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단편 소설 #4 월요일
*2023 <은평문예> 32호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이러다 늦겠다."
출근 전 아침, 여러번 울리는 알람을 몇 차례 끄고 나서 얕고 달콤한 잠에 빠져 있을 때면 때때로 꿈 속의 목소리가 현실처럼 생생하게 들리기도 했는데, 이번 것은 생생하다 못해 소름이 끼칠 지경이었다. 어제 늦게까지 이어진 회식으로 몸은 천근만근, 형섭은 정신이 번쩍 들긴 했지만 여전히 제 몸을 김밥의 속재료처럼 이불로 감싸고 꿈쩍 않고 있었다. 다시 눈이 스르륵 감기려는데, 이번에도 똑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뜨끈한 콧김이 귓가에 닿는 느낌도 함께였다.
"정말 회사에 지각할 셈이야?"
화들짝 놀란 형섭이 몸을 일으키며 침대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큰 충격이 느껴졌고, 이내 엉덩방아 찧은 쪽이 아려왔다. 작은 소도시로 발령을 받은 뒤 형섭은 가족과 떨어져 홀로 지내는 중이었다. 때때로 저녁 시간 연락없이 서울에서 어머니가 내려와 깜짝 놀래키기도 했지만, 그 뿐이었다. 중요한 건 들려온 목소리가 성인 남자의 것이라는 데 있었다. 형섭의 손이 축축해져왔다. 긴장하거나 두려울 때, 그의 손은 차오르는 땀으로 물컹하고 축축한 젤리처럼 변하곤 했다. 주먹을 꽉 쥐면 바닥으로 똑똑, 고장나 잘 잠기지 않는 수도꼭지처럼 땀이 흘러내릴 정도였다.
형섭은 침입자와 곧바로 맞설 수 있게, 주먹을 꽉 쥐어보기로 했다. 그 사이 땀이 더 고인 주먹은 마찰 없이 미끌거렸다. 잠옷바람에 가진 무기라곤 주먹 하나 뿐일텐데, 형섭은 이조차 미덥지 않아 불안했다. 그 덕에 손바닥에선 땀이 더 빠른 속도로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형섭은 침대 매트리스를 붙잡고, 침입자의 심기를 최대한 건드리지 않는 선에서 몸을 일으켜보기로 했다. 구멍 위로 머리를 내미는 두더지처럼 슬며시 침대 위 쪽으로 머리를 들었다. 사각지대가 없는 5평 원룸, 시야에 낯설게 걸리는 것은 없었다. 형섭은 그가 침대 반대편에 웅크리고 있거나, 그 짧은 사이 화장실에 들어가 숨었으리라 생각했다. 온몸이 긴장으로 뻣뻣하게 굳어가려는 때, 주먹 쥔 손에 따뜻한 혀의 감촉이 느껴졌다. 형섭은 목소리를 한껏 낮추고, 쉬쉬- 소리를 내며 말했다.
"쉬- 철수, 이리와. 형한테 와. 옳지."
1년 전부터 같이 살고 있는 반려견 철수는 형섭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연신 그의 주먹 쥔 손만 핥아댔다. 집 안에 낯선 사람이 버젓이 들어와 있는데 철수가 이토록 조용했다는 사실이 의아했다. 아무리 경계심이 없고, 사람을 좋아하는 개라지만 반가움에 한 번쯤 짖을 법도 했는데 그랬다. 형섭은 철수 탓을 한다. 어떤 침입자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누구탓을 운운하는 한가한 행동을 한거다. 형섭은 또 우선순위에 놓지 않아도 될 일을 생각한다. 낯선 목소리의 말처럼, 정말 회사에 지각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형섭은 목숨이 위태로울지 모르지만 처음 마주한 지금의 상황보다, 매일 마주하는 회사에서의 불안한 자리가 더 신경 쓰이는 것만 같다. 형섭은 침대 옆 둥근 협탁 위에 놓여 있던 탁상용 전자시계를 집어 들었다. 형섭의 주변에 있는 것 중 그나마 뾰족한 모서리를 가진 것이었다.
