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마케터 적응기
성장에 속도를 내다
드디어 이직의 긴 터널을 빠져나왔다. 두 번째 회사에 정착하는 과정은 생각보다 까다롭고 신중했다. 더닝 크루거 효과*의 이론처럼 마케터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를 때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 하나로 나를 과대평가’했다면, ‘마케터 일을 시작하고서 나의 수준이 어느 위치인지 판가름되니 과소평가’하게 되었다.
마케팅 기반을 처음부터 다져나가야 하는 세팅 단계보다 시동을 걸고 엑셀을 천천히 밟아나가는 성장 중인 기업에 입사하고 싶었다.
(*더닝 크루거 효과 : 지식수준이 부족한 사람일수록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현상)
스타트업에 입사한 3가지 이유
비즈니스 모델의 안정성이 입증된 시리즈 B단계
배울 점이 많은 팀원들과 성장 가능성
주도적으로 일하는 방식을 가진 스타트업
1) 성장 터닝포인트
기업의 투자 단계에 따라서 스타트업의 성장 지표를 유추할 수 있다. 시리즈 B단계 투자 유치를 받았다면 시장에 이미 제품과 서비스를 출시한 상태로 시장 점유율을 높여 사업을 확장하려는 시기라 적극적인 마케팅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 시기에 합류한다면, 시장 초기부터 적극적으로 마케팅해나가면 나와 기업 모두 성장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입사 후 전사 조직 개편을 통해 팀은 세분화되어 업무가 바뀌고 전문성은 고도화되었다. 입사 3개월까지는 콘텐츠 마케터로 SNS 채널과 바이럴 마케팅을 담당했고, 광고 크리에이터로 1년, 지금은 그로스팀 내 프로모션 기획자로 일하고 있다.
인하우스 마케터로 제품이나 서비스의 다양성이 부족할 수 있지만 대신 성과를 낼 수 있는 다양한 마케팅 방법들을 시도 - 테스트 - 결과를 내며 성장해 나가는 환경이 즐겁다.
또 프로덕트, 세일즈, 디자인, 운영 등 다양한 유관부서와 협업하면서 업무의 연결성에 생각하면서 전체 프로젝트를 매니징 할 수 있는 기회도 있을 것 같다.
2) 함께하고 싶은 동료들
이 회사에 합류하게 된 이유 중 한 가지, 팀장님 덕분이었다. 나와 꼭 같이 일하고 싶다며 진심이 담긴 문자를 보낸 분이 이끄는 팀이라면 팀원도 결이 비슷한 사람들일 거라 생각했다. 입사 후 처음 만난 팀원들은 모두들 선 해 보였다.
회사의 모든 히스토리를 알고 있는 올라운더 마케터 1호, 퍼포먼스를 제대로 이끌고 있는 능력자 리더. 그들에게 특히 배울 점이 많아 보였다. 지금까지 그들이 일하는 방식과 태도를 배우며 함께 성장하고 있다.
순항하고 있다는 증거는 입사 후 2년 6개월 동안 팀 내 퇴사자가 없는 유일한 팀이다. 비하인드 스토리지만, 같이 일하는 동료가 팀장님이 나를 뽑았던 한 가지 이유를 말해줬다. 팀원들, 특히 본인과 가장 잘 어울릴 것 같았던 면접자였다고 한다.
3) 신뢰와 배려 기반의 팀워크
처음에 적응하기 어려웠던 건 피드백이었다. 맡은 업무를 다하고 팀원들에게 피드백을 요청하면 어떤 피드백이든 자유롭게 의견을 주고받았다. 첫 피드백을 받았을 때 무척 당황했다. 기획안 여기저기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피드백이 달려서 ‘나 진짜 일 못하나?’라는 오해를 하기도 했다.
일에 오류를 잡는 피드백이 아닌 더 나은 방향으로 성과를 내기 위해서 의견을 제시할 뿐, 전면 수정하라는 의미가 아니었다. 피드백을 받고 어디까지 의견을 반영하고 수정을 해야 할지 판단은 나의 몫이었다. 나중에 피드백은 서로의 관심 척도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관심이 없으면 피드백을 주지 않는다. 서로 하는 일에 관심이 있어야 피드백도 주고받는 거다.
각자 업무 처리도 바쁜데 짬을 내어서 검토해주고 더 나은 의견을 제시하고 반영하는 과정에서 대부분 더 나은 성과를 냈다. 팀원의 피드백은 불편한 의견이 아닌 신뢰와 배려를 기반으로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가장 기본이 되는 끈끈한 팀워크였다.
괜찮아, 이젠 혼자가 아니야
입사 초반에는 자사 제품과 서비스를 파악하면서 콘텐츠를 기획하고 운영하는 업무를 맡았다. 3개월 후, 조직이 세분화되면서 그로스팀, 콘텐츠팀으로 나뉘었고 나는 그로스팀 광고 크리에이터로 직무가 바뀌었다.
여행사에서 ‘카드 뉴스’라고 불리는 광고 기획과 디자인을 직접 제작했던 경험이 있었다. 하지만 비용을 들여서 집행하는 페이드 광고(paid ad)는 성과 개선을 확실히 해야 했기에 어려움을 느꼈다.
제대로 광고 퍼포먼스 마케팅을 배운 적이 없어서 어려웠고, 혼자서 기획, 제작, 운영까지 다 챙기다 보니 1인 마케터의 한계가 느껴졌었다. 그 일을 다시 맡게 되었는데 두려움보다는 제대로 배울 수 있는 기회라 반가웠다. 이젠 혼자가 아니라 함께할 든든한 팀원들이 있기 때문이다.
균열이 깨지는 순간
1년 동안 매달 100개 가까운 소재를 기획하며 팀원들과 일 하는 게 재미있었다. 톱니바퀴가 척척 맞아서 돌아가는 느낌이랄까? 다양한 소재를 테스트하고 성과가 좋은 소재의 성공 비법을 찾아갔다. 그때 찾아낸 성공 공식은 아직까지 써먹고 있다.
<손발이 척척 맞았던 업무 프로세스>
- 프로모션 기획자와 어떤 소재를 기획할지 컨셉과 의도, 특징, 페인 포인트를 논의하고
- 퍼포먼스 마케터와 소재 구체적인 타깃을 논의하고 타깃층을 좁혀가면서 테스트해보고
- 결과 값을 기반으로 새로운 가설을 세워 다시 테스트하고 인사이트를 뽑아내는 과정을 반복
- 효율적인 예산 집행과 팀장님의 전체적인 운영 관리 덕분에 업무 성과가 눈에 보였다.
각자의 자리에서 맡은 바 최선을 다했고 그 해 우리 팀은 업무 성과 1위를 달성했다. 맡고 있는 업무들이 점점 늘어나면서 팀원이 1명씩 늘어났고 톱니바퀴의 모양은 더 세분화되면서 천천히 어긋나는 느낌이 들었는데 이대로 괜찮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