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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암사자 Dec 30. 2022

[소설] <우럭 장례식> 2. 개소리


범주에겐 월요병이 있다. 남들은 실컷 쉬다가 출근해서 월요병이 생긴다는데, 범주는 그 반대다. 주말 밤엔 평일의 낮을 사는 이들이 그러모은 에너지들이 한꺼번에 터져나온다. 온갖 것들이 뒤섞여 시끄럽게 쏟아지고, 부서진다. 범주가 일하는 노래 주점엔 유무형의 적재물들이 쌓이는데, 주말엔 그 양이 세 배쯤 된다. 불금부터 토요일, 일요일을 버티고 난면 범주는 녹초가 된다. 월요일엔 휴대전화도 끄고, 알람도 맞추지 않은 채 영원히 잘 것처럼 잠에 빠져들어야 한다. 


범주는 아득하게 들려오는 소리에 몽롱하게 잠의 얕은 지점으로 걸어오는 기분을 느꼈다. 아득했던 소리는 데시벨을 빠른 속도로 높여 가더니, 이내 그를 잠에서 빼어 냈다. 개 소리였다. 범주는 상체를 일으켜 앉은 자리에서 눈을 감고 있었다. 도무지 틈이라곤 없어보이는 신축 건물이라도, 크고 작은 벌레들은 느닷없이 나타나 생활 공간을 잠식하곤 한다. 개 소리도 그랬다. 필요 이상으로 두텁게 시공한 벽이 무색하게, 미세한 틈을 통해 범주의 공간을 채워 나가다가, 질식시킬 듯 가득 메웠다.  


개는 짖었다. 짖고 또 짖었다. 짖은 다음 또 짖었다. 범주는 들었다. 듣고 또 들었다. 깨어 있지 않아야 할 시간에 깨어, 범주는 개를 저주했다. 구체적으로 저주하기 위해 한 번도 보지 못한 개의 모습을 상상했다. 작고 하찮은 몸뚱이에, 그에 맞는 작은 주둥이를 가진, 악 밖에 남지 않은 앙칼진 개를 떠올렸다. 상상 속에서 범주는 개를 발로 차 이리저리 나뒹굴게 만들었다. 개는 나뒹굴면서도 짖기를 멈추지 않았다. 


캉캉-캉캉캉-캉캉캉캉- 

캉캉-캉캉캉-캉캉캉캉-


범주는 얇은 점퍼를 걸쳤다. 신발장 위에 올려둔 담배를 주머니에 챙겨 넣고, 발에 걸리는 아무 신발이나 신고 문을 나섰다. 복도로 나서자 개 짖는 소리는 더 크고 선명해졌다. 마치 범주 바로 앞에 서 짖고 있는 것 같다. 실제로 범주는 고개를 돌려가며 복도 이곳저곳을 살폈다. 이 정도면 진짜 복도에 개가 나왔을 성 싶었기 때문이다.


그는 개가 어디있는지 알고 싶다. 복도 끝에 달린 CCTV를 한 번 살피고, 그는 자연스러운 척 기지개를 펴가며, 바로 옆 집인 1607호 문 앞에 선다. 한 쪽 귀를 가져다 댄다. 다음 집, 그리고 그 다음 집에도 범주는 똑같이 귀를 가져다댔다. 1602호 앞에 이르렀다. 소리가 더 또렷해졌다. 소리의 근원지로서는 유력한 후보였다. 


그는 1602호 팻말이 붙은 바로 아랫 부분에 바짝 머리를 갖다 붙였다. 온 신경을 집중했다. 차가운 문의 감촉이 느껴지고, 소머즈가 된 것처럼 귀가 예민해진다. 기척 없던 다른 집들과 달리, 이 집에선 부스럭 하는 움직임이 느껴지는 것도 같다. 그는 살며시 눈까지 감으며, 자신의 청각에 온 신경을 집중한다. 그 순간, 감은 눈이 번쩍하고 빛난다. 그는 눈을 다시 떴지만, 순간 앞이 캄캄하게 보이지 않는 느낌이다. 딩-하고 울리는 종소리를 들은 것 같기도 하다. 삽시간에 강한 통증이 밀려왔다. 넘어질듯 뒤로 밀려나 지끈거리는 왼쪽 이마를 한 손으로 붙잡고 서 있는데,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세요?”


