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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철없는 이유

by 이원희

친구들과 밥을 먹다가 아버지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아직도 아빠라고 부른다. 나팔바지를 입고 선글라스를 끼고 큰 오디오를 등에 매고 있는 젊은 시절 장발의 아빠사진을 보면 딱~ 한량이다.


어릴 적 나에게 롤러스케이트, 배드민턴, 스케이트, 자전거등 다양한 액티비티 한 운동을 많이 알려주셨다. 풍족하지는 않았지만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해주셨다. 머리가 크면서 엄마와의 갈등을 알게 되었고, 아빠가 밉기도 했지만 나는 어릴 적 아빠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랐다는 것을 느낀다.


초등학교에 수영장이 있었는데, '여자는 비키니지!'라며 아빠가 시장에서 예쁘다고 사온 수영복을 입고 준비운동을 하는 사진이 있다. 모두 알록달록 날개 달린 원피스를 입고 있지만 나 혼자 당당하게 비키니를 입고 있다. 초등학교 1학년이었으니 가능했으리라~


어느 날은 아주 캄캄한 바닷가 어딘가에서 세워져 있던 트럭에 불빛하나 의지해서 맛있는 대게를 먹었던 적이 있다. 아빠는 진짜 살아있는 오양맛살을 먹으러 간다며 새벽녘에 나만 깨워 갔었다. 정말 살아있는 오양맛살이었다. 너무너무 맛있어서 그때 분위기, 장소, 맛이 지금도 생생하다.

한 번씩 술을 드시고 오시는 날이면 엄마는 위험하다며 화를 냈지만, 나를 자전거 뒤에 태워서 노래를 부르며 동네 한 바퀴 돌기도 했었다.


나는 아빠 덕분에 다양한 액티비티를 하는 사람이 되었고, 다양한 음식을 좋아하고, 술도 친구도 좋아한다.


깔깔 거리며 각자의 아버지와 함께한 저마다 다른 이야기를 한다. 한 친구는 나보다 20살이 어린데 아버지를 일찍 여의었다. 어릴 적 아버지와 함께한 추억이 아련하다. 어린 나이에 내가 경험해 보지 못한 아픔, 슬픔들을 지내온 이들을 보면 대견하기도 하고 대단해 보이기도 한다. 한 친구는 나보다 3살이 어린데 아버지가 엄청 엄하셨다. 엄하셨던 아버지 밑에서 어쩜 그리 잘 놀러 다녔는지, 다양한 추억 속에서 우리는 다 함께 웃었다.


우리의 나이는 모두 다르고, 살아온 환경도 다르고, 아버지와의 추억도 모두 다르다. 결국 우리는 다 다르지만, 아버지와의 추억이 우리 삶의 중요한 일부임을 느꼈다. 그래서 사람들은 모두 그래서 철드는 시기가 다른가 보다. 내가 아직 철들지 못한 건 아버지 때문은 아니겠지만, 온전히 아버지가 살아계시는 이유만으로도 나를 지탱해 주는 이가, 기댈 곳이 있다는 의미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왠지 내가 그 어떤 잘못을 해도 아버지는 존재만으로도 든든하게 내편이 되어 주실 것 같은 느낌이다.


다행히도 아버지는 나와 함께 하는 인생의 시간이 길어서,

핑계 같지만 기댈 곳이 있는 나는 여전히 철이 덜 들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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