삐-삐이-삐삐삐삐삐-삐이-삐삐삐삐삐
때마침 손에 쥔 전자시계에서 알람이 요란한 소리로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형섭은 당황해 알람을 단번에 끄지 못하고 허둥댔다. 그 때 침대 위에 얌전히 앉아 있던 철수가 형섭에게 꼬리를 치며 다가왔다. 형섭은 철수를 보지도 않고 '쉬-쉬- 철수 가만히 있어. 쉬-쉬-' 소리를 내기 바빴다. 그 목소리가 또 들려오기 전까지.
"난 그 알람소리가 제일 싫어. 으, 얼마나 반복되는지."
온몸이 얼어붙은 형섭이 철수 쪽을 바라봤다. 철수는 늘 그렇듯 단정히 앉아, 까맣고 맑은 눈으로 형섭을 바라보고 있었다. 형섭의 손에 있던 전자시계는 위험한 소리를 내며 울어댔다. 그 때 철수의 입, 그러니까 길고 뾰족하지만 복실복실한 털이 뒤덮인 주둥이가 밥을 먹을 때나 하품을 할 때처럼 좌악 벌어지더니 이내 그의 잠을 깨우고 그를 얼어붙게 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그것 좀 얼른 꺼줘. 형은 그거 잘 하잖아. 나는 끄고 싶어도 잘 안되더라고, 그리고 형은 내가 형 물건 물어 뜯는 걸 싫어하잖아. 근데 참는 것도 한계가 있는 거야."
형섭이 침을 꿀꺽 삼키려 했지만, 텁텁하게 마른 입에 남은 침이 있을 리 없었다. 손바닥에서 흘러나온 땀이 바닥에 뚝뚝 떨어지는 소리가 쿵쿵, 하는 북치는 소리처럼 증폭되어 들리는 듯 했다.
"형. 내 배꼽시계 기준으로 봤을 때, 지금은 너무 늦었어. 도대체 알람을 몇 번이나 끈 건지. 최소 두 번째 알람이 울렸을 때 일어나야 시간이 넉넉한거야. 내가 가만히 생각을 해봤는데, 난 산책이 무척 중요하단 말이야. 근데 형이 회사에 지각을 하는 건 또 안 될 일이란 말이지. 저번에 열 개 알람을 다 끄고 나서 엄청난 지각을 한 적 있지? 그 때 회사에서 다녀와서 찔끔 울었잖아. 울지 않았더라도 알았을 거야. 형 손을 핥으니 대번에 알았지. 형이 오늘 힘들었구나, 슬펐구나 하고. 그러니 오늘은 이렇게 해. 내가 형을 회사에 데려다주는 거야. 그럼 나는 산책도 하고, 형은 회사에 가고. 좋지?"
형섭은 자신도 모르게 반려견 철수의 말을 경청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철수의 태도에선 어색함이 없었다. 마치 자신은 늘 말하는 개였다는 듯 태연했다. 형섭은 힘이 풀리며 바닥에 그대로 다시 주저앉았다. 철수에겐 수없이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렸지만, 진짜 '대화'를 위해 입을 뗀다는 사실은 꽤나 망설여지는 일이었다. 차라리 전자시계로 제압할 가능성이 1퍼센트도 안되는 침입자를 마주하는 편이 나았을까, 형섭은 생각하다 철수에게 더듬거리며 물었다.
"... 어, 언제부터 말을 할 줄 안거야? 어쩌다가..."
철수는 꼬리를 달칵달칵 치며 형섭을 멀뚱히 바라보다가 말했다.
"어찌된 건 내가 아니라 형이야."
"그게 무슨 말이야?"
"어제 형은 취해서 들어왔어."
"응. 회식이 있었지."
"그 때 형은 개가 된거야. 모습은 인간이지만. 내면은 완전히 개가 되어버린 것이지. 그래서 내가 하는 말도 알아듣게 된 거고."
형섭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갑작스런 숙취가 한 번에 밀려들어오는 것만 같았다. 어제는 공장 전체 회식이 있었고, 권하는 술을 모조리 받아 먹다보니 형섭은 완전히 취했다. 생각해보니 집에 어떻게 돌아왔는지 형섭은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철수는 침대에서 사뿐하게 뛰어내려, 신발장 옆으로 다가갔다. 능숙하게 박스 안쪽을 뒤적거리더니, 산책을 갈 때 사용하는 리드줄을 물고 형섭 가까이로 왔다. 형섭의 발 앞에 그것을 툭 내려놓더니, 또 한 번 입을 달싹이며 말했다.
