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미국 대학 기숙사에서 살아남기 2

너무 짜증나는 Suite style bathroom

by Amy

대학생 신입생으로 한 학기 동안 기숙사 생활을 마치고 2학년이 되었다.


사실 2학년 때도 첫 번째 기숙사를 신청했다. 불만이 많았지만,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 그런지 시간이 지나면서 익숙해졌다. 개인 화장실이 있는 유일한 기숙사였던 점도 만족스러웠다. 기존의 불편했던 엘리베이터와 와이파이 문제를 조금이나마 해결하고자, 나는 로비와 가까운 1층 방을 선택했다. 다행히 좋은 방을 배정받았고, 여름방학 동안 기숙사 걱정없이 잘 지내며 개강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기숙사 입사 이틀 전에 문제가 생겼다. 고모 집에서 기숙사에 가져갈 짐을 정리하고 있는데,

고모가 내 새로운 룸메이트에게 이메일을 받았다고 알려주셨다. 내용은... 룸메이트가 안내견(Service dog or Assistance dog)과 함께 기숙사 생활을 할 예정인데, 괜찮겠냐는 것! 이메일은 이미 며칠 전에 받은 것이었는데, 왜 내 이메일이 아닌 비상 연락망인 고모 이메일로 보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로 인해 나는 이메일을 뒤늦게 확인하게 되었고, 기숙사 이사를 이틀 앞두고 급하게 방을 바꿔야 했다.


이메일을 확인하자마자, 나는 곧바로 기숙사 사무실로 향했다. 나는 강아지를 좋아하지만, 좁은 방에서 큰 안내견과 함께 생활할 자신이 없었다. 게다가 고모와 고모부는 털 알레르기가 있어서, 고모 집에 자주 방문하는 나로서는 방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기숙사에 빈 방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첫 번째 기숙사가 아닌 같은 가격대의 다른 기숙사로 옮겨야 했다.





두 번째 기숙사와 최악이었던 화장실

그렇게 두 번째 기숙사에서의 생활이 시작됐다. 이곳은 우리 학교에서 가장 최근에 지어진 기숙사로, 엘리베이터가 있는 5층짜리 건물이었다. 조건만 보면 나쁘지 않은 기숙사 같았지만, 내가 이전에 이 기숙사를 선택하지 않은 이유가 있었다.


바로… 화장실 때문이었다.


내가 살던 기숙사 중에서 가장 최악의 화장실.



두번째 기숙사
방안에 있는 세면대와 화장실문


내가 배정받은 방은 'Suite Style Bathroom' 구조였다. 두 개의 방 사이에 화장실이 위치한 형태로, 화장실에는 양쪽 방으로 연결되는 문이 있었다. 각 방에 세면대가 하나씩 배치되어 있었고, 검색해보니 이런 구조는 미국 대학교에서는 꽤 흔한 스타일이었다.


이 화장실의 가장 큰 단점은 내부에서 문을 잠글 수 없다는 것이었다. 각 방에서 화장실로 연결되는 문을 잠글 수 있었지만, 이는 옆방 사람이 우리 방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기 위한 장치일 뿐이었다.

문제는, 옆방 사람이 화장실을 사용하고 있을 때 내가 실수로 문을 열어버릴 수도 있다는 점이었다. 실제로 한 번은 샤워하려고 옷을 벗으려던 순간, 옆방에서 노크도 없이 문을 열고 들어온 적이 있었다. 상대방이 사과하고 서둘러 문을 닫았지만, 같은 여자라도 화장실 안에서 마주치는 경험은 결코 유쾌하지 않았다.


또 다른 단점은, 방에서 화장실 안쪽 소리가 너무 잘 들린다는 것! 방문과 바닥 사이의 빈 공간 때문에 화장실 소음이 더 잘 들렸고, 그렇기 때문에 나는 화장실을 사용할 때마다 음악을 크게 틀어 내 개인적인 소음이 들리지 않도록 해야 했다.










기숙사 방 구조와 에어컨


내가 살던 기숙사들은 모두 노출 콘크리트 느낌의 인테리어였기 때문에, 처음 방에 들어갔을 때 차가운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미국 애들 대부분 기숙사 인테리어에 진심이여서, 벽에 붙이고 꾸미고 하는 거에 따라 방마다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 사진은 없지만, 내 룸메도 자기가 그린 그림이나 좋아하는 캐릭터인 스파이더맨으로 방을 꾸몄다. 또, 알전구처럼 예쁜 조명으로 인테리어를 해서 정말 예뻤다. 아쉬운 점은 나와 룸메 모두 저녁에 과제하느라 바빠서, 그 예쁜 조명 인테리어를 감상할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다는 것.

나는 첫 번째 기숙사 때와 마찬가지로, 핑크색 이불과 베개로 간단하게 꾸미는 것으로 만족했다.




방에는 침대, 책상, 3단 서랍장이 있었고, 옷장이 없는 대신 행거가 벽에 설치되어 있었다. 첫 번째 기숙사보다는 넓었지만, 가구를 놓기에는 공간이 여유롭지 않아서 침대를 살짝 올려서 밑에 냉장고를 넣어야 했다. 기숙사의 모든 침대는 높낮이를 조절할 수 있었는데, 이를 활용해 공간을 잘 활용을 하는 방들도 많았다. 어떤 방은 침대 두 개를 2층 침대로 만들어서 침대 하나의 공간을 절약하는 대신, 소파랑 TV를 놓고 게임을 하기도 했다. 다른 방은 각자 침대의 높이를 2층으로 높여,밑에 책상을 배치하거나 소파와 러그를 깔아 각자의 아지트처럼 꾸미기도 했다. 기숙사의 층고가 높아서 대부분 2층 침대에 앉아도 머리가 천장에 닿지 않았기 때문에, 방을 넓게 쓸 수 있는 꽤 좋은 방법이었다.




