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기 암환자의 슬기로운 치병 생활
아침부터(4.25일) 채혈, 엑스레이, 고주파 온열, 항암 전처치, 본항암(키투르다, 오니바이드, 페르본)을 모두 마치고, 5FU 인퓨저를 달고 퇴원을 했다.
항암을 하는 날은 일찍 병원에 가야 하고 할 것도 많아 정신이 없다. 끝나는 시간도 다섯 시 전후. 퇴근 시간과 겹쳐 7시 즈음 집에 도착했다.
정신이 육체 지배하는 것 맞다. 3주 만에 항암을 했는데 육체적으로 피로감이 훨씬 덜하다. 저녁은 '치팅데이'라고 수호천사표 떡볶이를 먹었다.
진하게 우려낸 육수에 한살림 표 쌀떡과 어묵 그리고 파를 넉넉히 넣고 제법 매콤하게 만들었다. 매울까 걱정했는데 신기하게도 전혀 맵지 않았다. 소원성취하는 날이었다. 수호천사는 요리도 잘한다(팔불출 만자씨).
매운 거 잘 먹을 때 먹고 싶은 리스트를 만들었다.
매콤한 갈치조림, 열무비빔국수는 2,3일 전에 이미 먹었고 어제는 떡볶이를 먹었다.
이제 남은 것은 장칼국수, 짬뽕 그리고 매운 겉절이 등이다.^^
만자씨 컨디션은 2주 간격 항암 때 보다 확실히 좋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래도 기대했던 것 이상이다.
내일 지나 수·목요일까지 지켜봐야겠지만 느낌이 좋다. 3주 간격을 넘어 다음 중간평가 때는 더 좋은 보너스를 받았으면 좋겠다.
오늘(4.26일)은 3주 간격 오니바이드 항암 둘째 날이다. 어제까지는 2주 항암 때보다 컨디션이 많이 좋았다. 매운 떡볶이도 먹고.
아침에 눈이 일찍 떠졌다.
저장해 놓은 블로그를 포스팅하고, 매일 아침 마시는 양배추 즙을 한잔 마셨다. 항암 부작용인 속 쓰림 방지에 참 좋다.
수호천사는 오랜만에 곤히 자고 있다. 조용히 나와 즙을 마시고, 브런치 작가님들의 글을 찾아 읽었다. 미소 짓기도 하고 가슴 아파하기도 하고.. 그 사이 수호천사가 잠에서 깨어 아침을 챙긴다.
"왜 좀 더 자지?"
"아냐, 오랜만에 잘 잤네. 속은 어때? 아침을 뭘 먹을까?"
항암 주기 때 만자씨는 임산부와 같아서 입맛이 아주 변덕스럽다. 그래서 늘 내가 어떤 음식을 먹을 수 있는지 묻곤 한다.
"아! 얼마 전 자기가 주문한 봄나물 넣고 죽 끓여 먹으면 어떨까?"
만자씨가 눈을 반짝이며 의견을 냈다.
"그래, 그거 좋겠다. 영양도 있고.. 한번 해보지 뭐."
만자씨의 중요한 임무 중 하나가 무엇을 먹을 것인지 고민해 수호천사에게 부탁하는 것이다.
육수는 늘 준비되어 있었다. 육수에 김장김치, 파김치, 황태채, 식은 보리밥을 넣고 끓이다가 어젯밤 늦게까지 세척해 소분해 둔 봄나물을 넣어 조금 더 끓이면 된다.
자연산 모둠 산나물인데 취나물, 산미나리, 병풍취, 엄나무순, 다래순, 산 고춧잎, 참나물, 어수리, 개두릅, 삼 나물(눈개승마) 등 이름도 모르는 나물들로 가득했다. 이중 몇 가지를 선택해 넣으면 향기 가득 봄 산나물죽 완성이다.
"맛이 있으려나? 입에 맞으면 좋겠는데."
