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브런치북은 기획과는 달리 쓰였음을 고백한다.
시작은 이랬다.
“할 수 없는 것을 해내는 불굴의 의지“로 그동안 시도하지 않았던 엄청난 걸 해내는 나를 실시간 보고하는 ‘리얼 미션임파서블’이라고 할까? 하지만 <소년시대>의 병태처럼 몇 달 만에 싸움짱이 되지도, 100일 만에 자작곡으로 배우에서 가수로 데뷔한 조정석처럼 되지도 못했다. 그렇게 할 만큼 용기 있는 사람이 아니었고 사실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명확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주 작은 것부터 바꿔보기로 결심한 것이다.
다이어트가 되진 않았지만 적어도 매일 엘리베이터 대신 200개가량의 계단을 올랐고, 그 어느 때보다 많은 독서를 했고, 코 앞에 있지만 해외에 가는 것만큼 멀기만 했던 도서관을 들락거렸으며, 집안에 운동기구를 사들이기 시작했다. 나에겐 실로 놀라운 변화가 아닐 수 없는 이 작은 실천들이 점점 내 몸에 익숙해지고 있다. 100일간의 노력으로!
나이가 든다는 건 불편한 걸 참지 못한다는 의미도 포함하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늘어지고 게을러지는 나를 두고 보는 게 힘들었다. 모든 게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으면 못 견뎌했던 게 나를 피곤하게 하기도 했지만 편한 점도 많았는데, 지금은 계획이란 걸 세우고도 실천으로 이어지는 게 많지 않다. 게다가 계획이 틀어졌다고 스스로를 다그치는 일도 줄어들었다. 그러다 보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횟수가 많아지고 그동안 이뤄낸 일까지 갉아먹는 꼴이 되었다.
불편한 열정을 갖고 익숙한 게으름을 쫓아내는 일이 꼭 필요했던 이유다.
나이가 드는 게 뭐 대수냐고 가볍게 생각했었는데, 나이가 들수록 자신에 대한 긴장감이 없어지는 건 고쳐나가야 할 변화목록 일 순위다. 남편과 자식 없이 홀로 나를 지켜야 하는 입장에서는 더더욱! 누구라도 만나 가정을 꾸릴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던 과거의 선택에 이제 책임을 져야 할 때이다. 내가 어떻게 늙어가는지는 전적으로 지금의 삶에 달려있을 테니까.
눈이 많이 오는 토요일,
글쓰며 알게 된 오래 친구들과의 정기모임을 위해 4시간을 달려 울산으로 갔다. 네 명의 친구는 각자 다른 지역에서 다른 삶을 살고 있다. 모두 똑똑하고 글 잘 쓰는 사람들이지만 지금은 그중 두 사람만 글을 쓰고 있고 그중 두 사람만 결혼 경험이 있으며 그중 두 사람만 자식이 있다. 넷이 모이면 할 얘기가 넘쳐나 밤을 지새우기도 하고 이틀 동안 쉴 새 없이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를 한다. 그들과의 만남이 일 년에 두 번 뿐이지만 그들의 삶은 내게 많은 영향을 끼친다. 배울 점도 많고 부족한 점도 많은 사람들이 모여 같이 늙어가고 있다. 나와는 다르지만 나와 같은 고민으로 나이 들어가는 그들이 10년, 20년 후엔 어떻게 달라지고 어떻게 같아질지 궁금하다.
무엇보다 그들에게 나는 어떻게 달리 보일지도 궁금하다.
특히 한강의 소설을 많이 읽은 요즘,
작가의 열정이 내 건조한 마음을 흥건히 적신다. 그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표현하기 위해 소설 속 주인공은 물론 세상 속으로 흠뻑 빠져드는 모습이 내게 큰 자극을 준다. 미쳐야(狂) 미친다(及)는 걸 몸소 실현하며 사는 그녀처럼 나도 미칠 수 있는 작가가 되려면 아주 작은 열정이라도 버리지 말고 살아야지 다짐하게 된다.
열정이 가득한 삶은 비단 20-30대의 젊은 사람들에게만 해당하는 건 아닐 거다. 나이 든 중장년도 충분히 열정을 가지고 살 수 있다. 조금 부족하고 많이 느리지만 불씨를 잃어버리지 않으려는 노력만으로도 가능한 일이라고 믿고 있다. 미미하지만 불편한 열정의 힘이 조금씩 모아지면 지금은 불편하지만 나중엔 익숙하고 편안할 날이 오지 않을까?