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기 암환자의 슬기로운 치병 생활
암환자에게 먹는 것만큼 중요한 일은 없다. 잘 먹는 것 외에 잘 자고, 스트레스 덜 받고, 운동 꾸준히 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만자씨는 그중에서 균형 있는 식사를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항암 중에는 구토, 식욕부진 때문에 의무적으로 식사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끼 한 끼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제 때 먹으려는 노력을 하여야 한다.
최근 두 끼의 점심을 먹으며, 먹는 것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기에 두 끼 점심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11차 오니바이드 항암 4일 차(4.28일). 오전에 거추장스러운 폭탄(*인퓨저)을 제거하고 출근을 했다.
* 일정한 속도로 항암제가 주입되도록 특수하게 고안된 의료기구로 아기 젖병처럼 생김.
병원에서 달고 나와 46시간 후 항암제가 다 들어가면 제거함.
그 젊으신 의사 선생님은 여전히 친절하셨다.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힘들지는 않으셨구요?"
"아 네. 얼마 전 중간평가 결과가 좋게 나왔습니다. 항암 간격도 2주에서 3주 간격으로 늦췄습니다."
"아 네~~~, 아주 다행이네요. 축하드립니다."
사실 인퓨저를 제거하는 시간은 채 5분도 안 걸린다. 그럼에도 선생님은 그 짧은 시간에 몇 마디 안부로 환자의 기분을 어루만져 주셨다. 기계적인 진료를 할 수도 있는데 절대 그런 적이 없다.
인퓨저를 제거하여 홀가분한데 배려까지 받으니 행복 바이러스가 또 꿈틀댄다.
직장에 출근하니 동료들이 다른 때보다 컨디션이 좋아 보인다고 이구동성으로 얘기를 했다. 환한 미소로 대답을 대신했다.
오늘 점심은 그동안 구내염으로 자주 이용하지 못했던 회사 구내식당에서 동료들과 함께 했다.
잡곡밥, 어묵국, 두부조림, 떡갈비 야채 조림, 쌈 다시마 초고추장, 배추김치, 야채샐러드.
어묵국이 너무 맛있었고, 한동안 매워서 먹지 못했던 두부조림과 쌈 다시마도 푸짐하게 먹었다.
고무적인 것은 매운 것을 먹을 수 있게 된 것도 있지만, 인퓨저 제거하는 날 이렇게 맛있게 식사를 한 것이 얼마 만인지.. 너무 뿌듯했다.
한 끼의 식사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알기에 오늘 점심은 행복 그 자체였다.
점심을 먹자마자 회사 근처를 산책했다. 식 후 바로 커피나 차를 마시러 가는 걸 자제하고 식사를 마치자마자 바로 산책을 한다. 당을 관리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식사 후 바로 커피숍을 가면 몇십 분을 움직임 없이 앉아서 대화를 하는데, 식사 후 루틴으로는 그리 바람직하지는 않다. 물론 커피에 대한 유혹을 떨쳐내고 산책을 가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긴 하다.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고 볕이 너무 좋았다. 주변에 만개한 철쭉과 짙어져 가는 초록의 나뭇잎들로 힐링이 되었다.
잘 먹으니 에너지가 분출되는 느낌이었다. 근래 들어 항암 중 최고의 컨디션이었다. 3주 간격 항암의 효과가 나타난 것이 확실한 듯하다.
앞으로 점점 더 좋아질 것이란 기대감을 갖기에 충분했다. '감사합니다'란 말이 저절로 나왔다.
"자기야, 나 구내식당에서 점심 무쟈게 잘 먹었어."
"오 그래? 컨디션이 괜찮은가 봐. 다른 때 같으면 밥은 고사하고 거의 까부라질 듯했잖아."
"그러게. 오늘은 느낌이 좀 다르네."
"정말 잘 됐다. 항암 늦춘 게 그렇게 영향이 큰가? 에휴~~ 그러니 그게 얼마나 힘든 거겠어."
기분 좋은 대화를 마치고 연한 커피 한 잔을 마셨다. 뭔지 모를 미묘한 감정이 올라왔다. 기분 나쁘지 않은 감정이었다.
봄인데 나만 추운가? 살이, 내 살들이 부족해서 나만 추운가?
아니다. 아침·저녁으로 울 집 가족들 모두 '춥다 춥다'를 입에 달고 산다.
반팔 또는 반바지 패션을 보면 부럽기도 하고, 가엾기도 하다(멋 부리기도 힘들다).
만자씨는 온열치료 받으러 군포 지샘 병원에 왔다. 아침은 여전히 쌀쌀하다. 그래도 햇볕이 좋고 하루가 다르게 초록 초록해지니 기분은 상쾌했다. 컨디션도 괜찮고.
4월 되면 봄 없이 바로 여름이 올 것이란 루머는 어디서 나온 얘긴지... 그럼에도 만자씨에게 조금 추운 것쯤은 별문제가 아니다.
오늘은 '감사합니다'를 여러 번 외쳤다. 요 며칠 감사할 일이 많이 생기니 외침 횟수도 여러 번으로 늘렸다.
조금 늑장을 부렸더니 차가 막혀 9시 넘어서 병원에 도착했다. 6시간짜리 낮병동 입원을 해야 하는데 낮병동 병실이 없어서 일반 병동으로 입원해야 했다. 큰 차이는 없으나 낮병동이 조금 더 익숙하니 좋다.
오늘은 도시락을 준비 안 했다. 어제 수호천사가 피곤했는지 저녁 식사 후 초저녁부터 이불을 쓰고 잠을 잤다.
자는 도중에도 도시락 걱정을 했다.
"내일 산나물 김밥 준비할 건데 괜찮지?"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는 김밥. 더군다나 산나물 김밥이란다.
"나야 좋은데. 자기 피곤해 보이네. 오늘은 그냥 자는 게 어때? 내일 도시락 배달 시켜 먹지 머."
"그래두 될까? 피곤하긴 하네.."
한 마디를 마저 하지도 못한 채 다시 쓰러져 자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3주 간격 항암에 대해 이것저것 신경을 썼던 모양이다.
점심을 도시락 시켜 먹을 요량이었는데 마침 일반 병동 입원을 한 것이다. 일반 병동은 본인이 원하면 병원식을 주문해 먹을 수 있다.
아주 맛있지는 않지만 도시락보다는 영양이나 위생 면에서 낫지 않을까 싶어 병원식을 요청했다. 다행히 만자씨는 병원식이 제법 입에 맞는다.
오늘의 병원식은 잡곡밥, 김치 콩나물국, 고등어 무 조림, 가지볶음, 우엉 나물, 열무김치였다.
김치 콩나물국이 건더기는 없었는데 칼칼하니 괜찮았다. 제법 매웠는데 별문제 없이 그릇을 비웠다. 고등어 무 조림도 나쁘지 않았고 가지볶음도 좋았다.
여느 때 같으면 식욕이 없을 시기인데 신기할 정도로 식욕이 좋아서 거의 모든 그릇을 비웠다.
전ㆍ후 사진을 찍어 수호천사에게 긴급 속보를 띄웠다. 즐거운 비명이 들리는 듯했다.
어제는 구내식당에서, 오늘은 병원에서 아주 괜찮은 소중한 한 끼를 먹었다. 배도 부르고 마음도 부르다. 칭찬의 의미로 카페라테 한잔 먹어도 되는지 수호천사에게 물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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