노랗다 못해 하얗게 탈색이 된 머리가 삐죽삐죽 무질서하게 제멋대로 솟아 있는 한 남자가 놀란 눈을 하고 서 있었다. 까만 민소매와 대비되는 하얗고 마른 팔을 가진 소년 같은 남자였다. 범주는 순간 의심스러워 보이고 싶지 않다는 데 최선을 다해야된다는 생각을 한다. 그 방법으로 웃음을 택하기로 한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부딪힌 쪽의 머리가 아프다. 그덕에 그는 우는 듯 웃는 기괴한 표정을 지어보이고 말았다. 


남자, 그러니까 1602호에 사는 민기도 몇 시간 째 짖어대는 개 때문에 신경이 곤두 서 있었다. 현관에서 인기척이 느껴져, 문을 열었을 뿐인데, 자신보다 키가 한 뼘은 더 큰 덩치의 남자가 자신의 집 앞에서 얼쩡거리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가 이상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는 사실에 짜증이 폭발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상대를 도발하면 안될 것 같다는 직감이 본능을 억누른다. 민기는 범주가 위협적인 인물인지 아닌지 모른다. 그의 얼굴을 다시 살핀다. 


“개소리, 어딘가 해서.” 


이마에 손을 짚은 채 범주는 말했다. 범주의 손에 풀빵처럼 둥글고 따끈하게 부푼 혹이 느껴진다. 개는 쇳소리를 섞어 가며 더 빠르고 크게 짖고 있다. 문과 범주의 단단한 머리가 부딪히며 낸, 쾅- 하는 큰 소리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범주는 단단히 오해를 한다. 


‘1602호의 문이 열렸고, 개 소리는 더 커졌다. 개는 1602호에 있다.’


범주는 확실한 물증을 잡고 싶다. 그는 이마를 짚은 손을 조금 더 올려 시야를 확보하고, 열린 문틈 사이로 보이는 민기의 집을 살피기 위해 기웃거린다. 신발장부터 방 끝까지 한 눈에 들어오는 길쭉한 구조의 5평 남짓 작은 집이다. H 오피스텔은 상가층을 제외하곤 모두 평수와 구조가 같다. 범주가 사는 곳과 똑같지만, 범주는 민기의 집에서 자신의 공간과 사뭇 다른 분위기를 느낀다. 자신의 집에선 느낄 수 없는 달콤한 냄새가 나는 것도 같다. 범주는 킁킁대며 개의 형체를 찾는다. 


민기는 아주 천천히 문을 닫고 있었다. 이것은 공부를 제외하고, 민기의 몇 안되는 특기 중 하나였다. 부모님과 같이 살던 시절, 늦은 귀가를 하면서 터득한 기술이다. 소리 없이 문 열고 닫기. 이는 범주에게도 통했다. 범주는 서서히 닫히고 있는 문을 거의 의식하지 못했다. 다만 조금씩 문틈이 좁아져, 방을 살피던 범주의 몸이 점점 더 왼쪽으로 치우쳐갔다. 민기는 여차하면 문을 빠르게 닫을 계획이었다. 이상한 대치가 이어졌다. 민기는 택배나 배달도, 굳이 얼굴을 보며 직접 받는 일을 피하곤 했다. 배달 요청사항의 단골멘트는 ‘문 앞에 두고 가주세요’ 였다. 민기도 할 수 있다면, 눈 앞의 남자에게 ‘문 앞에서 가주세요’라고 말하고 싶었다. 할 수만 있다면 직접 말로하기 보단, 문자 메시지 같은 것을 보내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 그 때였다. 범주는 민기의 방 침대 위의 이불이 풀썩, 하고 작게 움직이는 것을 발견했다.


‘개!’ 


