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여자가 하기 좋은 직업이라는 말

무슨 말인지 알겠지만 듣기 싫은 말

by 유 매니저 Mar 29. 2025

"여자가 하기 좋은 직업"이라는 말은 내 인생에서 세 번 정도 나에게 생각할 거리를 줬다. 초등학교 때, 대학교 1학년 때, 그리고 30대 초반 때.



내가 처음으로 "여자가 하기 좋은 직업"이라는 말을 들은 건 초등학생 때였다. 요즘에도 학생 때 본인의 장래희망과 부모님이 자식에게 원하는 장래희망을 조사하는지 모르겠는데, 내가 학교에 다닐 때에는 그런 걸 조사했었다.


그냥 학교만 왔다갔다하는 초등학생은 어떤 직업이 무슨 일을 하는지도 잘 모른다. 그리고 그게 내가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일인지도 모른다. 마냥 뭔가가 멋있어서 우와~라고 하면서 하고 싶어한 것도 없었다. (피아노를 한 창 배우던 초1때 아무 생각 없이 피아니스트를 하고 싶다고 했던 적이 있다. 그리고 티비에서 나오는 앙드레김 패션쇼를 보면서 초3 때 의상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던 적이 잠깐 있다. 하지만 정말 하고 싶어서라기 보다 그냥 말했던 것 같다)


어쨌든 그 당시에 나한테 뭘 하고 싶은지 장래희망을 써 내라고 했을 때 나에게는 너무 어려운 문제였고, 착한 아이였던 나는 부모님이 쓴 직업을 따라 썼다.


그 당시에 내 부모님이 썼던 직업은 치과 의사 아니면 변호사였다. (한의사도 있었나 모르겠다.) 그리고 중고등학교 때 문과인 걸로 확정되자 변호사로만 쓰셨다.


부모님도 만약 내가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썼다면 아마 내가 쓴 거에 따라서 맞춰 써줬을 거 같긴 하다. 물론 내가 피아니스트나 의상 디자이너라고 썼을 때에는 따라서 써주시지 않았다. 그건 그들이 생각했을 때 자신의 딸이 하길 원하는 직업은 아니었던 것 같다.


어쨌든 내가 그 당시에 "아빠는 왜 내가 치과의사가 됐으면 좋겠냐?"라고 물어봤을 때 아빠가 했던 말이 "전문직이어서 좋고, 여자가 하기 좋다"라고 말했다.


그 당시에도 남녀차별과 관련된 워딩에 예민했던 나는 '여자가 하기 좋은'이라는 말의 뉘앙스를 캐치하고 아빠한테 왜 여자가 하기 좋은 직업을 나누냐고 뭐라고 했던 것 같다. 어렸을 때의 나는 지금보다 순수하고 순진했으며 차별과 성역할에 대함 불평등한 기대감에 더 분노했다. 지금은 슬프게도 삶이 피곤하고 현실적인 장벽을 체감하면서 덜 분노하게 되었다.




그 후에 내가 대학교를 전공을 어쩌다 보니 사범대로 가게 되면서 조금 더 "여자가 하기 좋은 직업"에 가까운 분야로 가게 되었다. 대학교 전공을 택할 때 원래 가고 싶었던 과로 진학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점수를 맞춰서 가는 것이었고, 나의 경우는 후자였다.


1학년 때 여자인 동기와 같이 교육 봉사를 했던 적이 있는데, 그 때 학생 한 명이 내 친구에게 물어봤다. "선생님은 나중에 중고등학교 선생님 할 거에요? 왜요?"라고 말이다. 그 때 그 친구는 "여자가 하기 좋은 직업"이라고 말했다. 차라리 "나는 가르치는 일이 좋고, 워라밸 보장된 게 좋아서"라고 말했다면 놀라지 않았을 것이다. 여자이면서 왜 저런 말을 하지, 본인도 여자이면서 여자는 사회적으로는 쉬운 일을 하면서 가정을 가꾸는 일이 더 중요시해야 된다는 말을 하는 건가? 굉장히 수동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세 번째는 30대 때 교사를 하는 친구가 육아휴직을 쓰면서 했던 말이었다. 남편 입장 생각해보면 진짜 왜 교사 와이프가 좋다는줄 알겠다는 것이다. 육아휴직으로 싸울 일 없고, 육아휴직 동안에 애도 보고 집안일도 다 해, 그리고 일하게 되면 돈도 벌어와, 방학도 있어서 그 때 애도 전담으로 보고 집안일도 다 한다라고 했다. 그 친구는 잘 살고 있으며 그 뒤로 애도 하나 더 낳아서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복직도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쨌든 실제로 "여자가 하기 좋은" 직업을 하면서 왜 그렇게 얘기하는지 실제로 느낀 걸 말했기 때문에 와닿았다.



내가 "여자가 하기 좋은 직업"이라는 말을 들을 때 불편한 이유를 생각해봤다.


"여자가 하기 좋은 직업"이라는 말에 포함된 건

- 월급이 적지만 안정적이고 잘릴 위험이 없고

- 육아 휴직과 출산 휴가가 보장되어 있고

- 워라밸이 보장되어서 회사를 다니면서 육아와 집안일도 할 수 있다

라는 말이 포함된 것이다.


즉 여자가 하기 좋은 직업은 여성이 당연히 출산과 육아와 집안일을 더 전담해야 되는 것이고, 그것에 최적화된 직업이라는 뜻이다.


아무도 대기업 임원이나 증권사 애널리스트를 여성이 하기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여자는 야망을 가지고 사회적으로 높은 성취를 가지는 게 전제가 되지 않는다.


여성이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를 가지게 되면 집안은 소홀했을 거다라고 생각하고, 만약 이혼을 하거나 애들의 학업 성취가 환경에서 기대되는 것보다 낮을 경우에는 엄마가 애를 키우지 않아서 그렇다는 말이 나온다.


아무리 시대가 바뀌었고 아들 딸 똑같고, 동일한 학업 기회를 준다 하더라고, 여전히 결혼, 임신, 출산, 육아, 집안일에 있어서는 여자의 몫이라는 인식이 크다. (이런 게 문제라고 생각하면서 글을 쓰는 나 조차도 그런 인식을 가지고 있다. 자라난 시대와 환경은 무시할 수가 없다.) 이 인식도 시간이 지나면 개선이 될 거라 생각한다.


여자가 하기 좋은 직업이라는 말 보다는 "워라밸이 좋은 직업"이라는 말이 더 많이 사용되었으면 좋겠다.

(전업주부라는 말을 들었을 때 여자일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있는 것처럼... 남자도 전업주부를 할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여자만을 위한 게 아니라모두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목감기 안 걸리는 방법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