수호천사가 그릇에 죽을 담으며 말했다.
"일단 냄새는 좋은데?"
만자씨가 한입 넣고 오물거렸다.
"오~~~~ 너무 좋은데? 나물 향이 너무 좋다. 어서 먹어봐."
엄지 척을 연신 날리며 만자씨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나물 마니아 수호천사 입맛에도 아주 잘 맞는 것 같았다. 한 냄비를 둘이서 순삭 했다. 항암 중에 이리 맛있게 먹은 건 참 오랜만인 것 같다.
아침을 기분 좋게 잘 먹고 커피까지 마셨다.
그래도, 오니바이드 항암은 역시 강했다. 3주 간격이라고 부작용이 덜 한 것인지 애매했다. 기대가 커서 그런지 훨씬 낫다는 느낌은 없었다.
사실 3주 간격 항암은 일주일 뒤부터 그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지, 항암 중에는 사실 큰 차이는 없는 것이 오히려 정상인데도 마음으로는 부작용이 덜 하길 바라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어제 시험 끝났다고 늦게까지 한잔하고 들어오신 아드님이 아아 커피셔틀을 시키셨다.
엄ㆍ빠 산책 나가려는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약은 녀석.
역시 집을 나서는 건 큰 결심이 필요한데 막상 현관문을 나서면 발동이 걸린다.
"나오니까 너무 좋다. 우리 자주 나오자."
수호천사가 내 손을 잡으며 말을 꺼냈다. 산책을 나올 때마다 늘 하는 단골 멘트다.
"눼눼..자기님은 맨날 그런 소리 하셔요. 내가 맨날 같이 나가자면 소파에 누우시잖아요."
만자씨가 농을 쳤다. 농 같은데 뼈가 있다.^^
커피를 사고 돌아오는 길에 수호천사가 깜짝 선물을 사줬다. '꽈배기'
입맛 없는 만자씨를 위한 특별 간식. 가끔 있는 일이긴 한데 보통은 만자씨가 조르면 못 이기는 척 사주곤 하는데 오늘은 수호천사가 자발적으로 사줬다.
대신 설탕은 묻힌 듯 안 묻힌 듯..
저녁은 열무비빔밥을 먹기로 합의를 봤다.
열무에 산나물도 조금 넣고 맵지 않을 정도로 비비고 부족한 단백질은 달걀 프라이로 보충하기로 했다.
입맛이 썩 좋지 않을 때 잘 먹어야 한다는 강박은 이제 내려놓았다. 그냥 먹고 싶은 것(그렇다고 완전 자제 음식은 안된다) 위주로 양을 조금 줄여 먹는 게 가장 좋은 선택인 것 같다.
아, 드디어 중요한 일도 하나 처리했다.
2차 겨울옷 정리 및 여름옷 꺼내기.
운동 삼아 정리를 했더니 홀가분했다.
감사하게도 편안한 일요일을 또 선물 받았다. 아무 걱정거리 없는 그야말로 선물 같은 하루다. 날씨는 조금 우중충한데 대세에 지장은 없다.
오늘은 아무 일정이 없어 더 좋다. 어제 겨울옷 정리를 했더니 십 년 묵은 체증이 내려간 느낌이다.
브런치 작가님들 중 아직도 겨울옷 정리 못하시고 전전긍긍하시는 분들 계시던데 심심한 '위로'를 보낸다.^^
오늘은 만자씨와 수호천사가 같이 눈을 떴다. 아침 허그를 하고 서로의 안부를 물은 후 침대에 누워 한동안 뒹굴뒹굴했다.
"컨디션 어때? 어제 얼굴이 많이 빨갛던데."
내 얼굴을 살포시 만지며 수호천사가 물었다.
"응. 푹 잤더니 좋아. 속은 뭐 좀 울렁거리네. 느낌인지 몰라도 2주 간격 때보다 조금 덜한 것 같기도 하고.. 아냐 아냐 설레발 안돼. 금요일까지는 지켜봐야지."
