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엄마가 알바를 시작하셨는데, 어느덧 한 달이 되어 알바비를 받았다며 건네주신 용돈이다.
가족들 위해 힘들게 일하는 딸을 위해 뭔가 의미 있는 선물을 하고 싶었는데 필요한 것을 찾을 수가 없어 살 수 있는 게 없었다며. 애정 가득한 손편지와 주셨다. 의미 있는 곳에, 날 위해서만 쓰라고 하셔서 나의 버킷리스트를 완성하는 촬영 의상을 준비하는데 쓰였다.
키세 속옷 2벌. 케빈클라인 속옷 1벌. 엄마의 선물로 의상까지 모두 완벽하게 준비가 되었다.
촬영 당일 오전에 헬스장에 들러 마지막 인바디를 체크하고 떨리는 마음으로 촬영장으로 향했다.
인바디는 내가 얼마나 열심히 노력했는지를 증명했다.
촬영 전까지도 나는 물 한 모금 마실 수 없었다.
먹지 말라니까 더 먹고 싶고, 왠지 못 먹으니까 더 목이 타는 것 같은 느낌이다.
촬영 직전, 근육을 살리기 위해 준비운동을 했다.
어디에서 그런 힘들이 나오는지 모르겠고, 이게 무슨 혹한 훈련인가 싶었지만 촬영장에서의 긴장감은 내 모든 열정을 한 데 쏟아붓게 했다.
메이크업을 해주시는 쌤은 '어쩜 이렇게 수분을 잘 빼고 오셨어요!'라고 하셨고,
촬영 쌤은 '운동을 오래 하실 분 같아요!'라고 긴장을 풀어주시려고 칭찬을 계속해주셨다.
촬영이 시작되었다. 모든 눈들과 카메라는 나만 바라보고 있고, 왠지 어색하고 또 어색하고 또 어색해서 어디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었다.
잘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고, 얼굴은 웃고 있지만, 팔다리 배는 계속해서 자세를 잡고 힘을 주고 있었야 했다. 근육이 잘 나올 수 있도록 자세를 잡고 숨을 쉬지 않고 카메라 셔터가 바쁘게 터졌다.
나는 자세를 좀 더 여성스럽고 예쁘게, 얼굴도 좀 자연스럽게 하고 싶었으나촬영선생님과 PT쌤은 나의 근육모양에 온통 정신을 집중하셨다. 머슬이 더 많이, 더 자연스럽게, 더 예쁘게 나올 수 있도록 눈에 레이저를 뿜으며 열정을 다하시는 것 같았다.
'배에 힘 더 주세요'
'하체는 그대로 상체만 살짝 뒤로'
'숨 참으세요'
'웃으세요'
'고개는 옆으로 돌리고 골반을 틀어보세요'
'왼쪽 조금 낮게, 오른쪽 어깨 올리세요'
'ok, 좋아요, 좋아!'
ok 좋아요!라는 단어가 이렇게 기분이 좋은 단어였던가? 칭찬을 들을 때마다,
그 단어가 촬영장을 울려 퍼질 때마다 스스로 '그래, 잘하고 있어'라고 다독였다.
쌤은 근육의 모양도 사람마다 모두 다른데 타고나게 예쁜 몸매와 근육모양이 있다고 하셨다. 나의 복근 모양은 선수들이 갖고 싶다고 하는 초콜릿 모양이었다. 손을 많이 쓰는 일을 해서 그런지 어깨, 팔뚝의 근육 모양이 너무 잘 나와 전신의 힘을 줄 수 있는 포즈를 계속 원하셨다.
마지막까지 우리는 숨을 죽이고,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 그동안 운동한 고생을 보상이라도 받아야 하는 것처럼최선을 다해 나의 머슬에 힘을 주고, 왕자와 팔다리 근육을 뽐냈다.
촬영 전 쌤이 사진 나와보면 뭔가 한끝이 아쉽다고 하면서 '얼굴이 맘에 들면 근육이 맘에 안 들고, 근육이 맘에 들면 얼굴이 맘에 안 들어요. 그런데 근육모양은 보정을 할 수가 없으니 얼굴을 포기하세요'
사진이 나오고 나서야 얼굴을 왜 포기하라고 하는지 알았다. 살이 많이 빠져서 얼굴이 해골에 가까웠다.
