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왕자 100일의 영어 필사를 마쳤다. 처음 시작할 때는 100일이 너무 길다고 생각했는데 빠른 세월과 함께 다 끝냈다. 어린 왕자는 영어필사 챌린지 세 번째 책이다. 첫 번째는 탈무드, 두 번째는 이솝우화, 어린 왕자가 세 번째인데 이걸 끝냈다. 뿌듯하다. 혼자서는 절대 하지 않았을 필사지만 어울림으로 함께 하니 여기까지 왔다.
매일 필사하고 단톡방에 인증하고, 목요일 아침 6시 30분에 줌에서 만나 영어원문을 듣고, 일주일 간 필사한 내용에 대해 질문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하브루타에서 시작된 영어 필사여서 다른 책을 할 때는 질문을 만들고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어린 왕자는 필사용으로 편집한 책이어서 질문까지 들어 있었다. 그래서 주로 그 내용으로 이야기를 하고 필사하면서 느꼈던 일이나 생각났던 일, 나누고 싶은 이야기들은 무엇이나 함께 했다.
알다시피 어린 왕자의 내용이 뒷부분으로 갈수록 더 의미가 깊어지고, 생각해 볼 내용도 많고 이야기 나누고 싶은 것도 많았다. 왜 사람들이 어린 왕자를 좋아하는지 다시금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고, 다들 아는 것 같지만 필사를 하니까 비로소 보이는 것들도 많아 새로웠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한 시간으로는 부족해서 늘 예정 시간보다 길어진다. 인생 경험이 많다 보니 나누는 이야기도 다양하고 깊이도 있고 감동도 있다. 아침부터 크게 웃기도 하고 감동으로 울컥하기도 하고 아픔에 공감하기도 하면서 우정과 많은 애정이 쌓였다.
영어 필사로 시작했지만, 영어가 얼마나 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영어를 놓지 않으려는 마음으로 한다. 그런데 나이 들어가면서 지향하는 바가 비슷하고 말이 통하는 좋은 분들을 만날 수 있음에 더 감사하다. 그저 필사에 그치지 않고 인생의 경험을 나누고 또 필사가 끝나면 오프라인에서 만나기도 한다.
탈무드 필사가 끝나고는 수원에서 오프모임을 가졌다. 처음 보는 분이 대부분인데 줌에서 매주 보아서 그런지 오랜 친구를 만난 듯이 반갑고 낯설지가 않았다. 부산, 춘천, 안산, 서울에서 오셔서 수원에 계신 분과 만나서 맛있는 점심을 먹고, 오픈되어 있어서 마치 숲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해 질 녘까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솝우화를 끝냈을 때는 대전에서 만나 계족산 맨발 걷기를 했다. 뜨거운 여름이었는데 우리의 열정을 이기진 못했다. 대구, 춘천, 수원, 서울에서 오신 분들이랑 대전에 계신 분이 만나 또 유쾌한 시간을 가졌다.
이번 어린 왕자를 끝내고는 춘천에서 모임을 하기로 했다. 지금부터 기대된다. 춘천에서는 또 어떤 추억을 만들게 될까? 일행 중에는 춘천이 처음인 분도 계시다. 핑곗김에 춘천 구경도 하고 좋은 사람들과 맛있는 것 먹으며 대화하고, 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어린 왕자는 지구에 처음 왔을 때와 같은 지점에서 떠나게 된다. 같은 지점에 있더라도 올 때와 떠날 때는 다르다. 어린 왕자는 지구별에서 무엇을 얻고 무엇을 남겨 놓고 갔을까? 우리는 어린 왕자를 통해 무엇을 얻었나? 우리의 인생도 어쩌면 똑같지 않을까? 같은 지점에서 왔다가 가겠지만 올 때와 갈 때는 많이 다르겠지. 빈 손으로 왔다 빈 손으로 가는 건 같겠지만 이 지구별에서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남기고 갈지, 나는 어떻게 내 몫을 잘 살아내고 갈지, 내가 왔다간 이 세상이 조금 더 나은 세상이 될지 모르겠다. 인생에서 내가 찾고 있는 것은 무엇이고. 내 안에 품고 있는 나만의 이야기는 무엇일까. 길들여짐의 몫을 감당하는 슬픔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어린 왕자를 통해 사유의 폭이 조금은 넓어지는 시간이 아니었나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