"머리는 감지 않을테고, 얼른 옷 입고 나가자. 지난번 휴일 때 형 공장 앞까지 산책 갔을 때 봤던 진돌이 오랜만에 만날 생각하니 벌써부터 엉덩이가 씰룩대는 기분이야."
형섭은 손에서 서서히 미끄러지며, 반쯤 손에서 빠져나온 탁상용 전자시계를 확인했다. 지금 준비하고 나서면 딱 맞을 시간이긴 했다. 형섭은 홀린듯 철수가 시키는대로, 머리는 감지 않고 출근할 옷을 주워 입었다. 철수는 느린 하품을 하더니, 앞다리 위에 턱을 얹었다. 그러면서도 형섭이 분주히 움직이는 모습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근데 공장에는 철수 네가 들어갈 수 없어. 너는 집에 어떻게 돌아오려그래?"
"형, 벌써 잊었어? 나 스트릿 출신이잖아. 집 정도 찾아가는 건 일도 아니지."
형섭은 철수와 대화까지 되고 있는 마당에, 철수가 집을 잘 찾을 수 있다는 말을 믿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이 집에서 함께 살면서도 몇 번 철수는 열린 문 사이로 빠져 나갔다가, 몇 시간 뒤 '셀프 산책'을 마치고 유유히 돌아오곤 했었다. 공장 부지가 여럿 있고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여럿 살고 있지만, 대부분은 빈 땅이거나 일부 농사를 짓는 소도시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혹여 철수가 길을 잃어버린다해도, 이마에 다람쥐처럼 검은 줄이 있는 누렁이가 금강 빌라에 살고 있는 개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오히려 드물 것이었다.
옷을 다 입은 형섭은 세수 대신 물티슈로 얼굴에 묻은 침자국을 대충 문질러 닦아냈다. 철수의 몸에 하네스를 채우고, 그 위에 리드줄을 연결했다. 철수는 현관문을 열어달라는 듯 앞발로 긁다가,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 뒤를 돌아 형섭을 바라보며 말했다.
"문 조금 열어 놓고 나가는 거 알지? 지난번엔 혼자 산책 나갔다 왔는데, 문이 닫혀 있어서 복도에서 얼마나 오래 기다렸는지 몰라."
형섭은 문틈 사이로 운동화 하나를 끼워 넣어두었다. 금강 빌라에는 공장으로 출근하는 사람들만 살고 있어, 잠깐 정도는 괜찮을 것 같았다.
"산책 다녀 오고 나서는, 운동화 빼서 문 좀 닫아둬. 벌레 들어오니까."
"터그 놀이 하듯이 당기라는 말이지? 알았어. 그래도 난 문이 열려 있는 게 좋은데."
형섭은 빌라 입구를 빠져나오자마자 길게 하품을 했다. 일하는 곳까지는 걸어서 20분 정도 걸린다. 형섭은 오토바이나 차를 사는 것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던 차였다. 밭이나 공터 밖에 없는 길이 지긋지긋했고, 날씨라도 좋지 않으면 일터에 도착하기 전부터 이미 신발과 바지가 더렵혀지기 일쑤였다. 형섭은 여전히 머리가 아파오는 것 같아 눈을 거의 반감은 채 걷기 시작했다. 그 때 손에 쥐고 있던 리드줄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형! 형도 이거 냄새 좀 맡아봐. 지난 번에 나왔을 땐 없었는데, 새로 생겼어."
형섭은 고개를 숙여 철수가 코를 박고 냄새 맡고 있는 땅바닥을 바라봤다. 철수의 말대로 그곳엔 무언가 있었다. 피어오른지 얼마 안된 키작은 잡초였다. 형섭은 철수와 연결된 리드줄을 두 번 탁탁 당겼다.
"가자, 나 늦는다고 걱정하던 사람... 아니, 개는 어디가고. 나 이러다 출근 늦어."
철수는 아쉬운 듯 몇 번 뒤를 돌아보다, 형섭과 나란히 걸었다.
"형, 형, 형! 그거 알아? 저기 맛있는 냄새 나는 집 있지."
"무슨 냄새가 난다는 거야?"
"형은 진짜 둔해. 저기 빨간 벽돌 집 있잖아."