범주는 확신했다. 그것은 그가 원하던 물증이었다. 범주는 심증으로는 할 수 없던 일을 한다. 거의 닫히기 직전인 문틈 사이로 몸을 들이 밀었다. 순식간에 민기의 신발장에 우뚝, 하고 범주가 거목처럼 버티고 섰다. 민기는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이다. 뉴스에서나 보던 범죄가 자신의 집에 곧 일어날 것만 같다. 9시 뉴스에서 오피스텔 사건으로 대서특필되는 장면, 그리고 그것을 고향에서 본 부모님이 대성통곡하는 장면이 스쳐 지나간다. 상상만으로 끔찍해 민기는 침을 소리없이 삼키며 문 닫을 기회를 노린다. 그러다 짧은 순간 한눈을 판다. 


‘구찌 슬리퍼’


범주가 신고 있던 슬리퍼는 구찌였다. 평소 민기가 갖고 싶었던 브랜드의 것이었다. 새 것 같은 중고라고, 중고 거래 사이트에서 11만원에 올라왔던 적있었다. 고작 슬리퍼 하나 때문에, 다음날이 시험임에도 민기는 가격을 흥정하느라 3시간이 넘는 시간을 버렸다. 11만원도 충분히 좋은 가격이었지만 민기는 7만원에 사고 싶었다. 수중에 7만 5천원 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결과는 좋지 않았다. 판매자는 그 가격이면 제가 그냥 다시 신으렵니다, 하고 대화를 중단했다. 사지 못한 신발은 며칠 동안 그의 눈앞에 아른거렸다. 다음날 있는 시험도 망쳤다. 그 신발이 눈앞에 있었다. 


‘짝퉁일까, 진짜일까. 이렇게 험하게 신을 정도면, 짝퉁일 가능성이 높지. 근데 이런 진짜 같은 짝퉁은 어디서 구하나.’


민기는 퍼뜩 정신을 차린다. 신발이 문제가 아니라, 한 남자가 자신의 집에 침입한 것이 문제였다. 그는 남은 에너지를 모조리 쏟아 부으며 말했다. 


“초코, 아니, 찾으시는 개요. 우리집 아니고 옆집이요. 1604호.”


이른 아침. 민기는 옆 집 여자가 집 문을 나서며 “초코야, 엄마 갔다올게!” 하는 소리를 들었다. 또각또각 여자의 구두 소리가 멀어졌는데, 그러고 얼마지나지 않아 개 짖는 소리가 시작됐다. 시작은 있고, 끝은 없었다. 옆 집과 맞닿은 벽에 대고 그는 사정했다. “초코야, 옳지 착하다. 그만 짖어라, 제발. 초코야.”


민기는 슬며시 범주를 문 밖으로 밀어냈다. 범주는 이미 온 신경이 옆집인 1604호로 향해 있었다. 그는 1604호의 문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개는 문 앞의 범주가 보인다는 듯 더 맹렬하게 짖어댔다. 문이 닫히기 전 민기는 범주의 표정을 살폈다. 범주는 금방이라도 같이 짖을 것처럼 입을 씰룩이고 있었다. 벌어진 입술 사이로 이가 보였는데, 그것이 송곳니 같다고도 생각했다. 민기는 특기를 살려 천천히 문을 닫았다. 도어락의 자동 장금 장치가 찰칵, 하고 안심되는 소리를 냈다. 침대에 몸을 숨기고 있던 연우가 발소리도 없이 다가와 민기에게 안겼다. 


“집주인이나 관리실은 아니지? 초코 때문인거야? 불쌍한 초코. 얘는 물이랑 사료는 먹어가면서 짖는걸까? 벌써 몇 시간은 된 것 같은데.”


연우는 현관문에서 인기척이 들리면, 침대 이불 밑에 들어가 가만히 숨을 죽이고 있었다. 연우는 민기와 함께 사는 것을 누구라도 알게되는 것이 싫다고 했다. 민기는 연우 앞에서는 ‘동거하는 것이 뭐 어때서’ 하고 말했지만, 그는 실제로 그 주장을 다른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인 적은 없었다. 공식적으론 연우의 의견인 숨고, 숨기는 상황을 유지한 지 몇 개월이었다. 그 덕에 가구당 거주 인원수만큼 내는 오피스텔 공동 관리비는 늘 1인분이었고, 민기도 고향에 계신 부모님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아도 되었다. 이는 꽤 합리적인 선택이었다고 민기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 3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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