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접이라도 볼게요

그렇지만 관장을 시켜주는 곳이 없어서요.

by 암시랑

나는 종종 사회복지기관이나 그 밖의 공공기관에서 장애인식개선교육이나 인권교육을 한다. 말이 교육이지 딱히 무언가를 가르친다거나 그 시간으로 참여자의 지적 수준 향상에 기여하는, 그런 교육이 아니다. 그럴 깜냥도 안 되고.


그러니 그저 내가 가진 장애와 경험을 나누며 적당히 웃고 많이 공감하면서 장애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조금은 긍정적이 되는 변곡점이길 기대한다. 그러니 교육이 아니라 편히 들을 수 있는 강연 정도라고 하는 게 적당하겠다. 어쨌거나 내 경험을 타인과 나누는 일은 특별함을 공유한다.


그렇게 교육 비슷한 강연을 서울의 한 중학교에서 한 날, 이것으로 마무리하겠다고 하자 한 여학생이 손을 번쩍 들었다.


선생님, 그러면 장애인이 되고 난 다음에는 좋은 점은 뭐가 있어요?

순간 당황, 멍했었나? 10초 정도? 그랬던 것 같다. 그리고 그보다 더 오래 생각했다. 뭐가 있었나? 비장애인으로 20년을 살다가 35년 넘게 장애인으로 살고 있다. 그러니 비장애인으로 살았던 35년 전 기억은 이미 가물가물해졌다는 사실이고 그 흐릿해진 기억에서 뭐라도, 뭔가 그럴듯한 대답을 기대하는 표정의 이 여학생의 마음을 흡족하게 채워줄 대답은 쉽게 건져 올리지 못할 건 뻔했다.


그렇다고 "뭐, 그런 게 있을까?"라고 시니컬한 대답은 아이에게 무례한 걸 테고, 조금의 시간(사실 억겁의 시간만큼 길게 느껴졌지만)을 더 쓰고 나서도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게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아서 지금은 해 줄말이 없지만 다음에 꼭 알려줄게. 미안해"라며 기약 없는 약속을 하고 말았다. 과연 이 질문에 내가 답을 찾을 수 있을까? 장애에 대해 온통 부정적인 세상에서 긍정적으로 변한 게 뭐가 있을까? 있기나 할까? 있을 수 있을까?


그리고 얼마 후, (어떤 대답을 해줬는지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나는 힘겹게 약속을 지켰고, 그 아이는 감사하다며 복지관에 자원봉사를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선생님 같은 사회복지사가 되겠다."라며 웃었다.


이 시간은 장애인식교육에 인권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고, ‘장애’를 이해하는 데는 사람의 '권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그 후, 국가인권위원회 인권 강사 양성 교육에 참여하고 강사 위촉을 받았다. 벌써 2번 째다.


12년 동안 몸담았던 장애인 복지 현장을 밀려나듯 벗어난 후 인권 분야에서 일하고 싶었다. 시혜와 배려 중심의 복지 현장이 아닌 사람을 파고드는 일에 관심이 초집중 됐다. 당연한 것들임에도 누군가는 요구를 해야만 그나마 간신히 받을 수 있는, 그런 사회가 정한 계급에서 얼마간 비켜나 있는 힘없는 사람들의 권리를 위한 일을 하고 싶었다. 인권 관련 기관들을 샅샅이 뒤지고 정보를 찾아 입사 지원을 했다.


대다수 기관은 메일만 확인했다. 이렇다 할 회신이 없으니 이력서와 자소서를 읽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런 와중 한 기관에서 면접을 오라고 했다. 면접을 볼 수 있다는 게 고마워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마음이 그랬다. 이 나이 많고 전동 휠체어까지 타는 사람에게 기회라도 주는 게 고마웠다. 결과는 어쨌든 탈락이었지만. 발표는 ‘적격자 없음’. 적격자가 없다니, 요구하는 자격은 다 갖췄는데 어떤 부분이 비적격이었을까 궁금했다. 경력이 없다는 게? 아니면 나이가 좀 많다는 게? 아무튼 나이 많은 중증장애인의 재취업에서 천년에 한번 올까 말까 한 면접은 그렇게 끝났다.


며칠 뒤, 우연히 같은 기관의 재구인 공고를 보고 심박수가 빨라졌다. 어디도 면접제의조차 없는 상황은 모든 감정이 초조함으로 수렴되는 기분이었고 피를 말리는 시간이었다. "또 내봐?"라는 마음이 요동쳤다. 이렇게라도 매달리는 내가 은근히 지질하게 느껴졌다. 망설이지 말고 저번보다 전투적으로 면접을 보면 없던 적격이 이번에는 생길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 얼마간 비굴한 감정이 초조함을 비집고 꾸역꾸역 올라왔다. 그만큼 취업이 간절했다. 메일 버튼을 눌렀다. "저번 탈락자입니다. 재입사 지원도 가능할까요?"


담당자는 보안 이유로 탈락 이유는 알려 줄 순 없지만 재응시는 가능하다는 회신을 주었다. 부끄러움이 전달 됐는지 담당자의 회신에는 마침표에 이모티콘이 웃고 있었다. 지질함은 온데간데없고 그저 반갑고 고맙고 그랬다. 적격이 생기도록 면접에 최선을 다해 보기로 한다. 터질 것 같은 심장을 꽉 부여잡고 들어선 면접장, 낯익은 얼굴. 다른 면접관들의 얼굴은 바뀌었는데 같은 사람이 있는 걸 보니 이곳의 기관장인가. 그는 옆 면접관을 보며 나직이(30cm 정도에 소곤대는 말은 나더러 들으라는 거였죠?) 말했다.


나이나 경력이나 어디서 관장을 하셔야 하는 거 아냐…


순간 머리칼이 쭈뼛 섰다. 그렇구나 애초에 나이가 많아서 탈락한 것이구나.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확실해졌다. 그래도 할 수 있는 말은 인권 분야는 경험이 없으니 실무에서 열심히 해보겠다고, 나이가 많아도 직원들과 소통은 잘해왔다고 말하는데 점점 변명처럼 들리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어디에서도 관장은 시켜주는 곳이 없더라고요,라며 소리없는 웃음을 흘렸다.


나도 안다. 실무자로 이력서를 내기엔 나이가 많다는 걸. 55세는 은퇴를 한대도 이상할 나이는 아니니까. 그래도 모든 일에는 처음이 있는 것이고 그 처음은 나이가 많고 적음이 아니라 의지의 문제라고 피력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면접관은 실무를 담당하기에는 나이가 너무 많다는 것에 단호함이 있었다.


가뜩이나 없는 눈치가 부끄러움을 키웠다. 결국 면접관의 말귀도 못 알아듣는 사람아 제발 그냥 가라,는 표정이 느껴져 서둘러 나왔다. 이럴 거라면 애초에 면접을 오지 말라고 하는 게 배려이지 않았을까. 돌아오는 길이은 지구 반바퀴는 돌아온 것처럼 멀었다. 그냥 가지 말라던 아내 말을 들을 걸 그랬다. 역시 회사 밖은 누구든지 힘들지만 나이 든 중증 장애인에게는 더 가혹하다는 걸 미처 알지 못했다.


나는 다시 이력서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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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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