빨간 벽돌 집은 '아침 식사 됩니다' 빛바랜 시트지가 붙어 있는 식당이었다. 철수는 걸음을 빨리하며 식당 앞으로 쪼르르 다가갔다. 가게 앞에 놓여있던 배추 묶음을 들어 올리던 중년의 남성이 철수를 알아보고 손을 흔들었다. 형섭이 몇 번 혼자 밥을 먹으러 갔을 땐, 무뚝뚝하게 식사를 나르던 사장님이 철수를 향해선 반가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의 입 주변을 덥수룩하게 덮고 있는 수염 사이로 하얀 이가 드러났다.
"오늘은 주인이랑 같이 왔네. 요놈, 다음에는 혼자 와서 무전취식 하지 말고, 꼭 주인도 데리고 와야한다."
철수는 민망한지 가게 주인 앞에선 아무말도 하지 않고 헤헤, 혀를 앞으로 쭉 빼고 웃기만 했다. 형섭은 가게 주인에게 꾸벅 인사를 했다.
둘은 좁게 난 길을 따라 계속 걸었다. 철수는 허공에다 코를 킁킁거리거나, 땅에 새로이 피어난 것들을 유심히 바라보고 냄새 맡았다. 이전의 산책과 다른 점이 있다면 철수는 자신이 느끼고 있는 모든 것을 쉴새없이 조잘댔다는 것이었다.
"형, 나는 형도 산책할 땐 이렇게 나처럼 킁킁, 집중해서 냄새를 좀 맡았으면 좋겠어."
"네가 출근해서, 꼬박 9시간 동안 공장에서 일을 해봐. 그런 여유가 생기나."
"내가 형아 만나기 전에, 그러니까 지금보다 몸집이 작을 때 나를 처음 데려왔던 사람이랑 지낼 때야. 그 사람도 날 가끔 산책시켜주긴 했는데, 늘 목줄을 팽팽하게 끌어당겨 아무것도 못하게 했지. 발바닥이 아스팔트에 질질 끌리고 때로 피가 났는데도 내가 아픈 건 신경쓰지 않는 듯 했어."
"그 얘기를 들으니 마음이 안좋네. 처음 듣는 얘기야."
"응. 그 전에도 사실 말해주긴 했는데, 형아가 못알아들은 것 뿐이고."
"미안."
"오늘 이걸 다시 말하는 건, 지금의 형아는 누군가한테 끌려가는 것도 아닌데 끌려가는 것처럼 보인다는 거야. 그러면 어딘가 아프고 피가 날 수도 있어."
"돈을 벌러 가는 건 즐거운 일이 아니어서 그런거야."
"공장에 가는 길이라도, 킁킁킁킁, 이렇게. 나처럼."
형섭은 시범을 보이는 것처럼, 허공에 대고 냄새를 맡고 있는 철수를 바라봤다. 고개를 좌우로 흔들 때마다, 이마에 또렷하게 그어진 무늬, 그러니까 철수만 가지고 있는 특별한 줄무늬가 악보의 오선지처럼 리듬을 갖고 흔들렸다. 형섭은 평소보다 조금 더 의식해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깊이 내쉬고, 이번엔 더 깊이 들이 마시고, 내쉬고. 형섭의 몸이 크게 부풀었다가 작아졌다를 반복했다.
"형, 옳지."
"네가 그렇게 말하니까 이상하다. 근데 나한텐 똥 냄새 밖에 안나."
"익숙해지면 다른 냄새도 맡을 수 있을 거야. 그럼 새로운 걸 발견한다고."
형섭은 고개를 이쪽저쪽 돌려가며, 그러니까 철수가 하는 것처럼 허공에 대고 적극적으로 킁킁대기 시작했다. 누군가 아침으로 먹었을 미세한 카레 냄새를 맡았고, 조금 더 걷다가는 희미한 탄 내를 맡기도 했다. 땅이 녹으면서 조금 더 진해진 흙 냄새를 맡았고, 하수도 옆을 지나갈 땐 비릿한 물 냄새를 맡았다. 냄새가 나는 쪽엔, 그것이 무슨 냄새인지 눈으로 꼭 확인을 하기도 했다. 형섭이 기억했던 것과 꽤 다른 빛깔을 가진 것들이 많았다. 모든 것이 달리보였다. 그러는 동안에도 철수는 끊임없이 입을 달싹거리고 있었다. 이건 이런 냄새가 나고, 얼마나 속도가 느린지 빠른지. 새로운 것인지 아니면 늘 있던 것인지에 대해.
