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복지관, 장애인 직원 정체성 찾기
어찌 보면 사회복지는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가치를 품은 일이다. 하지만 복지 현장은 그런 의미처럼 판타지하지만은 않다. 특히 장애인복지는 아주 하드하고 심지어 그로테스크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별별일이 다 생기는, 하루하루가 버라이어티 한 일이 터지는 곳이다. 영어를 많이 쓴 건 슬쩍 부정적인 어감을 상기시키는 데 딱인 듯해서다.
이런 장애인복지 현장을 '장판'이라 부른다. 차별받고 소외의 끝에 서있는 사람들, 사회적 시스템에서 일정 부분 비켜나 있는 사람들의 삶이 변화 가능하다면 함께 하려고 노력하는 게 사회복지 종사자들이다. 물리적, 물질적, 심리적 등 그들이 잃은 모든 부분을 채워나갈 수 있도록 지원한다. 이 장판에 발을 디딘 지 12년 차다.
고백하자면 돈을 벌기 시작한 1997년부터 애니메이터, 디자인 강사를 하며 15년 이상을 비장애인 틈에서 일했다. 특별히 배려나 보호받은 기억은 없다. 되려 장애인 강사인 내게 비장애인 교육생들은 자신의 삶에 동기부여를 준다며 내가 롤모델이라 했다. 나처럼 열심히 살겠다고. 누군가의 불편함으로 자신의 편함이 부각되어 반성(?)하는 자세가 그다지 바람직한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의도하지 않게 불편한 몸으로 열심히 살았더니 불편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용기를 준 꼴이 되었다. 어쨌거나 내가 긍정의 힘을 준다 하니 충분히 자뻑하며 살았다.
그렇게 몸을 돌보지 않는 ‘열심’은 결국 탈이 났고 매끈하게 흐르지 못하는 내 척수는 몸의 강직을 임계치로 끌어올려 복용치의 약으로도 조절이 안 됐다. 결국 몸을 돌볼 예정으로 일을 멈췄다. 하지만 인생이 계획대로 되던가. 정신 차리고 보니 장애인복지관에 입사해 있었다. 사회복지가, 장애인복지가 뭔지도 잘 몰랐다.
동네에 학교가 있어도, 그들이 다닐 수 있는 학교가 생긴 대도 학교를 마음 편하게 다닐 수 없는 사람들, 그래서 엄마가 무릎 끓고 눈물을 보여야만 그나마 관심을 좀 받는 사람들을 보면서 당연한 권리가 개인의 이익으로 거절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았다. 또, 낮은 턱하나 넘지 못하거나 어려운 표지판으로 길을 잘 찾지 못하거나 소리 내서 말을 할 수 없다는 이유로 맛집에 핫플이 넘쳐나도 가볼 엄두를 내지 못하는 사람이 있고,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해외여행은 고사하고 기차도 배도 비행기도 못 타본 사람이 천지삐까리만큼 많다면? 또 변변한 직장을 갖고 꿈을 펼치는 장애인은 또 얼마나 있을지 상상할 수 있을까? 이런 장판에 들어서고 나서야 대한민국이 장애인에게 얼마나 야박했는지 선명하게 보였다. 이런 상황이 이해되지 않지만 여전히 이런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는 게 속상하다.
2016년, 서울시 정책과 맞물려 팀개편이 있었다. 뜬금없는 권익옹호 업무가 주어졌다. 내가 장애인 당사자라서 딱이라는 거였다. 권익옹호가 뭔지도 모르고 내 의지는 1도 없이 교육을 들으러 다니고 자격증을 취득해도 여전히 알 수 없던 권익옹호를 담당했다. 물론 얼마간의 사명감이 생겨서 지역을 돌며 장애인식개선캠페인을 하고, 여기저기 인식개선교육을 다니고 지역 상점에 경사로를 늘리기 위해 굽신거리며 사정도 했다.
이렇게 기동력이 중요한 일에 복지관에서 기동력이 제일 약한, 전동 휠체어를 타는 내가 담당했다. 그러니 고될 수밖에. 직장인에게 위에서 하라면 군말 없이 하는 게 수명연장의 지름길임을 모르는 바 아니라서 8년을 버텨왔다. 한데 타인의 권익옹호를 위해 하면 묵묵히 일하면 할수록 내 권익옹호는 뒷전이었다. 장애인 복지관에서 장애인을 대하는 사회복지사들의 시선에서 장애인 사회복지사는 어떤 정체성을 가지게 되는가, 동료인지 이용인 수준에 머무는지에 대한 현실적 고민들이 종종 들었다.
예전에 ‘장애인 복지관에 왜 장애인 직원이 별로 없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때 관리자는 엄청난 노동 강도의 일을 이야기하며 나는 꽤 운이 좋은 편임을 확인시켜 줬다. 손해를 감수하고도 너를 받아줬다는 느낌이 들었다. 다른 장애인 복지관을 둘러봐도 비슷했다. 장애인 직원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그 관리자는 ‘장애와 비장애를 가리지 않고 똑같이 대하는 것이 차별하지 않는 것이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어쩌면 그는 ‘똑같다’라는 함의로 ‘차별 없음’을 등치 시키며 ‘동료’를 강조하며 스스로 차별주의자가 아니라는 인식에 취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직원연수 같은 기관 행사에 다수 직원과 똑같이 일정을 소화하는 일에 한 사람이 겪는 불편함 정도는 감수하길 바라는 일들이나 폭설로 교통이 마비가 되는 상황에 발이 묶여 버려도 다수의 직원과 같이 대중교통을 이용해서라도 출근하는 것이 ‘똑같다’라고 할 수 있을까?
똑같이 대우해서 ‘차별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심한 차별이라는 것을 그땐 왜 몰랐을까. 장애인의 삶의 질을 높이겠다고 발 벗고 뛰는 장판의 사회복지사들이 내부의 동료는 어떤 존재인지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차별은 “같은 것을 다르게 적용하고, 다른 것을 같게 적용할 때“ 만들어진다. 예컨대, 100m 달리기에서 다리가 불편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같은 선에서 출발하는 것은 이미 페어플레이가 아니다. 체급이 다른 선수를 같은 조건에서 경기를 하게 만든다면 결과는 뻔하지 않겠는가.
같은 동료라 함은 소속만 같은 것이 아니라 조직 안에서 개인이 갖는 역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이렇게 쓰고 보니 꽤나 불행한 시간을 보낸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그 안에서 많은 동료들과 행복한 시간이 훨씬 더 많았다. 하지만 드라마 대사처럼 모든 날이 좋을 수는 없는 일이라서 얼마간의 부당함과 속상함이 계속되지 않길 바란 애정이었다. 직원의 존엄이 지켜질 때 조직이 발전한다는 그 뻔한 말을 하고 싶었다. 퇴사당하고 나니 방언이 터졌달까. 크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