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집시의 집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omaDarling Aug 06. 2020

아들의 첫 외박

#017 열일곱 번째 이야기

만 7살 반인 아들이 외박을 했다! 다른 아이들은 몰라도 내 아들이 외박을 할 줄은 생각도 못했었다! 이유인즉슨, 내 아들은 아무리 친구들이나 사촌들이 좋아도 잠자는 것만큼은 엄마 아빠랑 한방에서 자기를 고집하는 고집남이기 때문이다. 몇 달 전에도 함께 지내는 커뮤니티 가족들의 친구들이 각자 자기 침낭을 챙겨서 아이들 프로젝트를 하던 공간에서 밤늦게까지 수다를 떨다가 함께 잠을 자는 피자마 파티를 감행했었다. 두세 차례 피자마 파티를 했었지만, 나의 고집남 아들은 끄떡도 안 하고, 의연히 집에서 잠을 주무셨다.  


몇 달이 지나 Algarve로 옮기고 나서, 우리 커뮤니티 가족들 친구들이 텐트를 치고 다시 여는 피자마 파티의 첫날, 역시나 아들은 산뜻하게 친구들에게 거절의 뜻을 표하고 꿋꿋이 우리의 카라반에서 잠을 청했었다. 이런 아들이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둘째 날 피자마 파티에 흔쾌히 가겠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어쩌면 피자마 파티 후 아침부터 눈 비비고 일어나서 함께 아침 식사를 하고 노는 친구들의 소리를 저 멀리서 들으며 부러워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나는 신이 나서 자기 침낭과 잠옷, 칫솔과 치약, 저녁 도시락을 가방에 후다닥 챙겨서 가는 아들을 믿을 수 없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 바람에 만 4살 반 된 둘째 딸 가이아까지 덩달아서  율이를 따라 뛰어갔다. 진짜로 잠까지 자고 올 것인가, 아니면 마음이 바뀌어서 밤에 다시 카라반으로 돌아올 것인가, 궁금하기도 하고, 나까지 설레었다. 어릴 적 친구들과 함께 한 방에서 같이 잠을 자며 수다 떨었던 기억들이 속속들이 생각이 났다.


텐트에 각자 자기 침낭을 챙겨 자리 잡은 아이들(Pietro, Mailo, Nina, 가이아, Ona, 율, Federico)


친구들과 밤을 함께 지새운다는 생각에 흥분한 아이들은 밥을 후다닥 먹고 텐트 안과 밖을 왔다 갔다 하며 분주했다. 이빨 닦는 미션이 끝나자, 각자 자기 침낭을 깔은 자리에 드러누웠다. 밤이 어두워지자 둘째 딸 가이아는 엄마를 따라 카라반으로 다시 돌아가겠다고 한다. 내심, "설마 아들도 이제 와서 돌아간다고 하진 않겠지" 하고 눈길을 돌리자, 내 눈에 들어온 아들은 하염없이 친구들과 수다 떠느라 가이아가 가고 싶어 하는지도 모르는 것 같았다. 그렇게 친구들끼리 나란히 누워서 끝없이 수다 떠는 아들과 밤 인사를 하고 가이아와 함께 카라반으로 돌아와 잠을 청했다.


비록 이층 침대에서 자기에, 이제는 같은 침대에서 자지는 않지만, 이렇게 아들 없이 잠을 청한다는 것이 묘하고 이상했다. 그리고 혹시나 밤 늦게 돼서 아들이 울면서 이 어두운 밤길을 헤치고 돌아오는 것은 아닐까 내심 걱정도 되었다. 이런 걱정과는 반대로, 아들은 밤늦게 레스토랑 일을 마치고 돌아온 남편이 돌아올 때까지도 우리의 카라반으로 돌아오지 않았고, 결국 아들의 부재에 이른 아침 눈을 뜬 나는 아들의 빈 침대를 확인하였다. 어떻게 아이들이 하룻밤을 보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아침 식사도 가져다 줄 겸, 둘째 딸 가이아와 함께 아침을 챙겨서 아이들의 텐트로 향했다. 텐트로 가는 내내 가이아는 볼멘소리로 자기도 텐트에서 자고 싶었는데, 엄마 없이는 무서워서 못 잤다고 툴툴거렸다.