"그래도 좋다. 이렇게 아무 걱정 없이 늦잠 자고 침대에서 뒹굴뒹굴하는 게 난 너무 좋아."
"아 그래? 나도 좋지. 근데 나 화장실 좀 갈게."
ㅋㅋㅋ
만자씨가 달달한 분위기를 한 방에 깨 버렸다.
"오늘 아침은 뭐 먹을까?"
수호천사가 고뇌하며 물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만자씨가 답했다
"어제 그 산나물 죽 또 먹을까? 그거 또 먹어도 괜찮을 것 같은데."
"괜찮겠어? 나는 또 먹어도 괜찮을 것 같기는 한데..."
"음~~~ 산나물 죽, 열무 산나물 비빔밥 먹었느니 오늘은 돌솥비빔밥처럼 볶아 먹을까?"
"굿!"
그렇게 우리의 아점은 '산나물 시리즈 3'으로 결정됐다.
산나물 준비는 수호천사가 했지만 볶는 것은 만자씨 담당.
데친 산나물에 적당량의 열무김치와 들기름을 넣고 볶는다. 열무김치는 산나물의 슴슴함을 잡아주는데, 너무 많이 넣으면 산나물 향을 느끼지 못하게 할 수 있다. 그래서 '적당량'에 대한 천재적인 감각이 필요하다.^^
식은 밥과 고추장을 넣고 마저 볶으면 완성이다. 달걀 프라이는 폭망이다. 이건 왜 이리 어려운지..
맛은 만자 셰프 작품이니 보장이 됐다.
수호천사가 엄지 척을 날렸다. 산나물 연속 시리즈가 또 성공이다.
연속 세끼 산나물 시리즈. 입에 맞으면 한 달 시리즈도 가능할 것 같다.
한주 항암이 미뤄지면서 잘 먹었더니 체중이 제법 늘었다. 암 환자는 체중이 감소하면 스트레스를 받는다. 만자씨도 그랬다. 항암 중 잘 먹지 못할 때는 염려스러울 정도로 체중이 줄었다.
그럴 때는 억지로라도 무언가를 먹어야 된다는 강박이 있었는데 이젠 그러지 않기로 했다.
항암 중엔 조금 먹고, 부작용이 덜 할 때쯤 잘 챙겨 먹어 보충하는 전략으로 바꿨더니 스트레스가 줄었다.
2주에서 3주 간격으로 바꾼 이후 매운 음식도 잘 먹고 식욕도 좋아져서 체중이 제법 늘었다.
(암) 환우들은 잘 먹어야 한다. 잘 먹어야 에너지가 생기고 그래야 움직이는 것이 가능하다.
많이 움직여야 밤에 잠을 잘 자고, 잘 자야 아침이 개운하고 입맛도 생긴다. 선순환인 것이다.
꼭 (암) 환우분들에게만 해당되는 얘기는 아니다. 그리고 환우분들도 그걸 알면서도 할 수 없는 상황일 수 있지만 '무엇을 먹을지' 최선을 다해 고민을 해야 한다.
잘 먹고, 많이 움직이고, 잘 자는 것이 최고의 치료 방법이란 생각이 든다. 5년 가까이 치병 생활 중인 만자씨가 내린 주관적인 결론이다.
사실 이렇게 잘 먹기 위해서는 곁에 헌신적인 보호자가 필요하다.
검색을 통해 산나물을 구매해서 만자씨 입맛을 살려주는 수호천사와 같은(자랑질이라 생각지 마시구요) 보호자가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혼자라도 열심히 궁리해서 한 끼 한 끼를 소중하게 챙겨 먹어야 한다,
잘 먹고, 많이 움직이고, 잘 자고!
긍정의 마인드와 감사하는 마음은 늘 가슴에 고이 간직하고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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