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든 작든 삭여야만 했던 고객과 어려운 관계, 직장동료나 상사와 마주했던 갈등, 기세 좋게 추진했던 사업들의 난맥상, 매월 실적이 발표되고 질타로 오금 저린 영업회의도 이제 안녕이다. 은퇴와 동시에 근심 걱정은 사라지고 커다란 행복이 양팔 벌려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씩씩하게 돌아온 그 자리엔 팔짱을 야무지게 한 사모님이 버티고 있다.
"집에서 놀면 머 하나, 가사를 분담해야지." 헐... 난 브런치 작가인데.
"기타나 치고 있으면 돈이 나오나." 헐... 난 진실한 클래식 기타리스트인데.
"스마트폰이면 충분하지 웬 카메라 가방. " 헐... 사진 예술을 멍텅구리 스마트폰으로 하라니.
사모님과의 대화는 곧 폭발할 수도 있는 긴장감이 도사리고 있다. 잦은 해외 출장과 장기 현장 파견으로 가족과는 떨어져 지낸 세월이 더 많다. 한 달에 반은 해외 출장이다. 본사 근무라 해도 회사에서 하루 세끼 해결한다. 얼굴 마주하고 소소한 대화를 하거나 일일연속극을 보는 일은 흔하지 않았다.
더구나 좋아하는 것도 많이 다르다. 나는 흰쌀밥에 얼큰한 김치 찌개다. 잡곡밥과 야채를 즐기는 사모님과는 별도로 상을 차려야 한다. 나는 캠핑이나 자연 휴양림 여행을 좋아한다. 사모님은 안락한 호텔급 숙박이 아닌 여행은 화를 낸다. 난 듣든 안 듣든 클래식 음악 라디오 채널을 고정한다. 사모님은 보든 안보든 항상 TV를 켠다. 겨울이면 더욱 심각한 것은 환기 문제다. 난 환기는 관심 없고 절대 창문을 열면 안 된다.사모님은 어금니를 덜덜 떨면서도 이방 저 방 창문을 열고 환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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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이며 사모님과 대격돌을 피할 수 없다.
이리저리 사모님과 주도권을 잡으려 미묘한 감정 대립을 하게 된 건 첫아이가 태어나고부터이다. 그 녀석이 태어나기 전만 해도 사모님은 나를 행복으로 나라로 인도하는 선녀였다. 하루라도 못 보는 날이면 눈물부터 글썽이던 소녀였다. 첫아이가 태어나자 그 선녀는 떠나 버렸다. 둘 채 아이는 나를 외톨이로 만들었다. 두 아이와 사모님을 위해 어떤 일이 있어도 나무꾼이라는 역할에 충실하기만 강요되었다. 그렇게 35년을 지내고 막 돌아온 집에는 사모님의 고상한 일상에 방해되는 왠 어설픈 나무꾼으로 서있다.
얼마 전 묘기에 가까운 화법으로 아내를 칭찬하는 남편의 글을 보았다. 참 현명한 남편이다. 수심이 가득 찬 표정으로 심술과 남편 부려먹기에 골몰하는 사모님을 활짝 웃게 만드는 교묘한 기술과 재주를 배워야겠다.
"사모님은 참 현명하다." 재텍크, 건강생활, 인간의 도리 모르시는 게 없다.
"사모님은 요리를 잘한다." 냉장고 속엔 사모님이 드실 산해진미로 가득하다.
"사모님은 날씬하다." 아침 일찍 출발한 피트니스 클럽에서 점심이 확 지나서야 돌아오신다.
천상의 클래식 기타 선율에 도취하고, 소득도 없는 글쓰기로 밤을 지새우고, 양 어깨에 [Two body], [표준렌즈], [Zoom렌즈], [망원렌즈] 한 가방 챙겨 떠날 때도 다정히 손 흔들어주는 사모님을 꿈꾸어 본다. 어쩌면 아픈 노후에 사랑이 듬뿍 담긴 눈길과 잡아줄 따뜻한 손을 위해 오늘도 되새긴다. "참아야 하느니라." "명심해야 하느니라." "남은 인생의 행복은 오롯이 사모님의 따뜻한 눈길임을"Time to take of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