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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arinsk Feb 03. 2017

확실히 죽는 것과 살 수 있는 가능성의 차이

전쟁은 인간의 지성을 몇 배로 높인다. 슬프지만 진실이다. 2차 대전 중 본격화된 수학과 통계학 기반의 이른바 작전 연구(Operation research)이 현대 경영학의 초석을 놓았다는 것은 부인하기 힘든 사실이다. 아마도 전쟁이라는 극도의 시간 제약과 첨예한 목적의식이 이런 의외의 성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닐까? 같은 의미에서 전쟁의 경험은 평상시 관찰하기 힘든 부조화의 사례도 제공한다. 다음의 이야기는 "죄수의 딜레마"라는 용어와 게임을 처음 제안했고 이른바 Travelling Saleman Problem (점으로 이루어진 도시와 이 도시 사이의 거리가 주어졌을 때 이들을 모두 방문하는 최적 거리를 산출할 수 있는 일반적인 알고리즘은 존재하는지에 에 대한 질문)을 정식화한 Merrill Flood가 Kenneth Arrow에게 들려준 전쟁 "실화"라고 한다. 

태평양 전쟁에서 미국의 골치거리는 도쿄를 폭격하는 데 따른 애로사항이었다고 한다. 도쿄를 폭격하기 위한 폭격기들은 3,000km나 떨어진 사이판에서 출격했다. 때문에 이들은 전투기들의 호위를 받을 수도 없었고 연료 문제 때문에 많은 폭탄을 실을 수도 없었다. 각 폭격기의 파일럿들은 30회 임무를 완수하면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었는데, 일본의 방공 체계가 단단한 탓에 파일럿의 절반만 귀환할 수 있었고 나머지 절반은 작전 중 사망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일군의 수학자들이 투입되었고, 자료를 연구한 끝에 이들은 각 폭격기에 탑재되는 폭탄의 양을 늘이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당연히 폭탄을 늘이기 위해서는 연료의 양을 줄여야 하고, 이렇게 되면 폭격기는 갈 수만 있을 뿐 돌아올 수는 없다. 일조의 자살 작전인 셈이다. 이런 방식을 채택할 경우 이들의 계산에 따르면 약 3/4의 파일럿은 미션을 수행하지 않은 채 고국으로 돌아가고, 1/4의 파일럿은 반드시 죽게 되는 것이었다. 만일, 각각의 파일럿이 무작위로 추출된다면 이들의 뽑게 되는 복권은 다음과 같은 구성이 된다. 


복권B: [3/4(생존), 1/4(사망)] 


만일, 기존 방식대로 왕복 미션을 수행하게 된다면 각각의 파일럿이 지니고 있는 복권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복권A: [1/2(생존), 1/2(사망)] 


폰노이만과 모르겐스테른이 정식화한 불확실성 하의 선택의 공리에 따르면, 이른바 단조성(monotonicity)를 충족하는 선호체계에서는 복권B가 복권A보다 선호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두 복권 모두 "생존"과 "사망"이라는 동일한 경우가 확률에 들어가고 당연히 생존이 사망보다 선호될 것이기 때문이다. 즉, 선호되는 것에 더 높을 확률을 열등한 것에 더 낮은 확률을 부여한 복권이 더 선호된다는 이치다. 이런 상황에서 파일럿들은 어느 쪽을 지지했을까? 당연히 복권A다. 그렇다면, 당시 파일럿은 폰노이만 효용 체계의 공리를 따르지 않는 "비합리적" 행위자들이었을까? 꼭 그렇다고 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훨씬 후대에 정식화되었지만, 이들의 선택을 맥락을 통해 잘 설명해주는 이론이 바로 카네만과 트버스키의 "손실회피"다. 복권A에는 매번 출동의 기회마다 생존할 수 있는 확률이 존재한다(물론 죽을 확률도). 반면, 복권B에서는 한번 1/4 그룹에 포함되면 반드시 죽는다. 손실회피란 확실하게 손실이 생기는 상황보다는 그 손실을 피할 수 있는 도박 상황을 선호하게 되는 경향을 의미한다. 파일럿들은 복권B에서 사망의 상황에 감정이입을 하게 된다면, 손실회피의 심리 기제가 강하게 작동하게 될 것이다. 확실히 죽는 것보다는 살 확률에 거는 것이 나아보이는 이치다. 


좌우간, 이 문제는 어떻게 해결되었을까? 이 연구의 직후 미군은 클린트 이스트우드 영화의 배경이 된 이오지마 섬을 함락했다. 이 지역은 도쿄에서 600 km 밖에 떨어지지 않아서, 폭격기를 호위할 전투기를 함께 딸려보낼 수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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