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놀고 싶어서 노는 게 아니라니까요
백수가 된 지 4개월이 넘고 반년에 가까워지면서 빈둥거리는 일상이 익숙해졌다. 으레 늦잠을 잤고, 일어나면 눈곱만 간신히 뗐고, 머리에는 거푸집을 자주 틀었다. 가급적 외출을 삼갔으므로 몰골은 대부분 비슷했다.
그러던 어느 날, 못마땅한 얼굴로 히스테릭하게 시작한 엄마의 잔소리는 귀에서 피고름이 날 정도가 되자 “일도 안 하고 꼴 보기 싫게 빈둥거리는 것도 아버지를 닮아 가냐?!”라며 결정타를 날리고 끝냈다. 나는 세상에서 아버지를 닮았다는 말을 제일 싫어한다. 엄마는 일부러 발작 버튼을 눌렀다. 진심 소멸하고 싶었다.
생각보다 내상을 크게 입었다. 불면증이 심해졌고, ‘대물림’이란 단어가 풍선처럼 줄곳 머릿속을 떠다녔다. 대물림… 대물림… 아버지를 닮았다니… 말도 안 돼… 대물림에 관한 글을 써야겠다고 결심했다. 하지만 좋은 이야기도 아닐뿐더러 대부분은 아버지 이야기일 것이고, 부자간의 오래된 앙금이라 망설였다.
초등학교 학기 초 담임은 아이들에게 존경하는 위인을 발표하라고 시켰다. 딱히 발표할 위인을 찾지 못하고 있을 때, 한 애가 발표했다. "저는 아빠를 존경합니다. 이유는..." 분명 이유를 말하고 있었는데 정신이 아득해져서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아빠를? 존경? 왜? 거짓말이지? 온갖 부정적인 말들이 뒤죽박죽 엉켰다. 그때는 세상 모든 아빠는 다 비슷할 거라 믿었다.
아버지처럼 살고 싶지 않았다. 속옷을 몇 번씩 덧대서 입어야 했던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도 매일 술에 취해 비틀대고 헤실헤실거리는 아버지가 싫었다. 마흔 살쯤이던 아버지의 주체할 수 없는 허영과 한량기질을 주변에선 남자답다거나 사람 좋다며 포장했다. 그걸 아버지는 좋아했다. 가족은 안중에 없고 빛내서 음주가무를 즐기는 것도 모자라 춤바람도 났다. 그때 반쯤은 정신이 나간 엄마를 기억한다. 내 나이 17살이었다.
빨리 어른이 돼서 벗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21살, 목이 부러져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었다. 그냥 죽고 싶었지만 엄마가 살려냈다. 걸음마부터 다시 시작해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까지 해내는 동안 엄마는 늘 옆에 있었다. 몸은 불편했지만 열심히 일했다. 아내는 매사 책임감 있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에 반했다고 했다. 결혼하고 성실하고 자상한 남편으로 살려고 애썼다. 물론 아내 생각은 다를지도 모르지만 큰 다툼 없이 잘 살고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 쉬지 않고 27년을 일했다. 그중 12년을 몸담았던 복지관을 우여곡절 끝에 그만뒀다. 이직을 생각한 것이 아닌 갑작스러운 퇴사여서 막막했다. 퇴사한 김에 은퇴라고 생각하고 그동안 꿈만 꾸던 책방을 하면 어떨까 했다. 하지만 현실은 준비 없는 퇴사는 가혹하다는 사실만 확인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무기력한 시간이 늘어졌다.
문득, 생각한다. 아버지는 그 젊은 나이에 대책 없이 놀면서도 어떻게 즐거울 수 있었을까. 가족을 부양할 수 없다는 것이 두렵거나 불안하지는 않았는지. 일을 할 수 없던 것인지, 아니면 정말 하기 싫었던 것인지.
몇 번이나 반복해서 이력서를 쓰다 보면 점점 자신감이 떨어진다. 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할 수 없어서 노는 일은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을 확인받는 것 같아서 무섭다. 이렇게 쓸모를 찾아 헤매는 시간이 얼마나 필요할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이렇게 노는 건 즐겁지 않다.
자고로 한량이란 놀면서도 처자식쯤은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내공을 탑재하고 있어야 할 텐데 나는 이렇게 마음 불편하고 즐겁지도 않으니 아버지처럼 한량은 아니라고,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고 그러니 대물림이 아니라고 극구 손사래 친다.
그럼에도 한편으로는 정작 오늘도 어제처럼 책상에 늘어져 이력서만 다듬는 것 말고는 하는 게 없으니 이 또한 한량이 아닌가? 싶어 우울하다. 결국 대물림이라 해도 아버지를 빼다 박았다고 해도 어쩔 수 없겠다 싶기도 한 마음이 들어 버렸다.
이제는 그동안 쌓기만 했던 애증을 털어 낼 때도 됐다 싶기도 해서 아버지를 보는 일이 조금은 녹녹하게 될지 모르겠다. 그나저나 면접이나 한번 봐야 쓸모를 보여줄 텐데 아내에게 미안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