피자마 파티 다음 날 침낭을 햇볕에 널고 있는 아이들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족의 품을 떠나서 혼자서 잠을 자고 난 아들은 왠지 하루아침에 성장한 것만 같았다. 다 같이 아침 식사를 하고 침낭들을 아침 햇살을 받도록 널어놓았다. 부모님들 없이 아이들끼리 독립된 공간에서 스스로 잠을 청한 아이들의 얼굴에는 자신에 대한 대견함과 뿌듯함이 가득했다. 갑자기 아이들이 더 커진 것 같이 보였다. 텐트 가까이에 캠핑카가 있었던 Ines 말로는, 자정이 넘도록 아이들은 수다를 떨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모두가 다 같이 잠이 들었다고.


이를 계기로 4일간 텐트에서의 피자마 파티가 계속해서 이어졌다. 세 번째 날은, 책이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과 달리, 요즈음 아이들이 한창 좋아해서 모든 놀이의 주가 되어버린 옛날 일본 만화인 "하록 선장" 시네마가 열렸다. 둘째 딸 가이아처럼 텐트에서 잠자기를 시도했었으나 엄마와 다시 돌아가게 된 아이들이 다시 모였다. 그렇게 모든 아이들이 자기 침낭 자리를 잡고 만화 영화 상영을 했고, 상영 중간에 Lorcan과 Ona는 자신의 캠핑가로 돌아갔다. Pietro는 상영이 끝나고서 결국은 엄마와 함께 캠핑카로 돌아갔다. 가이아는 상영이 끝나고서 잠이 들었으나 카라반으로 돌아가서 엄마와 함께 자기를 원한 첫째 아들 율이 때문에 결국은 잠이 든 가이아를 안고 우리는 카라반으로 돌아왔다. 카라반으로 돌아온지도 모르고 새근새근 잠이 들었던 둘째 딸 가이아가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 자신이 텐트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채자 1시간가량이나 화가 나서 골이 난 표정으로 있었다. 너무 미안했지만, 율이 없이 가이아만 남겨두고 가는 게 확신이 서지 않았던 나로선, 어쩔 수 없었다고 설명에 설명을 해야 했었다.


텐트에서의 "하록 선장" 시네마
하룩 선장


그리하여 네 번째 날로 이어진 피자마 파티에서는 비록 첫째 아들 율이가 엄마와 돌아오게 되었어도, 먼저 잠이 든 가이아를 약속대로 남겨두고 오기로 했다. 율이는 우리의 카라반으로 돌아오지 마자 1분도 안되어서 잠이 곯아떨어졌으나, 만 4살 반짜리 딸아이를 남겨두고 온 엄마인 정작 나는 새벽 2시가 거의 다 되어서까지 잠을 잘 수가 없었다. 혹여나 자다가 깨어서 오고 싶은데 오지 못해서 울면 어떡하지,,,,자다 일어났는데 엄마가 없어서 울면 어떡하지,,, 등등,,, 걱정으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렇게 걱정에 걱정을 하다가 잠깐 잠이 들었다가 새벽 2시 30분, 만 8살밖에 안된, 언제나 가이아를 챙겨주던 Nina가 눈물이 범벅이 된 가이아를 데리고 카라반까지 와주었다. 너무 고맙고 미안한 순간이었다. 어찌나 많이 울었던지 엄마 품에 안겨서도 울면서 잠이 들었다. 너무 미안하고 안타까운 마음에 새벽 5시가 넘도록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그렇게 어렵게나마 텐트에서 엄마 없이 혼자 잠을 자는 경험을 한 아들과 딸은 당분간 피자마 파티를 하자고 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렇게 조금씩 아이들이 눈에 보이지 않게 성장해 가면서 우리 부모 곁에서 떠나갈 연습을 하는 것 같다. 아들의 첫 외박. 이렇게 일찍 올 것이라곤 생각 못했었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아들이 너무 커버렸다.


피자마 파티 다음날 아침




매거진의 이전글 바퀴 달린 학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