지인들은 내 몸과 몸무게를 보고는
'연예인들 비싹 마른 몸이 다 너 같을 것 같아. 이런 몸은 처음 봐서 때리면 부서질 것 같아.'
'제발 좀 살 좀 그만 빼, 안쓰러워 죽겠어. 나이 들어서 고생한다.'
'아마추어가 그렇게 바디프로필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데요. 쉬엄쉬엄해요.'
네가 할 수 있겠어? 라며 반신반의하는 반응들이 많았다. 그럴수록 날 더 열심히 헬스장으로 향하게 했다.
하지만 우리 엄마만, 아이들은 왜 고생하냐, 왜 촬영하냐라는 질문을 하지 않았다. 엄마는 '이왕 하기로 한 거 끝까지 제대로 해야지.'라고 하시며
내가 고구마라도 한 조각 더 먹을라고 하면 '그거 먹고 자전거 1시간 더 타고 와'라고 자극하셨고
퇴근하고 운동하고 오기 전 아이들 저녁은 무조건 먹게 했다. 혹시나 맛있는 음식 냄새나면 먹고 싶어 할까 봐 아이들 저녁이 늦어지면 운동 먼저 하고 오라고 하고 환기까지 해놓으셨다.
바디프로필 촬영은 나를 격려해 준 엄마와 가족들 덕분에 끝까지 버티며 성공적으로 끝낼 수 있었다.
바디프로필 촬영하는 기간 동안은 나의 근육을 만드는 과정도 있었지만, 단순한 신체변화를 넘어 나의 내면의 변화도 이끌었다.
머릿속이 복잡해지면서,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을 해소하고 싶었다.
한 번씩 찾아오는 공황 같은 심장의 두근거림은 한번 시작하면 나의 핏줄을 타고 다니면서
온몸을 쿵쾅 거리며 두드리는 것 같았다. 그러고 나면 며칠씩 근육통에 시달리기도 했었다.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있지만, 해결할 수 없는 부분들도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다. 이 세상 모든 일들은 원하는 대로, 마음먹은 대로 흘러가는 법이 없다는 것을...
힘들게 고민해 봐야 나만 머리 아프다는 것을 스스로 알아차리고, 내려놓는 연습이 필요했다.
'내가 원하는 것은 뭘까?'
'왜 그랬을까?'
'나는 왜 그때 그렇게 했을까?'
'내가 하겠다고 하는 것도 끝까지 해내지 못하면, 나중에 아무것도 못할 것 같아.'
'하루하루 목표량을 모두 채워야, 더 큰 것도 이룰 수 있어.'
'난 탓하지 말자.'
'그냥 아무 생각도 하지 말자'
'나 지금 잘하고 있는 거 맞지?'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머릿속은 빙빙 돌아가는 회전목마를 타고 있는 것 같았다.
운동을 하는 동안 나에게 끊임없이 질문하고 대답했다.
내가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영역과 통제할 수 없는 영역에 대한 구분을 해보자.
흘러갔던 일들을 하나하나 생각하면서 일기장에 연필로 모두 적기 시작했다.
어떤 날은 욕을 왕창 쓰기도 했고,
어떤 날은 스스로에게 칭찬을 하기도 했다.
어떤 날은 분해서 울기도 하고,
어떤 날은 행복했던 기억에 잠기기도 했다.
어떤 날은 후회의 반성을 하기도 하고,
어떤 날은 과거에 일어난 일을 분석해서 정리하기도 했고,
하루일과도 쓰고. 하고 싶은 것도 쓰고.
편지도 쓰고. 일기도 쓰면서
스스로를 달래고, 다독이며 나의 마음에도 근육이 생겨난 것 같다.
나와 다른 이들의 감정, 행동들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다.
그것에 대한 감정을 배제하고 평가를 하지 않는다.
그들을 보고 흔들리지 않을 나의 중심을 갖고 있어야 하며,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로 더 이상 깊게 고민하지 않겠다.
나에게 더 집중하면서 살아가겠다.
그렇게 나와 너, 그리고 지금 일어나는 일들까지의 모든 상황을 더 깊고 넓은 마음으로 바라보며
이해를 하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조금씩 그렇게 나의 감정을 컨트롤하면서 마음이 편안해졌고, 그 덕분에 근육통에 시달리는 날보다 웃는 날이 더 많아졌다.
바디프로필 촬영은 단기간이지만 힘들다는 식단과 운동. 감정을 컨트롤하며 나의 마음근육도 단단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