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보다 설레는 첫 마음
파혼하고 다녀온 산티아고 가는 길 이후에 삶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파혼도, 스페인을 800km 횡단하는 길도 처음 겪는 낯설고 새로운 경험이었다. 하지만 헤쳐나가고 겪어내야 할 일이었기에 슬프고 아프지만 기꺼이 살아냈다. 결과적으로 내 인생에 손꼽힐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았다.
처음은 낯설고 불편하지만, 새롭고 설레기에 견뎌낼 수 있고 어떻게 전개될지 알 수 없기에 많은 가능성을 안고 있다.
시작을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하기를 즐겼던 나는 ‘처음’을 낯설어하기보다 새롭게 받아들이는 편이었다.
주위의 많은 사람들은 처음에 대한 낯가림이 심해 시작하기도 전에 포기하기 일쑤이고 시작한다 해도 그 과정을 견디는데 어려움을 호소한다. 그들에 비해 나는 얼마나 처음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단단했던지, 언제든 어디서든 누구든 어떤 일이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첫사랑, 첫 입학, 첫 입사, 첫 파혼(첫 결혼 아님)은 처음이기에 아는 것보단 모르는 게 많고 모르기 때문에 질문이 많고 질문이 많으니 삶을 되돌아볼 기회가 되었다. 스쳐 지나갈 수 있는 순간들을 붙잡고 기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모두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처음은 서툴기에 실수투성이에 모든 게 복잡하게 느껴지고 익숙해질 때까지 많은 날이 필요한 반면, 모르는 걸 알게 되는 과정 속에서 집중력을 갖게 되고 집중하는 시간을 통해 많은 걸 기억하고 많은 걸 이뤄낼 수 있다. 그래서 처음 하는 것들이 깊이 각인되고 소중하게 여겨지는 게 아닐까?
한 번도 백일장에 나가보지 않고 막연히 글 쓰는 사람이 돼야겠다며 국문과에 입학했던 스무살. 같은 과 선배의 도움으로 방송구성작가가 되기 위해 졸업 전에 여의도의 작가 아카데미에 다녔었다.
그곳에서 처음으로 ‘첫 글’을 썼다.
글을 쓰는 건 낯선 일이었지만 이상하게도 글을 쓰고 있는 내 모습은 낯설지가 않았다. 컴퓨터 앞에 앉아 텅 빈 모니터를 한 글자씩 채워가는 게 식은땀나도록 어렵고, 시작과 끝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몰라 헤매다가도, 오직 글을 쓰는 데만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는 내 모습에 스스로 흐뭇해했던 기억이 또렷하다.
내가 쓴 글을 많은 사람들 앞에 내놓는 일이 창피했지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내 글을 낭독하는 동안 기분좋은 흥분이 차올랐다. 신중하게 고른 단어와 문장이 방송에서 아나운서의 멘트로, 성우의 더빙으로, 화면의 자막으로 쓰인다는 자부심과 책임감으로 글을 썼기 때문일 것이다. 나만 보려고 쓰는 글이 아니어서 더욱 내가 쓴 글에 대한 애정이 컸다고 해야 할까?
그렇게 글 쓰는 직업을 갖게 되고 첫 방송을 하게 된 날, 내 이름 석자가 방송 후 스크롤에 올랐을 때의 뿌듯함은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생생하다. 낯설고 두렵지만 떨리고 설레는 처음이었기에!
‘첫 마음’을 가졌던 시간들은 그렇게
내 몸과 마음에 새겨져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점 낯설고 불편한 걸 거부하고 꺼려하며 익숙한 것만 지켜내려고 애썼던 최근의 내 모습에 대해선 역시 나이 탓이라고 밖에 변명의 여지가 없다. 다시 첫 마음을 갖는 게 어려워 피해 다니느라 오히려 진을 빼고 있으니…
그래서다.
내 삶에 처음이라는 필터를 끼워보기로 마음먹은 이유. 낯선 게 불편하고 익숙한 게 편하지만, 낯선 건 처음이기 때문이고 처음이라는 버튼을 누르면 죽어 있는 세포들이 깨어나 나를 살아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주니까!
첫 방송 때처럼 고난을 이겨내고 결과물을 얻었을 때의-결과물의 질과 평가를 떠나서- 뿌듯함이 분명 있을 테니까. 첫 파혼 때처럼 슬픔을 이겨내고 나를 되돌아보면서 오히려 감사할 수 있을 테니까.
장례식장에서도 해맑게 웃고 떠드는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의 장면처럼- 아직 모르는 게 많지만 알게 될 많은 것들 앞에 있는 아이의 마음이 부럽기도 하다. 그들에겐 앞으로 많은 처음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오늘도 가기 싫은 회사로 출근하지만, 오늘은 첫 출근 때처럼 많은 걸 해낼 수 있고 힘들어도 이겨낼 수 있는 ‘처음’ 필터를 끼워보려고 한다.
그러다 보면 처음이 익숙해지는 날이 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