다며 헬스장을 등록했다. 생각이 복잡하니 몸도 마음도 처지는 것 같아서 무언가를 해야 할 것만 같았다. 정신적으로 힘들면 다들 운동을 하며 자기 관리를 하라고 추천을 하는 이유가 있겠지, '나도 한번 해보겠어'라고 생각했다. 운동을 하면 뭐라도 좋아지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기대를 했다. 누구나 한 번쯤은 버킷리스트로 해보고 싶어 하는 바디프로필이 아닌가. 나 역시도 목표가 있으면 중간에 포기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 배에 왕자가 생기지 않더라도 한 살이라도 더 어릴 때, 리즈시절 예쁜 모습을 담는 것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다.


등록 첫날 PT쌤은 나에게 식단을 맞춰 먹어야 한다고 했다. 나의 일의 특성상 시간 맞춰 식사를 챙기는 것이 어렵다. 최대한 비슷한 시간대에 탄수화물 100그람, 단백질 100그람, 식이섬유 100그람을 하루 3번 챙겨 먹어야 했다. 처음엔 탄수화물, 단백질도 구분하기가 헷갈려서 내가 지금 맞게 먹는지도 아리송했다. 시작부터 험난한 여정이었다. 도시락을 싸들고 다니면서 먹으면서 굶어야 했다. 술도 끊었다. 곡기도 끊었다. 그리고 사람도 끊었다.

일을 하는 날이면 유산소 운동을 더 많이 하고 싶으니까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걸어서 현장으로 올라갔다. 지하 2층에서 24층까지 쉬지 않고 한 번에 올라갔다. 핸드폰으로 좋아하는 노래 한곡을 틀어놓고 5분 안에 숨이 턱까지 차오르게 계단을 오르기도 했다. 이틀에 한 번은 출근 전 쌤과 개인 PT 1시간씩 근력 운동을 했고, 퇴근하면서 다시 헬스장에 들러 유산소운동을 했다. 시간이 여유 있는 날에는 저녁을 먹고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헬스장에서 한 번 더 한 시간 자전거 타기 유산소 운동을 더 했다.

나는 한 여름에도 땀이 잘 나지 않는다. 그래서 겨드랑이나 등도 더워서 축축하게 젖는 법이 없었다. 그런데 땀샘이 터졌는지 운동을 시작하고 30분도 안 돼서 옷이 흥건하게 젖을 정도로 땀이 흘렀다. 볼을 타고 땀이 흐르고 등으로 땀이 흐르는 것이 개운 한 건지 처음 알게 되었다. 매일 아침에 일어나서 움직일 때면, 아니 매 순간 숨을 쉴 때마다 복근이 너무 아펐다. 걸을 때마다 앉았다 일어설 때마다 근육들이 너무 아팠다. 계단을 오를 때마다 다리가 부서질 것 같았다. 매일 체력장을 하는 것 같았다. 오늘 하루는 쉴까? 하는 생각이 스멀스멀 들 때마다 다시 고개를 흔들며 계속 생각했다.

'이왕 시작한 거 무조건 해야 한다.'

또다시 헬스장을 가서 땀을 흥건하게 흘렸다. 매일 나의 한계를 실험하는 것 같은 시간이었다.


매일 힘든 일을 하고 있으면서도, 또 이렇게 힘들게 운동을 하면서, '누구를 위해 내가 무엇을 위해 이렇게 하고 있을까? 적당히 해도 괜찮아.'라는 생각에 현실과 타협하고 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오기도 했다. 하루는 손잡이를 부여잡고 얼굴이 뻘겋게 달아올라 천국의 계단을 오르고 있을 때였다. 목표했던 시간이 5분 남았다. 물은 바닥이 났고 목은 타고 다리는 부서질 것 같았다. 눈은 시간만 보고 있었고 1초가 1분 같고, 2초가 10분 같았다. 계단을 하나씩 오를 때마다 5분이라는 시간이 이렇게 길었나 실감하면서 다리를 부여잡았다가 손잡이를 부여잡았다가 온몸을 비틀었다.


한날은 지방으로 4일간 가있어야 해서 개인 PT를 받을 수 없었다. 일 끝나고 가까운 헬스장 1일권을 끊어 2시간씩 운동을 할 정도로 나는 멈추지 않았다.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것은 끝까지 해내고 싶었다.



이하늬배우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사랑은 상대가 귀찮아하는 것을 내가 기꺼이 해줄 수 있는 것이잖아요. 여기서 상대에를 빼고 나를 대입해 보세요. 내가 나를 사랑한다면 움직여야 합니다. 피부 관리, 운동, 자기 계발 등 귀찮아서 하기 싫은 것들을 기꺼이 하는 거죠. 스스로를 사랑한다고 하지만 늘 편한 것만 좇으며 나를 가꾸지 않았던 거죠. 새벽촬영이 끝나고 피곤해도 다음날 먹을 점심 다이어트 도시락을 싸는 거죠. 귀찮지만, 내가 나를 사랑한다면 기꺼이 이런 행위를 해야 합니다. 즉 내 인생의 가장 큰 응원자는 나이고, 케어하는 역할도 내가 스스로 해요. 새벽에 도시락을 싸면서 이렇게 까지 해야 하나 싶을 때도 있어요. 그런데 말로만 나를 사랑한다고 하지 말고 부지런히 움직여야 해요.'


너무 공감되었다. 매일 나를 사랑해야지,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찾아야지 했는데 정작 나는 나를 위해 무엇을 하고 있었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운동을 하면서 나는 머릿속을 비우려고만 했다. 생각이 많고 편집증 적인 성격 때문에 걱정거리는 만들어 여러 번 생각하면서 스스로를 괴롭히고 스트레스를 받은 것 같았다.


몸이 힘들면 정신도 맑아진다고 하니까, 머릿속이 단순해지고 싶다는 생각만 했었는데 나를 사랑하는 방법 하나를 배우는 중이라고 생각하며 스스로 계속 단련했다.


하루 이틀 시간이 흐르고,

한 달이라는 시간이 흐르니 차츰 운동도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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