회사까진 느린걸음으로 3분이면 도착할 거리에서, 형섭은 새로 생긴 카페 하나를 발견했다. 사실 생긴지 3개월이 넘었지만 형섭은 이곳의 존재를 오늘에서야 처음 알았다. 허공에서 연한 커피 원두 냄새를 맡았고, 그 냄새를 좇아 고개를 돌려보니 그 자리에 카페가 있었다. 카페 안엔 짙은 갈색 앞치마를 입고, 머리를 하나로 질끈 묶은 여자 한 명이 주둥이가 빨대처럼 뾰족한 주전자 하나를 공중에서 빙빙 원을 그리며 돌리고 있었다. 카페 앞 나무 간판엔 '핸드드립' 이라고 작은 글씨가 쓰여 있었다. 형섭은 힘들게 일해서 번 돈을 커피 값에 쓰는 것을 아까워하는 사람이었다. 꼭 회사 탕비실에 있는 믹스나 블랙 커피만 고집스럽게 마시곤 했었다.
'오늘은 이상한 날이니까.'
형섭은 카페 가까이로 다가갔다.
"형, 형, 형!"
철수가 다급히 불렀다. 형섭은 자신의 정강이 언저리에서 고개를 들고 있는 철수를 바라봤다.
"형,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어."
"왜 갑자기... 그렇게 조잘대더니 느닷없이 마지막이야."
"커피에는 폐인이 들어있다며?"
"폐인이 아니라 카페인이겠지."
"아무튼 그거 마시면, 개보단 인간에 가깝게 머리를 핑핑 잘 돌리게 된다잖아. 그러면 이제 내 말이 들리지 않을걸?"
"지금 네 말이 들리는 게 나쁘진 않지만, 계속 들리는 것도 이상하니까."
"형!"
"응."
"아주 오래전부터 하고 싶었던 말이 있었어."
형섭은 자신과 1년을 몸을 부대끼며 살아온, 냄새 나는 털복숭이를 애정어린 눈으로 바라봤다. 무한한 애정을 보여준 반려견이, 직접 자신의 입을 달싹이며 사랑한다거나, 고마웠다거나 하는 그런 말들을 들으면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다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철수의 눈에도 그렁그렁 눈물이 고이는 듯 했다. 형섭은 어떤 말을 들어도 눈물을 흘리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다. 손에 쥐고 있던 리드줄이 흘러나온 땀에 또다시 미끌거렸다.
"그동안..."
"...응."
형섭은 차마 철수를 더 바라볼 수 없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줬던 간식의 세배. 세배는 필요해. 나는 활동량이 많아서, 더 많이 먹어야 할 필요성이 있거든. 그게 사료는 아니야. 저번에 줬던 오리포가 정말 마음에 들었어. 나는 닭고기보다는 오리야. 너무 질긴 건 별로고, 딱 지난번에 먹었던 말랑한 걸로 세배. 더 바라지도 않아."
형섭은 처음 철수가 자신을 깨웠던 때처럼 정신이 번쩍 드는 기분이다. 다시 인간으로 돌아갈 완벽한 타이밍 같았다. 한 잔에 7천 원은 하겠지만, 직접 원두를 볶고 천천히 원을 그려 내리는 고급 커피를 한 잔 받아들고 인간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공장에 돌아가 제 몫의 일을 하고, 월급을 받아 이제는 세배를 줘야하는 철수의 오리포 간식을 사야할 것이었다.
"알았지? 약속한 거다? 알았지? 알았지? 약속해. 알았다고 해. 약속하라고."
철수가 짧은 다리로 폴짝폴짝 뛰며 형섭을 보챘다. 형섭은 리드줄을 꽉 붙잡고 카페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그윽한 커피향이 점점 더 진해졌다. 커피향 사이사이로, 거리의 냄새가 조화롭게 섞여 있었다.
<끝>
'출근길에 읽는 초단편'은 출근하는 마음으로 쓰고, 공개하는 짧은 시리즈 소설입니다.
돈 벌고, 먹고 사는 일에 관한 모든 수고들을 소재 삼아 써나가려 합니다.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그래서 나의 삶과 닮은 소설을 읽어 보고 싶다면 언제든 연락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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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월화수목금 쓰고, 토일 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