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창시 없는 것

은퇴인 줄 알았는데 퇴사였네?

by 암시랑
속창시 없는 것이, 쓰잘데기없는 말은 하지도 마라야!


엄마는 늘 그랬다. 내가 복지관을 그만두고 바닷가 어디쯤에서 책방이나 하면서 살고 싶다고 하면 차마 등짝 스매싱은 날리지 않더라도 그에 버금갈 정도로 내상을 입히고 남을 만큼 눈을 흘겼다. 하긴 아직 학업을 끝내지 않은 애들이 둘이나 있으니 그럴 만도 했다.


하지만 왕복 50km가 넘는 출퇴근 길을 8년 넘게 부단히 오가며 얼마 있지도 않은 체력을 곳간에 단감 빼먹듯 써댄 탓에 2년을 연이어 낙상했다. 작년에는 쇄골과 어깨가 부러졌고 올초에는 코뼈가 부러졌다. 이런 일들로 큰 일도 아닌 것에도 몸과 마음이 쉽게 지쳤다.


결정타는 차기 팀장이 나이도, 경력도 나보다 한참 적은 직원이 될 것처럼 돌아가는 사무실 분위기였다. 경력이 12년 차가 되도록 여전히 평직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보통 사회복지 기관들은 5년 차 이상 정도면 승진이나 승급이 되는데 우리 복지관은 그럴 기미도 없는 분위기여서 욕심을 내려놓았다. 그런데 은근히 밀려나는 분위기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신입 직원과는 20년은 족히 넘게 차이나는 나이 많은 중증 장애인. 게다가 평직원이라면 기관 입장에서는 호봉만 축내는 존재일지도 모르니 알아서 나간다고 하면 땡큐라고 하려나. 몸 쓰는 일이 많은 장애인 복지관에서 직접 서비스 업무도 어렵고, 전동휠체어를 사용하니 기동력이 떨어져 외부 업무도 쉽지 않은 나보다는 이일저일 가리지 않고 업무 지시가 편한 다른 직원이 효율적이기는 하다.


내 업무는 신입 직원이 당장해도 어렵지 않은 일이라서 호봉 차이를 생각하면 가뜩이나 모자란 TO(자리)만 축내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 자괴감이 들기도 했다. 승진이나 승급도 없으니 동기부여도 되지 않고 그저 쳇바퀴 돌듯 하루를 버티기 급급했다. 그런 마음은 갈대처럼 버티기와 퇴사를 하루에도 몇 번씩이 오갔다.


퇴사 이야기가 나도는 데도 새로 온 관장은 면담조차 부르지 않았다. 얼마 겪진 않았지만 직원이 퇴사한다고 하면 형식적이라도 말리는 게 인지상정인데. 은근 섭섭해 차에 면담을 하자고 했다. 누구에게 들었는지 내가 하루종일 책 읽고 글 쓰고 그림 그리면서 왔다 갔다 부서지는 파도를 보면서 오는 사람 안 막고 가는 놈 안 잡는 책방을 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았다고 했다. 멋지다고 했다. 그리고 퇴사를 망설이는 내게.


아니에요! 선생님. 오랫동안 소망했던 일을 할 기회인 거예요. 이번에 그 꿈을 실현해 보세요.


라며 다급하게 재직을 만류했다. 마치 내가 자기의 꿈을 대신 이뤄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간절함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관장은 잘 생각했노라고 네 꿈을 응원하노라며 쾌지나 칭칭 나래를 부르며 퇴사를 적극 장려했다. 그동안 내가 마음에 안 들었나? 싶은 생각에 자존심이 팍 상했다.


이건 뭐, 죽어라 열정을 불사르며 돈을 왕창 벌어 놓은 파이어족도 아닌데 나는 그렇게 55세에 약간의 빡침과 회복되지 않은 자존심 챙기느라 ‘끽’ 소리도 못하고 회사를 박차고 나와버렸다. 믿는 구석은 실업급여였다. 당분간은 월급만큼 되진 않아도 버틸 만큼은 될 테고 그동안 책방이든 재취업이든 살길을 찾으면 되겠다 싶었다.


한데 이 무슨 날벼락?! 자발적 퇴사는 실업급여가 아예 신청도 되지 않았다. 서둘러 기관에 잘린 거로 해달라고 읍소했지만 거절! 결국 생돈을 들여가며 진단서에 운동평가에 낙상으로 인한 장거리 출퇴근의 어려움을 증명해 내고 나서야 승인이 났다.


더럽고 치사하고 아니꼬워서 이참에 은퇴를 한 거라 생각하고 그동안 꿈만 꾸던 책방을 펼쳐보자 싶어 바닷가를 찾아 헤맸다. 꿈은 이루어지는 게 당연하지만 현실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당장에라도 책방을 열겠다고 했지만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다. 결국 엄마 말대로 속창시 없는 놈이 돼버리고 말았다. 그땐 몰랐다. 나이 많은 중증 장애인에겐 회사 밖은 생각보다 훨씬 더 혹독하고 냉정하며 참혹하다는 것을. 퇴사가 자발적 은퇴로 가는 가장 빠른 노선이 된다는 것을.


사실 퇴사를 핑계로 놀고 싶은 마음이 없던 것도 아니었다. 1997년부터 2024년까지 27년을 일했다. 중간중간 이직과 수술, 재활을 했던 시간을 제외해도 이십 년은 훌쩍 넘게 열심히 성실히 일했다. 애니메이터로 일할 때는 몇 날 며칠 철야를 하고 회사 계단을 비몽사몽 한 채 내려오다 구르기도 하고, 직업학교 교사를 할 때는 하루 10시간 강의와 수업준비를 하면서 서너 시간밖에 자지 못해 살이 쭉쭉 빠졌다. 그렇게 무리하다 장애가 심해져 수술과 재활 치료를 해야 했다.


백여 통의 이력서를 내고도 면접조차 보지 못하는 그때의 일을 다시 겪고 싶지 않아서 웬만한 부침은 끄떡하지 않았지만 결국 사회복지사 12년 차가 된 지금 다시 이력서를 쓴다. 스스로 은퇴라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퇴사라는 게 웃프지만 아직 내게는 학생인 두 아이들이 남아 있으니 지치지 않고 열심히 구직활동에 매진한다.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고 하루종일 책만 읽고 싶은 마음은 깊숙이 접어 놓고, 잘하는 게 있다고 잘할 수 있다고 잘 봐달라고 간절한 마음을 담아 꾹꾹 눌러쓰는 이력서가 면접으로 이어지면 좋겠다. 속창시 없이 그러지 말고 열심히 댕겨라는 엄마의 말이 자꾸 생각나 뼈가 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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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