방 구조 바꾸다가 찍어서 지저분.



나는 룸메이트보다 늦게 도착해서 문 옆 침대를 사용해야 했는데, 창가 쪽을 더 좋아하긴 하지만 큰 불만은 없었다. 하지만 이 자리에는 예상치 못한 단점이 있었는데, 바로 에어컨이었다.


내 옷장 위쪽 천장에 설치된 에어컨에서 나오는 차가운 바람이 바로 내 침대를 향했다. 문제는, 룸메는 더위를 많이 타서 온도를 계속 낮추려 했고, 나는 너무 추워서 온도를 높이려 하면서 서로 미묘한 눈치 싸움이 이어졌다는 것. 수업을 마치고 돌아와 문을 열면, 마치 냉동 창고 문을 연 듯한 기분이 들 정도로 서늘한 느낌을 좋아했던 미국인 룸메. 둘이 같이 있을 때는 서로에게 양해를 구하고 온도 조절을 하긴 했지만, 너무 더워하는 룸메 때문에 결국 내가 대부분 양보할 수밖에 없었다.


침대 자리를 바꾸는 것도 고려했지만, 룸메가 창가 자리를 너무 좋아했고, 또 짐도 나보다 많아서 더 넓은 공간이 필요했기 때문에, 결국 내가 추위를 견디며 지내야 했다.





기숙사 방문 꾸미기에 진심이었던 룸메이트


미국 학생들은 방 안 인테리어만큼이나 방문 꾸미는 것도 좋아하는데, 특히 내 룸메이트는 방문 꾸미기에 진심이었다.

대부분 기숙사에 이사하면, 처음에는 RA(Resident Assistant)들이 미리 예쁜 이름표를 만들어 방문에 붙여준다.





디자인을 전공하는 내 룸메는 정말 열심히 방문을 꾸몄다. 특히, 계절이 바뀔 때마다 새롭게 디자인해서 꾸미는 걸 좋아했었다. 나는 매번 새롭게 바뀌는 방문 디자인을 보며, 다음에는 룸메가 어떤 디자인을 준비해 올지 기대하곤했다.


기숙사 복도를 지나다보면, 크리스마스 양말을 걸어 놓은 방, 친구들과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게 화이트 보드를 걸어 둔 방개성 있게 꾸며진 방문들을 흔히 볼 수 있었다. (엘리베이터 바로 앞에 있는 방에도 화이트보드가 걸려 있었는데, 방 주인이 "Hi"라고 써놨길래, 나도 답으로 "Hi, how are you?"라고 적어 준 적이 있었다 :) )








IMG_0138.JPG
IMG_0320 2.JPG 기숙사생에서 그릇은 사치다. 냄비 하나만 있으면 된다.



기숙사의 부엌과 세탁실


각 층마다 공용 부엌이 있었는데, 덕분에 이 기숙사에서는 요리를 자주 했다. 주로 라면이나 김치볶음밥 같은 간단한 음식이었지만, 전자레인지에 돌려먹는 냉동식품보다는 훨씬 만족스러웠다. 그런데 문제는 부엌과 세탁실이 한 공간에 있다는 것이다. 사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요리를 자주 해 먹지 않아서 크게 신경 쓰지 않았지만, 기숙사 부엌에는 창문이 없었기 때문에, 환풍기만으로 음식 냄새를 빼기엔 어려웠다.


어느 날, 기숙사 애들이 부엌에서 베이컨을 굽고 있었는데, 그때 마침 건조기에서 내 빨래가 돌아가고 있었다. 건조기가 다 끝날 즈음 방 문을 열었는데, 복도에서부터 베이컨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최대한 빨리 빨래를 꺼내서 방으로 돌아왔지만, 이미 내 빨래에서는 베이컨 냄새가 배어 있었다.


이후로 부엌을 사용할 때면 가장 먼저 세탁기에 빨래가 있는지 확인하게 되었다. 나는 라면이나 김치볶음밥 냄새를 좋아하지만, 외국인들은 싫어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최대한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미리미리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IMG_7469.jpg 현재 내 집에 잘 전시되어 있는 그림


룸메이트와의 관계


첫 번째 기숙사에서 룸메이트와 크게 친해지지 못했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두 번째 룸메이트와도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다행히 우리는 에어컨 문제만 빼면 취미도 비슷했고, 생활 패턴도 잘 맞았으며, 성격도 잘 통해서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나는 겨울방학이 시작되기 전, 미리 크리스마스 선물로 룸메가 좋아하는 스파이더맨 담요를 줬다. 룸메는 고맙다며 방학이 끝나고 새학기 시작될 때 내 이름을 넣은 그림을 선물로 줬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핑크핑크한 그림으로.

기숙사 생활 내내 나와 함께했던 이 그림은, 지금도 내 방에서 가장 잘 보이는 곳에 걸어둘 만큼 소중한 선물이 되었다.


IMG_0274.JPG 일요일 텅빈 주차장과 내 기숙사


또 다시 새로운 기숙사로


두 번째 기숙사는 최신 시설 덕분에 편리한 점도 많았지만, 양방향 화장실 문제전공수업을 들을 수 있는 건물과의 거리 등의 문제로 불편함도 많았다.

결국 1년 후, 두 번째 기숙사의 생활을 마무리하고, 더 좋은 위치에 있는 세 번째 기숙사로 이사를 결정하게 되었다.



keyword
이전 07화미국 시골대학 유학생,  한국 대학에서 수업듣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